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잠녀'에서 미래를 읽다 - 바다 기반 1인 사업자

고착화된 이미지로 가치 평가 절하…현대 요구 리더십 품어
펀 경영에서부터 코칭 상생·협력 마케팅, 지속가능경영 등

'나잠업'의 기준 안에서 잠녀를 '잠수어업인'으로 분류하는 것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1960·70년대 광부 등과 함께 산업 역군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사실을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그들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 시선을 조금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잠녀에 대한 평가는 급변한다. 경제 기준의 정책은 '보상'에 맞춰지지만 인문·경영학적 측면의 잠녀는 '환경 경영'의 개척자이자 탁월한 리더로 평가할 수 있다.

▲ 제주 잠녀들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바다를 ‘경영’했다. 사진은 잠녀들이 자율관리어업의 일환으로 갯바위 닦기를 실시하는 모습.
# 경영의 지혜, 잠녀에게 배워라

협동심과 도전정신, 상호배려의 조직 문화, 철저한 자기관리, 환경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현대 조직사회에서 요구하는 요소들을 잠녀들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카인즈교육그룹·다빈치북스 대표, 인문경영연구소 소장 등 쟁쟁한 타이틀을 내건 전경일씨는 바로 이런 부분에 주목했다.

2009년 제주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공모전 경제경영 다큐멘터리 분야에 선정되며 기대를 모았던 전씨의 작업은 이후 꼬박 3년이란 시간이 더 흘러서야 마무리됐다.

지난해 서점가에 얼굴을 내민 「해녀처럼 경영하라-바다의 경영자 해녀에게 배우는 48가지 경영 지혜」를 통해서다. 책에서 전씨는 잠녀들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바다를 경영했다'는 역발상을 꺼낸다.

뼈 시린 겨울 바다를 마다하지 않고 어둠과 불투명성의 비즈니스 영토에 몸을 내던지는 잠녀들은 바다의 주역이자, 생활전사다. 사정이 어려울수록 더 강해진다. 삶에 대한 끈질긴 분투야말로 가장 든든한 사업 밑천임을 말해 준다. 척박했던 섬에서의 생활이며 제주 어머니상(像)이라는 익숙함을 내려놓고 본 잠녀들의 모습은 치열한 경영 현장 속에서 자리를 잡은 대기업 CEO와 닮았다.

잠녀 사회를 유심히 살펴보면 코칭, 동기부여, 일하기 좋은 기업, 상생, 협력 마케팅, 지속가능경영 등 모든 경영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해녀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잠녀반'을 만들어 수산경영 과정을 이수토록 한 것은 사실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바다를 사업 기반으로 한 1인 경영자로 잠녀는 독특하면서도 특별하다. '민속경영학'이란 분류 안에서 물질 역시 새롭게 해석된다. '가장 원시적 형태의 수산업'이란 기준은 경험을 통해 얻는 경영현장의 산지식이란 해석 앞에 가차 없이 무너진다.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일은 적극적 어법(漁法)으로 '공격 경영'에 해당한다. 몸에 익히는 체화된 지식과 경험을 통해 바다를 살피고 가능한 영역에서 물질을 한다. 자신의 능력에 맞춘 맞춤형 바다를 선택하는 '효율 경영'이다.

한명의 잠녀가 탄생하는 과정 역시 경영학적으로 접근한다. 수년간 현장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일부러 물질을 배웠다"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어머니를 따라 아니면 동네 어른을 따라 물에 갔다가 저절로 물질을 하게 된 경우가 태반이다. 처음에는 놀이처럼 물에 익숙해진 뒤 작은 돌이나 소라 같은 것을 던져놓고 찾아보라는 주문을 경쟁처럼 소화한 것이 전부였다. 어느 순간 물질을 했고 하군, 중군을 지나 상군 대접을 받는다. 잘하면 칭찬을 받는다. 아직은 바다가 서툰 어린 잠녀들이나 오랜 세월을 입은 고단한 몸을 이끌고 바다에 나선 노잠녀의 망사리에 한 웅큼 '물건'을 퍼주는 '게석'에는 해녀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응원과 격려의 문화가 있다. 이른바 펀(Fun) 경영이다.

잠녀는 저절로 자라고, 줄어드는 바다의 사정에 맞춰 작업을 한다. 직접 바다에 종패를 뿌리고 갯닦이 작업도 직접 하는 등 어장을 관리한다. 요즘 모든 기업에서 내세우는 '친환경 방식'인 셈이다. 종종 '욕심'처럼 내비치는 마을어장과 관련한 분쟁이나 논란 역시 경영학 기준에서 보면 '사업 영역'에 대한 치열한 관리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바다밭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환경 적응력, 도전정신, 리더빗, 맨토링과 코칭 등 21세기 경영에서 요구되는 요소 중 무려 48가지를 잠녀 사회에서 찾아냈다.

▲ 잠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고송환 성산어촌계장이 천초를 고르고 있다.
▲ 물질준비 마친 옛 잠녀들의 모습. 사진으로 보는 제주 역사 중 발췌.
# 참 노동의 가치 이어가

단순한 '인문경영서'라고 치부하기에 현장 잠녀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지난해 10년 넘게 맡아온 바다 살림을 내려놓고 '잠녀'로 돌아온 고송환 전 성산어촌계장(66)이 대표적이다.

1999년부터 어촌계장직을 맡으며 자율관리어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는가 하면 잠녀 관광자원화 등에도 적극 나서며 잠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나 아는 거 어서, 그냥 물질허는 아주망이주. 뭐 들을 게 이시크라"하며 제 할 일에만 집중하는 그녀는 2003년 제1회 자율관리어업 전국대회장에서 제주 지역 어촌계를 대표해 사례 관리를 하고 2005년 산업석탑훈장까지 받아낸 여장부다.

가장 조직적이면서도 적극적이며 바다에 대한 강한 몰입도 만큼이나 변화에 민감한 잠녀 문화를 알기 때문에 먼저 '총대'를 멘 일도 허다하다.

여성 어촌계장이 흔치 않았던 1999년부터 억센 바다 사람들 사이에서 잔뼈가 굵어졌다. 처음은 할 수 있겠냐는 반신반의의 눈초리가 많았지만 그녀는 결과로 답했다. 2001년 7월 성산어촌계가 자율관리어업 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시행한 패조류 투석, 해저생물 구제, 갯바위 닦기 등 어장관리사업과 전복 등 철저한 수산물 채취 금지기간 이행 등으로 자원조성사업의 극대화를 꾀했고 그 결과 공동체 어가 평균 소득이 늘어나는 성과도 얻었다.

성산어촌계의 잠녀 물질 시연은 성산일출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뤄졌다. 어업 외 소득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서로 하지 않겠다고 꽁무니를 빼는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 고씨가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들었다.

하도 고명순(57)·임정연(62) 잠녀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70년대 고무옷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잠수병이란 말은 없었다. 어디 아프다 소리 없이 물때만 맞으면 바다로 갔고 하지만 '고무옷'이 등장하며 욕심도 커졌다. 개별적으로 구입할 때는 단순한 부러움의 상징이었던 고무옷은 지자체의 지원이 시작되면서 경쟁의식을 유발시켰다. 어떤 지원책이 나왔다 하는 순간 이전 잠녀 사회의 정통성이 사라진다는 점을 유독 아쉬워했다.

그들은 "지금 바다에 나가는 것도 그만큼 단련이 돼서"라며 "물질을 하면 할수록 더 강인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절대 대물림은 없는 잠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 예전에야 잘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지금은 자신이 일한 만큼 벌어서 생활비로도 쓰고 누구 눈치없이 필요한 것도 살 수 있어 물질을 한다. '청렴 경영'. 앞서 전씨가 다 풀어내지 못한 경영 마인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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