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제주선조 표류 역사 간직 요나구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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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명창 안복자와 제주소리 회원인 조매정, 양순옥이 선보인 '멸치후리는 노래'에는 무용가 최길복과 요나구니의 출연진들도 함께 참여, 신명을 돋웠다. | ||
# 가을볕 든 사탕수수 무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섬
이따금 울리는 섬의 종소리와 노란 나리꽃, 붉은 혓바닥을 내민 섬의 꽃들만 슬레이트 혹은 기와집의 안과 밖을 넘나든다. 신호등은 딱 두 개인 섬. 석회암 돌담, 어딜보나 제주도와 참 닮았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천, 나는 이 해안선에서 먼 옛날 조선의 제주사람 김비의 일행이 무서운 풍랑에 휩쓸려 표류해온 당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은 어땠을까. 그들은 소박한 섬의 사람들에게 많은 위안을 받았으리. 히가와 마을, 한 노인이 '아리랑'을 부른다.
바람부는 섬의 동쪽끝 코지에선 우도의 정경이, 마라도의 풍경이, 서귀포 해안 주상절리의 절경이 포개진다. 마을은 중산간의 어느 올레를 그대로 옮겨 놓은 모양새다. 구로시오 해류를 따라온 깊은 물색, 그 맑은 청초함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해안길을 걷다가 만나는 흰모래밭의 보라색 갯매꽃이 마음대로 꽃을 피워내고 있다. 거대한 암석들, 작은 바위로 부딪는 파도마저 따스해뵌다.
원초적인 색감의 요나구니 가을은 더디게 흐른다. 가장 서쪽이어서 일본 본토에서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섬. 대만과 가장 가까워 일년에 서너차례 이 곳을 여행하였다는 이들도 만난다. 마을은 고요하다. 왜 그럴까. 마침 400명이 채 안되는 요나국중학교의 운동회다. 사람들은 다 그 쪽으로 이동했다. 섬의 사람들은 묻지 않아도 인사를 하고, 섬의 아이들은 눈빛만 마주쳐도 수줍은 인사를 건넨다. 이 학교 체육관에서 제주도와 요나국도의 소박한 평화음악교류는 이뤄졌다. 운동회날 저녁이었고 민간차원 첫 교류다.
# 표류 조상 기린 민간차원 첫 음악교류
"어 허어야 디여…" 제주민요가 울려퍼지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어깨를 들썩였다. 6일 저녁 7시부터 2시간동안 요나구니 평화음악제 실행위원회 주최로 진행된 이날 평화 음악제. 어린 아이들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이 섬 주민 전체의 20%인 300여 명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음악회는 해상의 안녕을 기원하는 요나구니의 전통민속춤으로 막을 열었다. 이어 오키나와의 민중가수 우미세토 유타카가 노래 '한라산' 등 여러곡을 불렀고, 한국의 대금연주자 이광훈은 경기민요 등 민요합주를 선보였다.
제주에서 간 명창 안복자와 제주소리 회원인 조매정, 양순옥이 제주민요 '이야홍타령' '해녀노래' 등 5곡을 불러 어깨를 들썩이게 했고, 객원 출연한 제주오름민속무용단 단장 최길복이 물허벅춤을 선사, 박수를 받았다. 특히 제주소리가 준비한 '멸치후리는 노래'는 요나구니의 출연진들도 함께 참여, 신명을 돋웠다. 이날 제주소리 대표 안복자 명창은 "535년전 우리 선조가 표류해 왔을 때 극진히 잘 보살펴 주신데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앞으로도 이러한 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며 제주 전통주 고소리술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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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복자 명창(가운데 왼쪽)이 535년전 선조가 표류해 왔을 때 극진히 잘 보살펴 준 섬에 대한 고마움에 제주 전통주 고소리술을 선사했다. | ||
하여 이 절경, 이 풍경, 내면에 감춘 풍경의 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세기 참혹한 전쟁의 도가니에서 억울한 영혼으로 떠다니고 있을 죽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섬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배후는 슬프다. 구부라항 어딘가에는 1944년 12월의 조선인 위안부들의 억울한 영혼들이 떠다니고 있으리.
# 요나구니 사람들…제주도와 평화교류 하고 싶다 
제주도와 요나국도의 평화음악교류 행사를 마련한 나가타 이사무씨(왼쪽)와 요나구니섬 주민인 아사또 요스케(가운데)·사키모토 마사요시씨.
"요나구니와 제주도가 평화의 교류와 연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교 3년동안 나하에서 다녔고, 공무원 생활을 37년 했었다는 이 섬의 사키모토 마사요시씨(64)는 농사를 짓는다. 최근에 떠오른 약초 장명초가 요나구니의 효도 식물이란다. 약효침, 요리, 여성의 건강 등에도 좋은 이 장명초 연구가 지금 활발하다고 전했다.
중학교 밖에 없는 섬이어서 고교는 나하에서 나왔다는 아사또 요스케씨(70·요나구니-대만 화련현교류발전협회이사장)는 아버지가 오키나와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했다. "조선의 「성종실록」에 1400년대에 요나구니에 소를 키우며 벼농사를 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 있는데 마을지에도 이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요. 김비의와의 인연이죠. 그래서 제주도를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주와 자매결연 맺었으면 하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섬에 사는게 외롭지 않냐고하자 그가 그런다. "태어난 곳에서 사는게 가장 좋은 것 아닌가요?"
아늑하고 고요한 바다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한때는 2만명까지 살던 섬, 이젠 1547명으로 줄어들어 고령화되고 있다. 지금 이 섬의 가장 큰 이슈는 자위대유치문제다. 반대구호가 섬 곳곳에 나부끼고 있다. 일본 방위성이 오키나와 본섬 이외의 낙도에 육상자위대를 배치하겠다고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주민들은 경관훼손과 대만, 중국과의 갈등이 강해질 것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투명함이라니! 푸른 바다색과 들에 노니는 말과 소, 구불구불 논밭, 이 평화의 정경을 그대로 두라. 가파른 해안 절벽에선 가을햇살에 찔린 노란꽃이 하늘거리며 바다로 향한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ysun6418@hanmail.net
표류의 역사 가진 요나구니와 제주도의 인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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