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68> 4·3수형자 심사 ③

   
 
  2005년 3월17일 수형자 606명이 상정된 4·3위원회 회의 서두에 이해찬 총리가 인사말을 하는 모습을 보도진이 취재하고 있다. 곧이어 비공개로 회의가 진행되자 열띤 공방이 오갔다.  
 

국방·법무장관 "따로 심의하자" 연기 주장
박재승 위원장, 사례 열거해 조목조목 반박

4·3수형자 심사 ③
2005년 3월17일 희생자 3541명에 대한 심사안건이 상정된 제10차 4·3위원회 전체회의는 회의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동안 "된다" "안된다"로 논란이 많았던 수형자 606명이 상정되면서 처음으로 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느냐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주재한 이날 회의에서 수형자 심의안건이 상정되자, 예상했던 대로 윤광웅 국방장관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윤 장관은 "당시 진압작전을 수행했거나 군법회의를 담당했던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고, 안보 관련 단체에서 수형자 모두를 희생자로 결정하는데 다른 의견이 있다"고 전하고, "따라서 수형자 심사는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를 모아 신중히 결정하기 위해 재고해달라"면서 심의 연기를 주장했다.

이어 국방부 추천 위원인 유재갑 위원이 나서 강도 높게 수형자 심사문제를 비난했다. 이렇게 되자 분위기는 초반부터 싸늘하게 됐다. 이에 맞서 희생자심사소위원회 위원인 임문철·김삼웅·서중석·박창욱 위원 등이 차례로 나서서 군법회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심사소위의 결의대로 원안 통과를 주장했다.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김승규 법무장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 장관은 "헌법재판소에서 네가지 기준을 제시했고, 수형인명부에 죄명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수형자 모두를 희생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제하고, "이 점은 신중히 가려야 될 필요가 있으므로 자료를 찾아보고 최대한 판단해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따라서 수형자 심사는 따로 떼어서 별도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뒷좌석에 배석했던 필자는 그 순간, "아, 수형자 통과 오늘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진보 성향의 이해찬 총리라 할지라도, 일국의 법무·국방장관이 반대하고 나서는 판국이니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십중팔구 다음 회의로 넘길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이었다.

그때, 희생자심사소위 위원장인 박재승 변호사가 나섰다. 판사 출신인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재판정에서 판결하듯 논거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특별법이 제정되어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왔고, 그 결과로 대통령이 사과한 사실을 상기시킨 후, "국방부, 법무부에서도 진상보고서를 한번쯤 읽어봤겠지만, 국방부장관과 법무부장관, 또한 다른 분들의 이해를 도와드릴까 해서 어떤 노력을 해서 진상보고서가 됐고, 그동안 심사소위가 어떤 심의를 해왔는지 말씀을 드리겠다"면서 포문을 열었다. 박 위원장은 이어 15분가량 4·3 군법회의의 허구성과 불법성을 10여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따졌다.

"저희 소위원회는 이렇게 접근을 했습니다. 소위 4·3군법회의를 받았다는 사람 30명에 대한 조사를 했습니다. 한결같이 군경의 취조를 받았지만 재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여기서 재판이라는 것은 검찰관의 직접 심문과 거기에 대한 항변, 자기 방어권 행사, 구형, 변론 이런 걸 말하겠죠. 그런 절차를 밟아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사람들의 말이 맞는가를 보기 위해서 군법회의를 열었다는 9연대 혹은 2연대의 지휘부에 있었던 서종철, 전부일, 김정무씨에 대한 진술 채록을 한 것을 봤습니다. 민간인에 대한 군법회의는 우리는 모른다는 겁니다. 세 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까 서른분의 진술하고 부합됩니다. 군법회의가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국방부에 그러면 그 당시에 재판장은 누구며, 심판관은 누구며, 법무사는 누구며, 검찰관은 누구냐 대라고 하니까 자료가 없다, 자료가 없는 이유는 모른다, 회신이 그렇게 옵니다. 국방부장관 아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또 당시 취조한 경찰, 호송했던 경찰들의 증언들을 봤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재판 없었다. 형무소에 간 뒤에 형량 알려줬다. 죄명 알려줬다' 이런 얘깁니다. 저희들이 기록에 관심을 가지고 혹시 다른 기록이 있는지 보자, 정부기록보존소에 조회를 해도 없습니다. 없는 사유 모른다. 국방부 판결문 기록이 있느냐, 4·3 군법회의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 없다, 이거예요. 없는 사유 모른다. 그런 공문이 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마산형무소에 소위 수형자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제주4·3사건에서 군법회의를 받고 거기에 수형됐던 다섯명에 대한 기록을 봤더니 한결같이 군법회의를 받았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범죄 개요가 없습니다. 수형됐다는 사실만 있습니다. 다른 형무소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재승 위원장은 비장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따져갔다. 회의장 분위기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했던 법무·국방장관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수형자 심사의 변곡점이 된 이날, 박 위원장의 발언은 거침없이 이어져 갔다. 

☞다음회는 '4·3수형자 심사' 제4편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