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⑪ 카르스트 산맥을 넘어 방비엥으로

그런데 여행학교의 아이들은 오늘도 버스 밖 세상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언제나처럼 버스 안에서 자기들끼리의 이야기와 게임에 몰입해 있다. 결국, 보다 못한 내가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선다.
"이야~, 얘들아, 저기 저 산들 좀 봐~아!"
"우와~!"
그렇게, 아이들이 반응을 보이는가 싶더니, 딱 그 감탄사 한 마디뿐이다. 곧바로 자신들의 좀 전 화제로 돌아간다.
"그런데 있잖아 MC몽은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물론 한 번으로 쉽게 물러날 나도 아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하기로 한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감정을 잔뜩 실어 억양까지 한껏 높인다.
"어, 저기, 저 집 대나무로 지었네. 이~야, 전통 집인가 봐!"
"우왕! 진짜! 대나무다!"
내가 감정을 넣은 만큼 아이들의 반응 역시도 리얼하게 나오는가 싶더니, 나로서는 어떻게 두 가지의 대화가 연결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내용의 화제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바로 연결된다.
"우왕! '시크릿 가든' 보고 싶다."
"진짜! 현빈 너무 멋있어. 집에 가면 하루에 다 볼 거야!"
도대체 대나무집과 '시크릿 가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시크릿 가든이 대나무로 지어지기라도 했다든가, 아니면 현빈이 라오스에서 봉사활동이라도 해서 뉴스에 보도되었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튼 이번에도 아이들의 반응은 단발로 끝났다. 그때였다. 마침 창밖으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만약 학교를 다닌다면 중학교 1학년인 서희나 수경이 또래의 아이들이다. 나는 다시 여행학교 아이들의 눈을 창밖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저기 애들 물동이 들고 가는데…? 너네 또래다."
"불쌍하다…."
드디어 아이들의 감정이 이입되는가 싶더니…, 하필 그 순간에…, 라디오에서 동방신기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라오스의 라디오방송에서 대한민국의 가수인 동방신기의 노래가 대한민국에서 잠시 여행 온 아이들이 카르스트 산악지대를 넘어가고자 탄 버스에서 듣게 될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될까? 당연히도, 즉각, 차안은 아이들의 함성으로 난리가 났다. 동방신기가 라이브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해도 이보다 더 열광적일 순 없으리라!

아내와 나는 아이들 몰래 또 한숨을 쉰다. 아, 아이들은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게 될까. 보호자로서 교사로서 동료여행자로서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또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양 마냥 즐겁다. 차 안에서도, 배 안에서도, 호텔 방에서도, 식당에서도, 강변에서도, 산 위에서도, 그곳이 어느 곳이든 그들에겐 상관이 없다. '여행이 어때?'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10분의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재밌어요!'라는 대답을 돌려준다. 그래서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재차 물어보면, 마치 자기들끼리 미리 짜둔 것처럼 '그냥요!' 혹은 '다요!' 라는 대답 뿐 더도 덜도 없다. 그냥 여기 라오스가 좋다는 건, 대한민국에 있는 자신들의 시공간을 떠나온 것 자체가 즐겁다는 것일까. 그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자신들을 규율하던 학교도 부모도 없는, 혹은 스스로를 규율하는 압박도 없는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든 또는 무엇을 하지 않든지 그 모든 시간이 다 즐겁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미래의 뭔가를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현재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여행에서 뭔가를 보고 느끼고 배우기를 원하는 것은 나의 또 하나의 욕심이 아닐까.
그날 방비엥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한 턱 쏘았다. 여행자 거리에는 지난 여행에서 만난 친구 '미스터 리'가 계획대로 치킨 하우스를 막 오픈한 상태였다. 매상도 올려줄 겸, 삼촌이 계산할 테니 맘껏 먹어보라고 한 것이다. 아이들은 통닭은 기본이고 돈가스에 떡볶이에 라면에 김밥에 된장찌개에 팥빙수에 한 명당 서너 개의 음식들을 주문했다. 그렇게 배불리 한국음식을 먹은 날 저녁, 여행 떠나 처음으로 모두가 한 숙소에 묵으며 중간평가를 했다. 절반의 여행이 지난 시점에서 스스로의 여행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날 밤 한 명씩 지금까지 자신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내 마음이 봄날 눈 녹듯이 풀리기 시작했다. 아니, 조금 부끄럽기까지 했다. 아이들을 믿지 못한 마음 때문이다. 자기들끼리 게임만 하고, 수다만 떨고, 잠만 자는 줄 알았는데, 언제 그렇게 볼 것들을 보고 생각했는지 놀랍기까지 했다. 물론 아이들의 관심은 여행 중간점검이나 소감보다는 내일부터 바뀌게 될 모둠에 누가 함께하게 될 지에 더 가있고, 그들의 여행소감이라는 것이 우리 부부의 욕심에는 차지 않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볼 것도 할 것도 많은 이 넓은 세상에 나와서 기껏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모둠원인가 싶어 한심한 생각이 들다가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사실 인생이란 것도 그렇다. '무엇을 하는가, 어디로 가는가' 보다는 때로는 '누구와 함께인가'가 더 중요하기도 한 것이다. 다만 어른인 우리는 가끔 아닌 척할 뿐이고, 아이들은 솔직한 것 뿐이다.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