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예술작품 기행'] 34. 발리의 미술

우붓 양식 아름다운 자연, 주민들 전체적인 삶의 내용이 주제
바뚜안 양식 발리의 공간, 우주관 근거로 신화적인 세계 표현

▲ 우붓 양식

발리, 제주와 자매결연 도시

제주도가 발리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은 1989년 6월 16일이다. 그 후 지속적으로 제주도는 목각기술, 바틱기술을 연수하기 위해 발리를 방문하였고, 발리는 축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제주를 방문하는 등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발리는 섬으로 인도네시아공화국의 33개의 1급 지방자치체 중 한 개의 주이다. 발리 주는 본섬인 발리주와 몇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발리주를 포함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로 다섯 개의 큰 섬과 30개의 군도를 포함 약 13,7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토의 크기는 우리나라보다 10.5배에 달하고 인구는 2억 4천만이 넘는다. 단일 국가 인구수로는 중국, 인도, 미국 다음으로 세계 네 번째가 된다.

인도네시아의 주요 섬은 자마,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 파푸아이다. 인도네시아는 다민족 신생국가로 인구의 87. 1%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주된 민족은 70종족에 달하며 소수 민족을 포함하면 약 300종족이 넘는다. 1949년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해방되면서 신생국가인 인도네시아가 탄생하였고, 그 이전에는 각 섬이 다른 나라, 다른 왕국이었다.

발리는 힌두교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에 이슬람교를 믿는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현재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약 80%까지 줄어들었다.

발리의 인구는 약 310만 명, 주된 생업은 농업이다. 농업이 경제 총생산의 40%에 달하며 벼농사가 주를 이룬다. 발리는 주로 벼농사 중심이었으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도시나 관광지 일자리를 선호하다보니 농림어업 부문이 1971년 66. 7%에서 2004년 35.5%나 감소하였다. 산업 변화의 추세에 따라 관광산업은 2008년 발리의 경제 40%를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또 의류산업은 발리 수출의 50%를 담당하고 있고, 등나무, 대나무, 열대 목재의 민간 공예가구와 그림을 포함한 발리 공예품 수출은 15억불 이상에 달한다.

발리는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발리가 유럽인들에게 낙원이라는 이미지로 떠오른 것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다. 1924년에 식민지 종주국인 네덜란드 선박회사가 발리에 정기선을 운항함으로써 발리 관광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열대지방 섬나라를 열광적으로 동경하였고 섬나라에 가고 싶어 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많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식민지 발리를 관광지로 정하고 현재 '자카르타'인 '바타비아'에 관광국을 설립하였다. 이와 같이 네덜란드 왕립 우편 선박회사가 운영하는 발리 패키지여행이 시작되면서 유럽 사회에 발리가 주목받게 되었다.

1920년대에 발리 여행객이 1,200~3,000명이었던 것이 1930년대 중반에는 연간 30,000명으로 늘어날 정도였다. 이처럼 발리가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발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것과 더불어 사는 발리인들의 화려하고 세련된 힌두교 문화 때문이었다(기종수, 2010).

▲ 바뚜안 양식

발리 문화부흥의 주역 화가들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 발리의 문화를 진작시킨 사람은 기얀야르 영주인 수카와티 부자(父子)였다. 이들에 의해 발리는 오늘날 국제적인 관광지로 주목받는 '예술의 마을 우붓(Ubud)'이 탄생하였다. 네덜란드 식민지 정부의 최대 협력자였던 수카와티 부자는 우붓 왕궁의 한쪽에 숙박 시설을 마련하고 유럽 예술가들을 초빙하여 발리 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한 자문을 구하였다.

당시 발리에 초대된 예술가는 독일인 화가 월터 스피스(Walter Spies, 1895~1942)와 네덜란드 화가 루돌프 보네(Rudolf Bonnet, 1895~1978)였다. 1931년 발리는 파리식민지박람회를 계기로 세계에 알려졌다. 이때 네덜란드관은 발리가 주제였고, 그때 발리의 무용단이 공연을 함으로써 유럽예술가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발리는 1930년대에 비로소 문화부흥시대를 맞이하였다. 독일의 화가 월터 스피스는 1927년부터 1940년까지 13년간 우붓에 살면서 발리의 새로운 문화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그의 그림들은 루소, 샤갈, 클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는 화가 이외에도 음악가, 언어학자, 무용가, 연출가, 사진가, 영화제작자, 고고학자, 인류학자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예술가였다. 월터 스피스는 독일 국적을 가진 러시아 태생으로 독일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억류되기도 하였다. 현재 공연되는 발리의 유명한 '께짝 댄스'나 '바롱 댄스'는 그에 의해서 재연출된 작품들이라고 한다. 그는 발리의 '가믈란 음악'을 음반으로 만들었고, 구미의 잡지에 발리의 회화와 사진을 발표하여 발리를 세계에 알렸다. 월터 스피스로 인해 이후 많은 구미의 예술가나 학자들이 우붓에 살게 되었다. 

루돌프 보네(Rudolf Bonnet)는 외국인 화가 신분으로 발리에 왔다. 그의 작품은 발리에서 유명한 네카미술관에 많이 소장되어 있다. 보네는 1929년 발리에 도착하여 섬의 매력에 젖어 수십 년 동안 우붓에 살면서 발리의 전통 회화를 서양화 스타일로 구현하였다. 보네는 1936년 '위대한 빛'이라는 이름의 '피타 마하' 화가협회의 창립을 도왔다. 1956년 우붓에 있는 뿌리 루키산 미술관 설립에 힘썼다. 오늘날 발리 현대 회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보네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Bali, 1995).

▲ 영 아티스트 양식

발리의 현대미술

흔히 발리의 르네상스라고 하면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로 인식된다. 발리 전통회화에 서양화의 영향이 스며들면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발리의 전통회화라고 생각하는 현대판 우붓 양식과 바뚜안 양식이 탄생하였다(기종수, 2010). 발리의 토착회화에 서구의 화가들에 의해 서양화의 원근법과 음영법이 도입된 결과였다.

우붓 양식은 1936년 스피스와 보네가 지원한 파타 마하 예술협회를 중심으로 창작되었다. 약 150여명의 협회 회원들은 관광용 그림의 수준을 높이고, 전람회 개최, 적당한 작품 가격, 해외 전시 활동 등 발리 회화의 홍보에 주력하였다. 우붓 양식은 발리의 전체적인 삶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농사를 짓거나 과일을 따는 풍경, 사원에서의 의례, 춤, 주민들의 인물상 등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스피스의 원근법, 음영법, 보네의 서양화의 개념을 소화한 발리의 화가들에 의해서 탄생한 것이 우붓 양식이다.

바뚜안 양식은 우붓 남쪽 바뚜안 마을에서 그려진 새로운 서양화 스타일이다. 화면 가득 어두운 색채를 많이 쓰는 바뚜안 양식은 신화를 소재로 하는 그림에 많이 활용되었다. 바뚜안 양식 또한 서양화의 원근법과 음영법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뚜안 양식은 발리의 공간과 우주관을 근거로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주로 원색보다는 검은 색이나 모노크롬을 사용하는 것이 바뚜안 양식의 특징이다.

1970년 우붓의 남쪽 마을 뻥고써칸 마을의 데와 뇨만 바뚜안 형제를 중심으로 설립된 '미술가 공동체'에서 이루어낸 뻥고써칸 양식은 연한 색채로 그린 꽃, 새, 노동의 풍요를 그리고 있으며 발리의 새로운 회화 양식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1980년대 아카데미 출신 화가들이 그린 영 아티스트 양식은 구상에서 추상까지 개성적인 표현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발리 우붓의 유명한 미술관은 네카 미술관, 뿌리 루키산 미술관, 아공라이 갤러리 등이다(Bali, 1995). 네카 미술관을 설립한 스테자 네카와 그의 아버지 와양 네카도 파타 마하의 설립에 이바지 하였다. 네카 미술관에는 발리의 토착 전통회화는 물론 우붓 양식, 바뚜안 양식의 회화들이 연중 전시되고 있다. 뿌리 루키산 미술관과 아공 라이 갤러리도 발리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는 발리의 문화예술은 혹여 고답적으로만 머물 수 있는 그들의 전통문화를 재연출하여 관광에 이바지하고자 한 발리 주민 모두의 노력 때문이다. 또 구미 예술가들의 지원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여 스스로 독자적인 예술 양식을 개척한 발리 화가들의 노력도 갈채를 보낼 만하다. 오늘날 우붓을 중심으로 한 발리의 민족예술이 창조적으로 계승될 수 있었던 것은 서구의 예술가와 발리의 예술가들의 조화로운 화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발리의 전통예술은 100년도 채 안된 재창조된 예술이다. 발리의 문화예술을 통해 전통과 계승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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