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⑫ 이국땅 방비엥에서 친구 만들기

그에 비하면 함께 온 두 명의 교사는 전형적인 시골뜨기의 얼굴이다. 한 분은 영어, 다른 한 분은 컴퓨터를 가르친다고 했다. 두 분 선생님은 내일이 시험 날인데도 아이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귀띔해줬다. 그만큼 이곳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과의 만남을 기다려왔다는 뜻일 테다. 아내와 내가 라오스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서로에 대해 탐색만 하고 있다. 결국 내가 나서서 서로의 이름을 소개하게 하고 오늘 소풍의 목적지인 '땀짱' 동굴을 향해 출발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은 참 신기한 존재다. 쭈뼛거릴 때는 언제고, 서로 영어가 서툰 처지인데도 동굴로 걸어가는 1시간 남짓의 시간 사이에 어느새 끼리끼리 친해진다. 동갑내기를 찾아내고, 좋아하는 가수 이름을 확인하고, 두 나라 학교의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한다. 그렇게 두 나라의 아이들은 전혀 다른 자연환경이나 교육환경에서 살아온 짧지 않은 세월을 잠깐의 시간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훌쩍 뛰어넘어 소통한다.
동굴 탐험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위해 인근 식당을 찾았다. 라오 아이들은 각자의 도시락을 싸왔다.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음식을 맛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힘주어 세워준다.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다. 입이 짧기로 유명한 유진이까지 숨을 꾹 참고 삼키는 것이 분명한데도, 얼굴은 히죽 웃어 보인다. 먼저 점심을 해치운 남자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한다. 나도 끼어볼까 하다가 햇살을 좋아 잔디밭에 벌러덩 누웠다. 남자 아이들이 카르스트 봉우리를 배경으로 공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햇살에 눈이 부셔 가늘게 눈을 뜨고 보니, 어째 그들 모두가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함께 지내온 사이인 것만 같다. 사내 녀석들이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둥근 축구공 하나면 전 후반 10분씩에 친구가 되고 만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음날 저녁 자기들끼리 또 만났다. 라오 아이들이 시험이 끝난 시간에 약속을 정해 저녁식사를 같이 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은 녀석들은 그 다음다음 날 아침 라오 아이들의 학교에 놀러갔다. 라오 친구들이 게스트하우스까지 오토바이를 몇 대씩 타고 와서 태우고 간 것이다. 그날 아침 친구들의 오토바이를 타고 그들 학교에 놀러갔던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인상 깊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방비엥에 머물렀던 며칠 동안의 아이들 일기에는 그곳 학교의 풍경이 잘 담겨 있다.
"처음엔 많이 어색했는데 서로 이름을 물어보고 공감대를 찾으면서 많이 친해졌다. 써머, 키후, 콘, 설 등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너무 기뻤다.(방비엥 2일째) 어제 놀았던 라오스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 보고 내일 학교로 오라는데 정말 설레고 긴장된다. 라오스 학교는 과연 어떨까?(방비엥 3일째) 라오스 학교는 정말 자연과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것 같다. 교실 크기는 우리 학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운동장은 우리보다 100배는 더 넓은 것 같다. 학교 뒤에는 강이 흐르고 숲이 있어서 마음껏 뛰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점이라면 쓰레기가 많다. 친구들과 라오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다시는 못 만난다는 생각에 많이 슬펐다.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메일을 보낼 거다.(방비엥 4일째)"(박성호·열일곱 살)
두 나라의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되었을까. 라오 아이들 중에는 이미 한국어를 익히고 태권도를 배운 친구도 있고,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인 아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대한민국이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곳 아이들의 순박한 모습과 교실은 초라해도 운동장과 숲이 넓은 학교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낯선 타국에서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과 만나고 초대받고 헤어지고 못내 아쉬워했던 그 모든 감정들이 그들에겐 오랫동안 아주 특별하고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일기에 적었던 것처럼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한 동안 라오 친구들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페이스북으로 소통을 했다.)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