[제주교육 희망순례] 9. 곽금초·영평초

교사·아이들 함께 만든 올레길 지역 명소로 거듭
‘걸으멍 굴리멍 즈멍’ 올레 통해 자연사랑 ‘쑥쑥’
교육과정 개편으로 들쑥날쑥 자리를 잡지 못하는 과목 중 하나가 ‘사회’다. 여러번 모습을 바꿨지만 초등학교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내가 사는 곳은 바로 여기’ 하는 지역과 관련된 내용이다. 사실 책만 들여다봐서도,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도 도심에서 벗어난 읍·면 작은 마을이라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정도가 작을 수밖에 없다. 한·두 학년 건너 형제나 자매고 수년을 눈을 맞춘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 소리를 모아 마을 자료를 만들었다. 자료집으로는 허망했을지도 모를 것들을 직접 마을 곳곳에 흔적을 만드는 것으로 의미를 더했다. 곽금초등학교의 ‘걸으멍 굴리멍 즈멍 곽금팔경올레’와 영평초등학교의 ‘우리동네 생태올레’는 아이들이 직접 걸으며 찾은 것들이다. ‘느리게 걷는’ 까지는 제주올레와 같지만 그 안에 채워넣은 것들은 보다 알차고 아기자기하다.

△우리 마을 자랑 곽금올레
“걸으멍 굴리멍 즈멍 가는 올레길. 우리는 걷기도 하고 열심히 자전거 바퀴도 굴리멍, 쓰레기도 있나 없나 즈멍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배우며 출발했다. 단체활동이라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활동…. 친구들과 함께해서 즐겁지만 내 마음대로 쉴 수도, 내 마음대로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함께 걷다보면 어느새 힘든 마음도 사라지고 즐거운 기억만 남게 됐다. <곽금초 ‘곽금팔경 올레탐구활동 보고서’ 중>”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곽금초등학교(교장 고운진) 인근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 곽금팔경(郭錦八景)이 있다.
‘곽지리와 금성리의 여덟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의미로, 경관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깃든 ‘곽악 3태(郭岳三台)’ ‘문필지봉(文筆之峰)’ ‘치소기암(鴟巢奇岩)’ ‘장사포어(長沙捕魚)’ ‘남당암수(南堂岩水)’ ‘정자정천(丁字亭川)’ ‘선인기국(仙人碁局)’ ‘유지부압(柳池浮鴨)’ 등이 그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학교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이곳 8경으로 가는 여러 갈레길 중 아름다운 길들을 찾아 이어 ‘곽금올레’를 만들었다.
곽금초를 중심으로 과오름·곽지해수욕장 등 곽지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곽지코스(5.1㎞)와 금성 뒷동산·장자천 등을 둘러볼 수 있는 금성코스(5.8㎞) 등 약 11㎞에 이르는 곽금올레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을의 자랑이 됐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찾은 길에 ‘지팡이길’ ‘옥빛바닷길’ ‘확트인 길’ ‘버들길’ ‘희망길’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상상이 가는 예쁜 길 이름을 붙였다.
수업시간에도 올레 정보는 곧잘 활용된다. 방위가 어떻고 지역내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방법을 제시하라는 딱딱한 문장들 대신 함께 걸으며 찾아낸 마을의 원석들을 잘 갈고 닦아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에 고사리 손을 보탠다.
교사들도 ‘마을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뭘까요’ 하는 질문 대신 ‘함께 걸으며 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동기를 부여한다. 진짜 ‘산교육’인 셈이다.


△매달 이어지는 올레기행
지난 8일 곽금초등학교 전교생 65명이 참여하는 ‘곽금팔경올레 코스 체험 및 탐구활동’이 펼쳐졌다.
매달 한 번씩 진행되는 과정을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린다. 쓰레기를 담을 검은 비닐 봉투와 찾아야 할 식물 이름과 사진이 담긴 미션지를 든 5·6학년 형·누나 뒤로 저학년 아이들이 병아리떼마냥 작은 행렬을 만든다. 그 모습은 보는 이들마져 흐뭇하게 한다.
길을 가다 만나는 어른들게 꾸벅 인사를 하고 차가 다니지 않는지 길을 살펴 동생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정겹다. ‘외동’이 많은 요즘 우정과 함께 ‘형제애’ 같은 것을 현장에서 저절로 배운다.
이날 아이들이 찾은 곳은 곽금3경인 ‘치소기암’과 4경인 ‘장사포어’다.
마치 한 마리 솔개가 하늘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하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습을 한 치소기암 앞에서 아이들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새 모양의 포즈를 하고 ‘찰칵’ 사진을 찍었다. 또 다른 친구들은 미션지에 적힌 꽃들을 찾고 환호성을 지른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2학년 강지혁 어린이는 “형들이랑 밖에서 수업받는 것은 좋은데 쓰레기 줍는 것은 그저 그래요”하며 아랫입술을 쑥 내밀었다.
아이들의 손이 지나간 뒤로 담배꽁초며 반병 따위가 부끄러운 듯 쓰레기봉투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운진 교장은 “올레라는 게 원래 집으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을 말하는 말이었지만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학교, 다시 마을을 연결하는 고리를 뜻한다”며 “저절로 자라는 것 같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지역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어 교육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변지철 기자 jichul2@jemin.com


“지역주민 함께하는 생태올레 될 것”
마을과 학교 잇는 든든한 역할 톡톡
‘우리마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등
초등학교 아이들이 만든 올레길은 제주시 영평초등학교(교장 이신익)에도 있다.
마을주민들의 정성과 사랑으로 성장한 영평초는 마을과 학교를 잇는 가교역할을 할 무언가를 고민하다 학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주목했다.
지난 2010년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옛 제주도환경기술개발센터·센터장 감상규)와 협약을 맺고 1년동안 아이들의 힘으로 ‘우리동네 생태올레’를 1코스부터 7코스까지 영평·월평마을 구석구석 돌며 개발했다.
당시 20여명의 우리동네 생태올레탐사대원들은 매월 둘째주 토요일 올레길을 개발하며 나무, 들꽃, 곤충들을 관찰했고 올레코스가 만들어지면 이정표 역할을 할 나무에 이름표도 달아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학원시간에 쫓기는 대신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아이들의 표정도 건강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약 16㎞에 이르는 영평초 ‘우리동네 생태올레’는 이제 마을과 학교의 자랑이 됐다.
올레길이 만들어진 후 개교기념일마다 사제동행 ‘우리동네 생태올레’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제간 정도 쌓고 올레길 정화활동을 펼치는 새로운 전통이 생겼다.
특히 영평초는 올해부터 ‘우리동네 생태올레’를 바탕으로 ‘우리마을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직접 ‘기자’가 돼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마을에 얽힌 전설과 마을의 유래, 역사, 유적지를 발굴해 내고 알리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은 마을에 관한 다양한 스토리텔링 기사를 써서 지역신문에 기고한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웠다.
영평초 송미경 교사는 “올레길을 만드는 것 만큼 활용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환경·생태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이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까지 함께 걷는 진정한 ‘우리동네생태올레’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변지철 기자 jichul2@je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