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⑬ 우리는 히늡 마을을 방문한 첫 외국인

▲ 히늡 초등학교의 순박한 아이들.
 '히늡'이라는 산골마을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는 황톳길을 따라 스무 채 정도 될까 싶은 나무집들이 있었고, 돼지며 닭이며 개나 오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집과 길과 빨래줄 사이를 드나들고 있었다.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들이 여행학교 아이들이 배낭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죄다 나온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우리들이 이 마을에 발을 들인 첫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이 역시도 '미스터 리' 덕분이다. 라오스 시골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가 방비엥에서 알고 지내는 이의 고향 마을을 소개해준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몇몇 분들이 기금을 모아 그 마을에 우물을 파주었는데, 마침 그 분들이 공사 완공에 맞추어서 방문하게 되어 우리 일행도 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잔치가 벌어졌다. 우물이 생겼고, 마을이 생기고 처음으로 외국인 손님이 방문하였으니 잔치가 없을 수 없다. 돼지를 한 마리 잡는다 하여, 손을 보태는 의미로 한 마리 값을 내겠다고 했더니 한꺼번에 두 마리를 잡기로 했다. 동네 꼬마들과 눈을 맞추며 아내와 함께 마을을 돌아보는데, 곧 돼지를 잡을 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운, 영준, 승현, 도솔, 서희 등 여행학교의 '중딩'들이 겁도 없이 돼지 잡는 광경을 보겠다며 몰려간다. 아내와 나도 따라갔으나, 결국 멱을 막 따려는 결정적 장면에서 고개를 돌리고 이장님 집으로 돌아왔다. '겁 없는 중딩'들은 생전 처음임이 분명한데도 남김없이 보고 와서 그 처참했던 광경을 생생히 중계하는 냉혹함(?)을 보여주었다.

▲ 히늡 마을이 생기고 첫 외국인이 방문한 날.
 깃털 같은 어둠이 가볍게 내리고, 이장님 댁 마당에는 커다란 밀주 통 하나가 놓였다. 우리네 단지처럼 생긴 통인데 긴 빨대가 두 개 꽂혔다. 이것이 마을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오래된 전통이란다. 밀주 통을 사이에 두고 이장님과 마주 앉아 빨대로 빨아올려 술을 마시는 것이다. 말가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우리 청주와 비길만하다. '고딩'인 성호와 희경이가 눈치를 살피더니 자리에 앉아 밀주를 술술 빨아올리자, 다음에는 대학생인 상훈이와 하영이가 나서고, 이어서 '겁 없는 중딩'들이 앉기 시작하더니 1학년 꼬마들까지도 한 명 빠짐없이 마을 분들과 마주앉아 빨대를 통해 올라오는 밀주의 달착지근함과 이방인에 대한 환영의 마음을 쪽쪽 마셔댄다. 그 사이에 마당 한 편에선 꿀꿀거리던 돼지가 어느새 쇠꼬챙이에 꿰어진 고기 덩어리가 되어 노릇노릇 냄새를 날리고, 집안마루와 마당에는 '찐밥'과 고기와 술이 한 상 차려진다. 수저가 없는 밥상. 아이들은 잠시 어색해하지만 저어하지는 않는다. 곧 현지인들처럼 손으로 밥을 주물럭주물럭 거리다가 쏘옥 입으로 가져가고, 돼지털이 숭숭 박힌 고깃덩이도 잘 씹어댄다. 

 그날 밤 우리들은 3~4명씩 짝을 지어 마을 분들의 집에 가서 잠을 잤다. 아내와 나, 그리고 수경이와 서희가 함께 잔 집에는 할머니 한 분과 어린 손자가 있었다. 집은 나무널판들로 짜졌는데, 통나무 기둥으로 땅바닥에서 1.5m 정도의 공간을 띄웠다. 낮에 보니 그 아래 공간에서 햇빛을 피해 베를 짜고 지푸라기로 새끼를 꼬는 일을 했다. 실내에는 부엌과 방이 분리되어 있고 방은 두 개가 잇대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의외로 텔레비전이 있다. 전기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더니, TV는 선발주자로 빠질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방바닥에 놓인 부채가 하도 예뻐 이리저리 돌려보고 부쳐보고 하는데, 할머니께서 손자를 시켜 선풍기를 가져오게 하신다. 하지만 그날 밤은 덥지 않았다. 오히려 추웠다. 우리들은 씻지 않아 구린 냄새가 진동을 하는 담요를 두 장씩이나 덮고도 틈이 벌어진 나무널판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새벽녘에는 몸을 떨어야했으니까.

▲ '조물락 조물락' 현지인이 되어 가는 아이들.
 다음날 아침. 그렇게 라오스 산골마을의 첫 이방인이 되어 하룻밤을 보낸 아이들은 '잠들은 잘 잤니?'라는 나의 아침인사에 밤사이의 에피소드를 쏟아놓는다. 
 "하영 언니가 눈에서 렌즈 빼는데 식구들이 전부 신기해서 쳐다보는 거예요. 무슨 외계인 보듯이." "저녁 내내 온 가족이 우리만 쳐다보고 계셔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그냥 난감했어요." "새벽에 깜짝 놀랐어요. 눈 떴는데 아기들이 우리들을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는 거예요." "밤새 닭들이 울었거든요. 알고 보니까 우리 집 사람들이 우리 땜에 닭장에서 잤어요. 그래서 밤새 닭들이 그리 울었던 거였어요."

 다들 씩씩하다. 밤새 생겨난 이야기도 많다. 그날 아침 '바람이 있다면 여행이 그들에게 이처럼 많은 이야기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기가 없어 아쉽고 말이 안 통해 답답했다고는 해도, 잠자리가 춥고 냄새 나고 화장실이 없다고 불평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할머니가 아저씨가 아줌마가 자신들을 귀한 손님으로 대해주는 것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아침 나는 우리들의 여행이 그렇게 중반을 지나 깊이를 더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침을 먹고 인근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우물을 파준 한국 분들이 이곳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학용품과 축구공을 전달할 계획이어서 함께 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교실로 들어서며 칠판도 공책도 책상도 연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교실환경에 당황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나눠줄 볼펜과 공책을 한 아름 쥔 아이들의 손이 작게 흔들렸다. 여행학교 아이들로부터 학용품을 받아든 이곳 아이들은 쉽게 포장지를 뜯지 못했다. 포장지를 뜯은 아이는 또 포장지를 쉽게 버리지 못했다. 볼펜 하나 공책 한 권을 그처럼 귀하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이곳 아이들의 태도 앞에서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또 손이 흔들린다. 무언가를 나누어준다는 기쁨과 함께 왠지 모를 미안함이 그들 눈동자에 겹쳐진다. 나 또한 마음이 무겁다. 다함께 어울려 운동장에서 축구라도 한 판 했으면 좋았을 걸…. 하지만 이방인들의 얼굴에 또 미소를 짓게 하는 것도 이곳 아이들이다. 어찌 그리 맑은 눈빛을 하고 있는지, 어찌 그런 싱싱한 웃음을 보여주는지….    

 그날 아침, 여행학교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나무로 엮어 만든 엉성한 그곳의 교실과 대한민국의 현대식 학교를 비교했을까, 아니면 그곳 아이들의 맑고 싱싱한 눈빛이나 미소에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자신들의 힘든 일상을 겹쳐 보았을까. 아니면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로서는 그 마음들을 짐작할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든 그날 아침의 풍경은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잊지 못한 한 장면이 되었을 듯싶다.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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