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잠녀] 5부 '잠녀'에서 미래를 읽다 -제주형 의제, 그리고…

▲ 지난 8~9일 구좌읍 일원에서 열린 제5회 해녀축제에서 제주 잠녀들이 거리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주시
세계 환경 전문가 등 제주잠녀·잠녀문화의 지속가능한 가치 평가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기대감 높아…지역적 지지 절실

"변변치 않게 살아온 이야기를 세계 전문가들이 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지난 9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WCC세계자연보전포럼 워크숍서 제주 잠녀를 대표해 참석했던 홍경자 한수어촌계장(63)은 그동안 가슴을 꽉 억눌렀던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열 마디 말이 필요 없었다. 그동안 제주 잠녀에 대한 불편했던 사회적 시선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 것으로 충분했다.

# 지속가능함의 상징으로

세계 유수의 환경 전문가들 앞에서 50년 경력의 베테랑 잠녀가 쏟아낸 말의 핵심은 '자연과의 공생을 전제한 지속가능한 발전'이었다.

제주의 자연 환경에 순응하며 바다밭을 일궜으며 민속지식을 전승하며 살아온 것 자체가 충분히 가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제주 잠녀가 고령화에 이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데는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무관하지 않은 만큼 '녹색 성장'의 모델로 삼을 만 하다는 점 등이 강조됐다.

우리 입으로 '그래 달라' 요청한 것이 아니라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유엔 환경프로그램(UNEP)와 제주여성거버넌스포럼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워크숍에는 세계 각국의 여성 지도자들과 전직 외교관, 생태 분야 전문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기대에 비해 '제주 여성성'이 부각되지 않은 대신 제주 잠녀·잠녀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제주가 가지고 있는 고유 문화에 대한 관심 회기와 정부 차원의 적극성 있는 대책 주문들 역시 제주잠녀·잠녀 문화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분위기는 홍 어촌계장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홍 어촌계장은 "잠녀 생활을 하면서 정말 꿈도 꾸지 못했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부심을 느낀다"며 "그만큼 잠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주잠녀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말들은 많았지만 아직까지 평가에 대해서는 미흡한데 대한 아쉬움도 깔려있다. 홍 어촌계장은 "예전에는 돈에 욕심이 많은 악착같은 인상이 강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잠녀를 귀하게 여기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아직까지 많은 잠녀들이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유네스코 등재 노력을 모르고 있지만 알고 있는 이들이나 앞으로 알게될 사람들 모두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어촌계장은 제주도가 지난해 구성 뒤 단 한차례 모임만을 가졌던 제주잠녀문화 세계화 워킹 그룹 멤버이기도 하다.

▲ 제5회 해녀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어린이와 함께하는 해녀어장 만들기’ 체험을 하는 모습. /사진=제주해녀박물관.
▲ 구좌읍 하도리에서 개통된 숨비소리길을 따라 잠녀와 탐방객이 함께 이야기하며 걷는 모습. /사진=제주해녀박물관.
# 해양문명사적 가치 관심 집중

현재 예정대로라면 오는 14일 WCC에서 제주형 의제의 하나인 '제주 잠녀의 지속가능성'의 발의, 다뤄지게 된다.

도는 이 발의안에서 국제적 차원에서 잠녀 공동체를 보호하고, 잠녀 문화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정책개발과 실행승인을 요구할 예정이다.

또 제주도와 한반도에 분포하고 있는 잠녀의 실태조사, 독특한 잠녀 문화의 학술적 가치 정립,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공동체와 공동체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방안 마련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제주잠녀·잠녀문화가 세계 문명사, 그것도 해양문명사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여성 중심의 해양문화 공동체가 없다는 점은 제주잠녀의 가치를 한껏 견인하고 있다.

여기에 별도의 장비 없이 수심 10m 이상까지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나잠 기술과 물질 도구, 노동요, 해신당이나 영등굿 등으로 집약되는 주술적 신념, 집단 경제의 실천, 지역사회 재투자, 상호 부조 등 유·무형의 문화적 유산이 복합된 점 등도 제주잠녀·잠녀문화의 강점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관련된 조사나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잠녀·잠녀문화 세계화 작업을 통해 이만큼 인식이 개선된 것은 고무적이다.

자연과 공존할 줄 아는 '21세기형 자연 보존형 인간 모델'이란 평가는 그러나 외부적 환경으로 멸실의 위기에 처한 잠녀·잠녀문화에 대한 경각심으로 이어진다.

한때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일본·러시아 바다에서 까지 자맥질을 했던 3만에 이르는 제주 잠녀는 현재 4881명에 불과하다.

잠녀·잠녀문화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겠다고는 했지만 보존 방안은 아직 불투명하다.

▲ 홍경자 한수어촌계장
# 지역차원 의식 전환 중요

홍 어촌계장의 감회는 그런 면에서 주목된다.

물질이 싫다고 잠깐 다른 일을 했던 홍 어촌계장은 숙명처럼 다시 바다로 나섰다. 보통의 잠녀들과는 조금 다른 과정을 밟았던 만큼 대안 역시 남다르다.

홍 어촌계장은 "옛날에야 여자들이 할 일도 없었고 보이는 게 바다인데 물질을 못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지만 지금은 누가 그렇게 하겠냐"며 "시절이 바뀌었으니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어릴 때부터 생업처럼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잠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할 것이 없어서 물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잠녀가 되기 위해 물질을 배우게 한다면 명맥을 이을 수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사실 그랬다. 지금까지는 어디가서 물질한다 큰 소리 한번 내본 적이 없지만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으로 보이고 살아온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 상황이 됐다. 그만큼 자부심이 생겼으니 인식이나 평가 역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민속지식이라는 것은 일부러 만든 것도, 억지로 잇게 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몸에 익히고 생활이 된 것들이다. 그것이 지역이란 특수성으로 접근하면 토착지식이 되는 것이고 단순히 옛 사람들의 생활방식 정도로 치부한다면 '과거'가 된다.

도가 제주잠녀·문화 세계화 5개년(2011~2015)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문화재청은 올 초 '제주 잠녀'를 대한민국무형문화유산국가목록(이하 국가목록)에 포함시켰다. 중요무형문화재 활성화 종합계획을 수립, 국가지정무형 문화유산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 현재 잠녀와 구전설화와 같이 지정돼있지 않은 무형문화재를 포괄할 수 있도록 하는 무형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을 수립, 19대 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위해 꼭 필요하다던 세계적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 역시 무난히 첫 삽을 떴다.

대표목록 등재가 최종 목표일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될 수 있다. 다음 차례는 지역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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