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잠녀] 5부 '잠녀'에서 미래를 읽다 - 가파도 민속마을 추진

▲ 김성훈 작 ‘가파도 올레’
섬과 바다, 환경에 대한 나름의 해석으로 독창적 문화 구축 평가
돌담·불턱 등 원형 보존 불구 개발 작업 속도…'우선 순위' 정해야

갓 '수필가'란 이름을 단 40대 여성 문인의 눈에 잠녀는 특별했다. "해녀(잠녀)들은 단 두가지 의태어로서 실존적 삶을 표현하고 있다. 수면 밑으로 곤두박칠치는 세로획으로 몸뚱이와 바다를 가르는 숨비소리, 한 치의 가식이나 미사여구가 없는 불립무자로, 생명력 넘치는 강인함과 고단함을 말하고 있다".그리고 올 4월 사진작가 출신의 류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숨비'가 바다 건너 중국 땅을 밟아 눈길을 끌었다. 바다를 의지해 살아온 잠녀 3대의 이야기를 담은 97분의 영상은 당장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다름 아닌 '가파도'다. 이 가파도가 '소리없이' 잠녀문화를 테마로한 민속마을로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 가파도, 그리고 잠녀·잠녀문화

벌써 6년도 더 전에 쓰여진 수필이지만 여전히 가슴 절절하다. 영화 '숨비'를 위해 감독은 3년을 섬 주민으로 살았다. 잠녀들의 삶 속에 밀착하여 그녀들과 함께 호흡하며 아름답고 생생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처럼 억척스럽게 바다 밑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퍼올리는 모습은 없다. 일반인들은 그저 귀동냥이 전부였던 잠녀의 삶과 사회 변화, 그리고 모녀 간의 갈등이 바다를 통해 해소되고 또 소통되는 모습을 그렸다.

우울하거나 낡고 오래된 느낌 대신 젊고 시끌벅적한 사람냄새 나는 느낌이 시종 스크린을 물들인다. 어머니와 할머니 잠녀는 가파도에서 오랫동안 물질로 살아온 주민들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잠녀 중 누구도 자신과 같은 길을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익숙해질 뿐이다. 어머니와 같은 길을 따라 걷는 딸들은 바다가 한 몸이 되는 만큼 어머니네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또 세상을 배운다. 제주 섬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것이지만 가파도여서 더 생생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청보리 축제'며 '탄소제로' 같은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지만 바다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던 섬 속 섬에서 잠녀들을 빼고는 역사를 이야기 하기 어렵다.

잠녀·잠녀문화 정책 분산 등에 대한 고민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잠녀문화를 주제로 한 '가파도 민속마을' 사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문화재청의 의지는 분명하다. 양반 마을을 중심으로 한 민속마을 사업의 확대라는 취지도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마을을 발굴, 단순히 보존하는 것 이상의 민속문화를 지키겠다는 복안이 분명하다.

▲ 가파도 상동 할망당
# 문화 복원으로 모자라

서귀포시는 지난해 가파도 잠녀 문화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2013년까지 3억 원을 들여 가파도의 '불턱', 연자방아, 공동우물, '할망당' 등 해녀문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주변 경관과 어울리도록 복원하기로 했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하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불을 쬐며 쉬던 장소이고, 할망당은 해녀들의 안녕을 비는 신당(神堂)으로 잠녀문화의 대표적 유산들이다. 이를 소재로 '가파도의 보물 이야기'라는 스토리텔링이 꾸려지고, 마을 안내사는 방문객들에게 해녀문화를 비롯해 가파도의 역사와 생활문화, 자연경관을 소개한다는 '6차 산업'을 방불케 하는 사업 구상까지 짰다.

가파도 잠녀 문화만의 특징도 한 몫했다.

가파도에도 몇 해 전인가 '할망바당'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가파도 어촌계는 65세 이상 잠녀들만 물질을 하는 수심 4~5m 깊이의 가파도 전역의 얕은 바다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곳에는 상군 잠녀는 절대 걸음하지 않는다. 자력으로 깊은 물까지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잠녀들은 할망바다 외 공간이 모두 작업장이다. 이 곳은 고령 잠녀들의 생계를 위한 공간이다. 이른바 게석 문화다.

"전복도 한 짐, 구젱기도 한 짐 허는 대상군이 뒈라이"하며 아직은 바다가 서툰 아기 잠녀들의 망사리나 오랜 세월 바다밭을 일구고 지켜온 노잠녀의 망사리에 한웅큼 물건을 퍼 주는 '게석'은 잠녀 사회에서 전통 해녀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응원과 격려의 상징이다.

할망바다에는 매년 7월 자망어업으로 잡힌 8㎝ 미만의 잔소라를 넣어둔다.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물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갈수록 해산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지만 서로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자는 뜻이 담겨있다.

▲ 가파도 잠녀들이 돌미역 작업을 하고 있다.
# 원형 보전-상품화 경계 절실

하지만 잠녀문화 복원 사업에는 빈집을 이용한 게스트하우스 조성과 물놀이 체험장, 주말 먹거리장터, 특산물 판매관, 해안 외곽길 정비, 전기자동차와 마차 운영 프로그램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7월 진행된 현지조사에서 이들에 따른 문제점이 노출됐다. 현지조사는 전문가·지자체 추천 233개 마을 중 3차에 걸친 엄정한 자문을 거쳐 낙점된 6개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파도에 대한 평가는 후했다.

섬과 바다라는 환경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적응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생산해낸 제주도의 축소판으로 어촌민속마을로의 강점이 두드러진 점이 일단 눈길을 끌었다.

자연의 것을 그대로 이용한 돌담과 마을길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고 1910~1940년대 건축된 전통가옥도 남녀평등·근면 정신 등이 복합된 제주 전통가옥 등이 민속마을의 전통적 경관을 만드는데 주효할 것이란 의견도 제시됐다.

하지만 현재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교체돼 있고 풀덧벽에 부분적으로 시멘트가 덧발라져 있는 등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요구됐다.

6개 마을 중 가장 민속마을로의 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이지만 답을 찾는 데는 지자체의 적극적 의지가 절실하다. 자체적으로 중장기 복원·정비 계획을 수립해 시행할 때 민속마을 지정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지만 현재 잠녀 관련 정책 중 그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는 아직 불턱이나 할망당 등에 대한 문화재 지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됐지만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훼손된다. 다시 만드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잠녀·잠녀문화 관련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눈 앞에 있지만 곧 눈 앞에서 사라진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만약'에 대한 준비는 요원하다.

잠녀·잠녀문화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세계가 인증해주기를 바라는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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