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재일 수묵화가 현순혜

 님웨일즈의 「아리랑」에 눈물 흘리던 열두살 재일조선인 여중생. 온갖 말에 진절머리가 나 수묵화를 배우게 된 여고 시절을 거쳐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시선을 세계로 돌렸습니다. 일본의 평화운동가이자 행동하는 작가 오다 마코토. 그와 중국, 유라시아, 베를린, 미국 중앙아시아 등을 여행하거나 머물면서 세계의 양심적인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서 출발한 인식은 '내 조국은 세계'라는 사유의 폭으로 흐르고 흘렀습니다.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 없습니다. 남과 북, 일본, 우리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가족사를 가진 이 여자. 먼저 떠난 남편의 유작 유장한 '강'을 건너가고 있는 흔치않은 배경속 삶의 주인공입니다. 일곱자매중 막내딸 '바리공주'. 현순혜. 그녀입니다.

   
 
 

 재일 수묵화가 현순혜는

 수묵화가. 1953년 일본 고베 출생. 조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림 공부하던 중 정종여 화백의 그림에 감화되어 평양까지 가서 사사. 일본의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로, 베트남반전평화민주운동과 한국의 민주화지원운동을 조직하고 추진하던 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를 만나 1982년 결혼. 1994년 이탈리아에서 수묵화 데몬스트레이 초청전. 1996년 도쿄에서 첫 개인전. 오다 마코토의 책을 비롯한 수많은 책의 표지와 삽화를 그림. 저서로 「나=나의 여행」(이와나미 서점, 공저), 그림 동화집  「이야기 할마님」(신간사, 공저), 번역서로  「한국식생활사」(후지와라 서점, 강인희 저). 「내 조국은 세계입니다」(현암사, 이와나미)는 일본에서 4쇄까지 발간하면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2006년 4·3 58주년에 참석했을 때입니다. 현순혜, 그녀의 남편 오다 마코토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당시 그는 "제주도는 오키나와처럼 군사기지가 없기 때문에 제주도가 평화와 4·3을 잇는 노력으로 부디 평화를 지켜달라"고 했었습니다. 다시 제주를 찾겠다던 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다음해 여름. 그의 비보였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유례없는 일화를 남겼습니다. 장례식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오다 마코토의 정신을 이어 평화를!" 외치는 시위를 벌였답니다. 오다 마코토. 평소 일본은 한국에 대해 가해자로서 정식으로 사과해야하며, 종군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제주도 사위였습니다.

 이제 이십대의 딸과 함께 부모님 산소를 찾아온 오다 마코토의 아내이자 수묵화가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오다를 떠나 보낸 후, 더 농후하고도 풍요로운 때를 보낸다 했습니다. 상실감, 서운함, 그 슬픔도 껴안으며 너그러워진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그와의 대화는 대부분 오다 마코토. 그 위대한 작가와 함께였습니다. "글만 안다는 것은 가짜에요. 진짜 속을 알아야해요. 글은 시간과 세월을 삭혀야 하는 것이죠."

 그녀의 가족사는 분단현실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가족, 열일곱에 북에 갔다가 일찍 세상 뜬 북의 언니. "우리는 이남에 고향방문 왔잖아요. 동경 언니는 지금 이북에 갔어요. 왜냐면 언니가 죽고 올해가 윤년이니까 산소를 옮기는게 좋대요.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에요. 그렇지만 우린 양쪽 갈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오다 마코토 미완의 유작 「강」연재…전집 해설

 님웨일즈의 「아리랑」. 그녀에겐 바이블이고 운명의 책이다. 오다를 만난 것도 어쩌면 그런 운명이 작용한건 아닐까. "언니들이 다 감명깊게 읽은 책이에요.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산 삶이 있구나. 이렇게 소중한게 있구나 눈물 났어요. 님웨일즈도 저희가 미국에 살 때 만났어요. 감동이었어요." 그것이 인연이 돼 중국여행 중 오다 마코토의 「강」의 구상이 시작된 것이니 그럴만도 하다.

 1998년에 연재를 시작한 「강」은 역사 사회적인 인식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 1927년 '아리랑'의 우리 민족운동가 장지락이 참가한 광둥성 광주봉기 이야기다.

 허나 오다는 미완성 유작 「강」을 남겨놓고 떠났다. 아내는 쉴 틈 없이 남편의 미완성 유작 「강」을 잡지에 연재했다. "단행본에 저자 대신 제가 뒷말을 썼거든요." 「강」은 오다가 세상 떠나 일년 후, 1·2·3권이 석달 동안에 나왔다.

 「강」은 그녀에게도 책임이 있단다. 같은 시기에 아내는 「내 조국은 세게입니다」를 썼고, 남편은 「강」을 썼다. "같이 보고 토론했죠. 우리나라 동아시아의 근대사가 무엇인지, 우리나라 역할이 무엇인지, 전체 세계사 속에서 근현대사가 뭔가 하는 것을 쓴거거든요." 유창한 모국어. 담담하게! 생기 있게! 말한다.

 "그 이후 전집 해설을 누가 쓰냐 하니까 편집자가 현순혜씨가 써야한다해서 그것을 매달 다 읽고 시처럼 뒷말을 쓰고 있어요. 자전거운동이에요." 일본에서도 유례없는 82권 전집. 2014년에 완간된다. 장편 8000매, 600매 되는 것들이다.

 "3, 4년째 하다 보니 재미도 있어요. 첫 독자로 읽었으나 당시 보이지 않았던 것을 다시 새롭게 보고 발견해내는 게 있어요."

 # 총 82권 남편의 전집 진행중

 22살 연상의 일본인 작가와 만나 혼인부터 이목을 받았던 사람. 아내를 인생의 동반자라 불렀던 그녀의 남편은 격렬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지혜와 깊은 통찰을 갖춘 재일제주인 장인 장모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독특하고 전형적인 제주여성과 오사카 서민 여성의 과감성, 용감성, 쾌활성, 낙천성이 조금 닮은 점이 있어요. 오사카생인 남편은 작가의 눈으로 그것을 봤으니 참 재밌었구나 생각해요. 제주의 문화가치가 소중하다는 것도 알아봤어요,"

 현순혜. 그는 남편과 세계를 돌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진짜 여행이란 것은 문화인류학이에요. 세계를 돌아봤지만 약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다 봤거든요."

 남편 오다 마코토. 방대한 저술은 그의 열정에서 나왔으리. 잠자는 시간도 나폴레옹처럼 네시간, 다섯시간. 원래 잠이 짧았던 남자란다. "그는 글쓰기 위해서 세상에 떨어진 사람 같았어요. 글로써 평화운동을 했죠. 같이 살면서 작가란 무엇인가 알았어요."

 오다는 장모의 인생을 그린 소설 「오모니」, 고베 지진으로 인해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 세상을 떠난 장인과 가족사를 그린 명작 「아버지를 밟다」를 통해 그 마음을 전했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상을 수상한 「아버지를…」는 극단 한라산에 의해 연극화돼 일본에서도 공연된 작품. "「아버지를 밟다」는 고전 그리스의 호메로스의 세계, 이게 제주에 현재 살아있구나 딱 들어맞아서 나왔어요. 당시 우리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실적만해도 옛날 그대로 장례를 치렀기 때문에 호메로스의 세계가 여기서 나왔구나 하는게 있거든요. 작품의 진수, 철학이 그거에요."

 "사람이란게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문학이란 시간이 지난 뒤에 진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것 같아요. 읽은 사람들이 나이를 거듭할수록 느끼는 것. 가치관이 다르게 되니까 문학 작품자체가 유효성을 갖게 되는 거죠." 남편은 작가였기 때문에 평화운동을 할 수 있었을거라는 이 인생의 동반자. "전쟁을 평화에 살리면 얼마나 세상이 좋게 바꿔지는가. 진짜 작가는 세계적으로 봐도 평화운동을 많이 한 사람이에요. 과학자도 마지막으로는 후회하면서 자기가 평화운동을 하는거에요. 다 그래요. 아인슈타인도 그렇고. 보편적 진리에요."

 흘릴 수 없는 것을 쓰는게 소설이고, 시고, 진짜 예술이라는 현순혜. 작가는 몇발자국 앞서가야 하는 존재라는 이 여자. 명쾌하다. "김대중은 정치가는 한발자국 앞선다 그랬지만 나는 안그래요. 예술가는 만 걸음을 뒤에 두고 발자국을 자기 마음속에 품어서 세 걸음을 앞서서 간다. 안그러면 진수는 안나와요. 다산도 그렇잖아요. 그 당시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본."

 # 1930년대 부모 도일…7자매 국적 반반씩

 현순혜. 말보다 그림이 좋을 것 같아 그림을 선택했다는 여자. "지금은 말 많은 사람하고 같이 살고 일을 계속 하다보니까 말이란 중요한거구나 재확인 했어요." 그녀가 웃는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배우며 그림 공부를 했다. 고흐, 모네 등 인상파의 풍경화를 많이 모사하면서. 토미요카 텟사이의 현대성에 감명을 받았고 정종여의 조선화 한폭에 영향을 받은 이 수묵화가. 1996년 그의 개인전을 본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화가는 "단 하나의 선의 움직임으로 화면의 복잡한 구성을 표현해 왔는데 그 억제된 붓의 움직임으로 정확한 관찰과 묘사를 환기시키는 힘은 괄목할만 하다"고 표현했었다.

 해녀출신 어머니와 어부였던 아버지가 현해탄을 건넌 것은 1930년대 초. 친족들이 모여살던 고베로 자연스레 정착을 했고, 고무공장을 하면서 딸 일곱을 키웠다. 가정은 그야말로 아마조네스. 여자 사회였다. 딸들은 모두 활달하고 공부도 잘했다. "어머님은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오모니」에도 그렇게 쓰여있지만. 한번도 엄하게 교육? 없었어요. 아버지도 가부장? 없었어요. 딸들도 개성있게 키웠어요. 너희들 같은 지붕 아래서 자랐느냐 어려서부터 들었어요." 고베는 제주사람 공동체였다. 현순혜는 어려서 보았다. 제주사람들이 제사때, 결혼, 장례치를 때 서로 돕는 모습을.

 부모님은 1960년대말 고향 제주 선산에 성묘가면서 해방후 처음 한국을 찾았다. 어머니 사고 소식을 듣고도 조선적이서 장례식에 못 갔던 부모. "부모는 당신들만 한국적으로 바꿔 여권을 받았어요." 딸들은 국적을 반씩 나눠가졌다. 1960년대 초 북에 간 언니가 있어서였다.

 부모의 장례식을 제주에서 치렀을 때다. 막내딸은 대비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국적을 조선적에서 한국적으로 바꿨다. 

 6년만에 남편 없이 찾은 제주. 그녀는 4·3평화기념관을 다시 들렀다. "세계2차대전 후의 뒤처리, 그것과 엇갈린 문제를 푸는 상징의 하나가 제주 4·3이라고 생각해요. 4·3의 핵심이 이제부터 큰 문젠데 기념관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낙엽귀근'. 잎이 지면 뿌리로 돌아간다는 이 말을 그녀는 좋아한다. "결국은 자기가 났거나 자랐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사람이란 고생하면 할수록 뭔가 얻는다. 진짜 아름다운 것은 짧다. 일기일회. 좋은 것도 조금밖에 없다.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제주도가 평화지향하는 섬이어야 한다는 현순혜.

 「내 조국은 세계입니다」에서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하는 문제는,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어디에서라도 와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태어나 혼자 죽어간다. 태어날 때건 죽을 때건 민족이나 국가, 하물며 국경 따위는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우주 속의 생명이라는 메커니즘 속에서만 살 수 있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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