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61> 보수단체의 헌법소원 ①

  이선교 목사 중심…18만명 서명지 제출
 '제주도민=빨치산 협력자'로 매도해 공분

보수단체의 헌법소원 ①

   
 
  2004년 3월 청와대에 제출된, "4·3진상조사보고서의 왜곡과 불법성을 재조사하라"는 내용의 보수단체 진정서. 맨 앞에 채문식 전 국회의장의 서명도 있다. 진정 단체의 주소는 이선교 목사의 주소와 같다.  
 

2003년 4·3진상조사보고서 확정과 대통령 사과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험난한 고비를 여러번 넘기며 이룬 꿈같은 일이었기에 보람도 컸고, 성취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2004년에 접어들면서 그 못지않은 허망함, 허탈감이 엄습해 왔다. 특히 진상보고서가 확정되던 순간, 4·3진영과 일부 언론으로부터 받았던 예상외의 혹평, '정부 보고서가 아니다'란 서문 초안을 놓고 벌인 논쟁의 후유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연극을 끝낸 배우가 무대 뒤에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처럼 한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이제 뭐하지?" 스스로 자문하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 모습이 보기 딱했던지 영어자료 전담 전문위원인 장준갑 박사가 달리기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마라톤 마니아였다.

그게 인연이 되어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그렇게 무겁던 몸이 연습량에 비례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한강이나 상암경기장 주변에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그리고 10㎞, 하프마라톤에 이어 풀코스까지 뛰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위원과 지원단 직원들도 함께 뛰었다. 42.195㎞를 달릴 때는 한없는 고통이 뒤따랐다. 그때마다 1988년 4·3취재반을 출범시킬 때를 떠올렸다.

"우리가 4·3을 다루면서 100m 단거리선수처럼 질주할 수는 없다. 그러다간 금방 쓰러질 것이다. 이 연재를 제대로 하려면 42.195㎞를 달리는 마라토너 같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할 것이다"

젊은 기자들이 6월 항쟁의 열기에 힘입어, 4·3의 성격도 '항쟁'에서 출발하자고 했을 때 내가 한 말이다. 그리고 선입견을 갖지 말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하나 헤쳐가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꼬리표가 없는 '4·3'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마라톤을 하면서 이런 생각에 미치면 고통이 오더라도 걷거나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2005년 동아국제마라톤대회에서 4시간 14분대의 기록을 세웠다. 몸이 날렵한 김종민 전문위원은 3시간 40분대를 주파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이 무렵 보수단체들은 4·3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 사과를 폄하하고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잘못 기록됐던 4·3역사가 바로 정립되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상황이 전개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보수단체의 반발과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의 방향성을 놓고 잠시 갈등하던 차에 몸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

진상조사보고서 확정과 대통령의 사과 표명 직후에 보수단체에서는 이른바 '제주4·3사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위원회'란 단체를 결성했다. 4·3에 대한 기존의 정부문서들이 왜곡됐다는 민원이 그치지 않아 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이 추진된 것인데, 이번에는 역으로 4·3진상조사보고서가 왜곡되었다면서 보수단체들이 '역사바로잡기 운동'을 벌이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 중심에 이선교 목사가 있었다.

2004년 3월 그들은 1차적으로 2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4·3진상조사보고서의 왜곡과 불법성을 재조사하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이 진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해 7월20일 4·3진상조사보고서와 이에 따른 대통령 사과를 취소해야 한다는 요지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들은 전국적으로 4·3진상조사보고서 반대 서명운동을 벌여 확보한 18만5689명의 서명지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그들의 집요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이 헌법소원은 유기남(자유시민연대 공동의장)·오형인(건국유족회 제주유족회장)·이선교(백운교회 목사) 등 대표 6명과 43개 보수단체의 이름으로 제출됐다. 위헌심판을 제기한 이들은 4·3특별법에 근본적 오류가 있고, 진상조사보고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행복 추구권, 양심의 자유, 재산권 등에 침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헌법소원 청구내용 중에는 적절치 못한 표현들이 그대로 나와 제주 도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즉, "4·3 당시 공산무장 유격대의 병력이 평균 1만9900명에 이르며, 2만명에 육박하는 빨치산들에게 7년이라고 하는 긴 기간 동안 양식을 공급해주어서 무력투쟁을 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은 제주도민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주장해 제주도민 전체를 빨치산 협력자로 매도했다.

또한 이런 말도 안되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 중에 제주출신 인사들도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파를 던졌다. 제주4·3유족회 등 4·3 관련단체들은 7월21일 "제주도민은 너희들의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너희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란 비장하고도 과격한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다음회는 '보수단체의 헌법소원'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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