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면] 7.에필로그

▲ 검푸른 바다 건너 웅장하게 솟아있는 한라산이 섬으로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제주로 향하는 배에서 본 제주도 한라산 윤곽이 선명하다.
언제나 우리를 부르는 것 같지만
하지만 걸어서는 갈수 없는 그곳

풍족'윤택하지 않아도
누군가에는 생명의 땅

바쁜 일상으로 지쳐갈 때, 머리가 복잡하고 고민이 많을 때 우리는 '섬'을 찾는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또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쉬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섬'에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다. 섬은 언제나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다.

△걸어서는 갈 수 없는 섬

아득한 바다는 오로지 수평선 뿐이다. 망망대해를 거쳐온 이들에게는 섬은 분명히 모처럼의 안식처이자 생명의 땅이다. 하지만 모든 섬이 풍족하고 윤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대체로 섬 주변은 거센 파도와 강한 바람과의 오랜 싸움의 흔적이 남는다. 파도·바람·식수·표류·도망·침략 등의 단어들은 섬의 삶을 대신하는 중요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섬은 무언가 다르다. 제주도에 속해 있는 부속섬은 더욱 그렇다. 가까운 섬은 분명히 제주 본섬의 연장선에 딸려 있고, 섬 주민들의 삶 역시 본섬에 다르지 않게 마련이지만, 바다로 떨어져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뱃길로 불과 10여분, 길게는 2시간 거리에 있다 해도 걸어서는 1분 거리에 놓인 가까운 섬조차 갈 수 없다. '어떤 섬도 걸어서 갈 수 없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사실만으로도 제주 부속섬들의 존재 이유는 본섬과 다르다.

▲ 바쁜 일상으로 지쳐갈 때,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을 때 섬은 언제나 우리를 반겨준다. 마라도 돌하르방.
△'개발과 보호' 영원한 숙제

태풍의 길목인 마라도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이 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닷바람과 사람 키를 넘는 나무를 찾아보기 힘든 섬은 거칠고 척박하다. 1883년 김(金)·나(羅)·한(韓) 등 3성(姓)의 입도로 시작된 마을의 역사는 지금은 53세대·108명에 이른다.

섬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마라도도 많은 것이 변했다. 어떤 이는 마라도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넓은 들판과 바닷바람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토 최남단-환상의 섬'의 이미지가 알려지면서 매년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마라도는 찾는다. 마라도에서 자발적 유배를 청한 작가들도 있다.

이동인구가 늘다보니 '자장면집과 마라도'라는 이질적인 조합이 탄생하기도 한다. 게다가 일부 건물들은 불법건축물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그 '뒷맛'은 더욱 씁쓸해진다.

마라도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개발과 보호'라는 영원한 숙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 바쁜 일상으로 지쳐갈 때,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을 때 섬은 언제나 우리를 반겨준다. 가파도.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파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고인돌과 선돌이 그 증거들이다. 가파도에는 아주 일찍이 학교가 건립됐고, 선진적 교육 기회를 부여받았다. 섬에서 길러진 인재들은 제주현대사의 획을 긋는다.

가파도는 기본적으로 농사에 유리한 평탄한 섬이다. 접시 모양의 평탄한 지형에다 토양의 풍화도도 높아 농사짓기에 유리하다. 제주도의 부속섬 중에서 용수조건도 뛰어나고 주변의 어로조건도 좋다. 전복, 옥돔, 소라, 자리돔 등이 좋다.

가파도는 그저 마라도 가는 뱃전에 잠시 스쳐 지나는 섬이었다. 수년전까지는 그랬다. 최남단의 상징성을 지난 마라도에 밀려 언제나 2인자였다. 하지만 청보리 축제가 개최되고 가파도 올레가 개장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 가파도가 또 한번 변하고 있다. 세계최초로 '탄소없는 섬'으로 거듭났다. 전신주와 화력발전 대신 풍력·태양광발전, 전기자동차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가파도 전체 144가구 297동에 색채도 입혀졌다. 포르투갈 마데아라, 프랑스 니스 처럼 색채가 출렁이는 그림같은 마을로 변신한 것이다. 변방이었던 가파도가 '중심'이 되고 있다.

▲ 바쁜 일상으로 지쳐갈 때,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을 때 섬은 언제나 우리를 반겨준다. 비양도의 애기업은 돌.
△빠름 아닌 느림 간직

비양도는 제주 본섬에서 3㎞의 지척이지만, 섬을 오가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거리는 짧아도 교통 편한 제주도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비양도와 본섬을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비양호' 뿐이다.

아름다운 쪽빛바다에 우뚝 솟아있는 비양도. 하지만 그 속에서 생을 이어왔던 주민들의 삶은 비양도의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화산 등성이에는 같대만 무성하고 밭은 없어 식량 마련이 만만치 않았다. 해저파이프로 식수가 공급되기 이전에는 빗물이 '생명수'였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비양도 인근 어장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니다. 비양도를 마주보는 제주 서북해안 마을 어촌계가 이곳에서 대대적으로 전복 등을 채취해왔기 때문이다. 비양도에서의 삶은 옥빛 바다와는 전혀 다른 현실이다.

비양도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차가 한 대도 없다는 점이다. 쪽빛바다에 차까지 없는 섬이다. 비양도는 '빠름'이 아니라 '느림'을 간직한 섬이다.

▲ 바쁜 일상으로 지쳐갈 때,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을 때 섬은 언제나 우리를 반겨준다. 우도 등대.
△아름다움에 숨겨진 거친 숨비소리

우도는 아름답다. 특히 유채꽃이 만발한 5월의 우도는 감히 비교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다. 우도팔경과 우도등대, 해안절벽 등은 우도의 자랑이다.

이 아름다움들의 이면에는 해녀들의 거친 '숨비소리'가 녹아있다. 동천진항의 선착장 앞에 건립된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는 우도 해녀들의 억척스러운 삶과 드높았던 항일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100년이 넘은 우도 등대 역시 일본 제국주의의 잔해물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세상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도해녀들은 여전히 살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거치 바다로 나간다. 그 '숨비소리'가 제주바다보다 더 깊게 느껴진다. 우도를 들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 바쁜 일상으로 지쳐갈 때,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을 때 섬은 언제나 우리를 반겨준다. 추자도.
△수탈의 섬에서 매력의 섬으로

제주의 부속섬 중 가장 본섬과 다른 곳이 있다면 추자도일 것이다. 행정구역명은 분명 제주시 추자면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제주 토박이말을 듣기란 쉽지 않다. 호남 말투가 대부분이다. 추자도 1세대들은 전라도적이다. 하지만 20여년전부터 제주도로 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최근에는 '제주도적'인 면모가 많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연구거리일 것이다.

섬에서의 삶은 어디나 순탄하지 않았겠지만 추자 주민들은 끊임없이 왜구에게 시달렸다. 왜구들은 제집 드나들 듯 추자군도를 들이쳤으며 심지어 20세기 초반까지도 수적(水賊)이란 이름의 바다도둑떼가 설쳐댔다.

일제시대는 일본인들의 수탈에 반발해 발생한 '시와다그물사건'이라는 어민항쟁이 전해지고 있다.

지감의 추자도는 매력적인 섬이다. 이곳에서는 섬과 바다, 바람, 인간이 하나로 동화됨을 느낄 수 있다.

△필연적 관계 태풍 이겨내길

태풍과 섬은 필연적 운명이다. 떼려 놓고 싶지만 뗄 수가 없다. 수많은 태풍이 섬 곳곳에 생채기를 남겼다. 시간이 흘러 그 상처가  나을 만 하면 또 다른 태풍이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긴다.

지난 8월 말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마라도·가파도·비양도·우도·추자도 등 제주 부속섬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섬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든 일어난다. 상처가 아물어가길 기다리기에는 섬 속에서의 삶이 그리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이번에도 다시 희망을 안고 다시 일어서기를 모두가 손 모아 기다린다.

언제나 우리를 반기듯이 앞으로도 늘 열려있을 섬. 자연이 우리에게 내려준 너무나 소중하고 큰 선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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