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잠녀] 5부 '잠녀'에서 미래를 읽다-숨비소리 길

▲ 지난 9월 개장한 ‘숨비소리 길’을 탐방객들이 걷고 있다.

9월 해녀축제·'해녀문화생태박물관' 조성 사업 일환 개장…아직 '작업 중'
유네스코 대표목록 등재 조급증 "숨비 소리와 문화유산적 의미 되짚어야"

제주특별자치도는 이르면 이달 중 문화재청에 제주 잠녀·잠녀문화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다. 잠정적으로 2014년 제주 잠녀·잠녀문화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위한 '준비' 작업이다. 타이틀을 향한 조급증을 일부러 지적하지 않더라도 앞서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2008년 '유네스코 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명칭변경)을 지정된 강릉단오제 등의 예를 미뤄볼 때 '첫 술에 배'부르기는 어렵다. 더구나 아리랑이나 김치 등 범 국가 차원에서 준비 중인 목록과 경쟁을 하기란 쉽지 않다. 서두르라 채근하는 데는 현재 남아있는 '잠녀·잠녀문화'의 지속력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한 사전 작업과 공감대 형성 없이는 말 그대로 '훈장'에 남을 공산이 크다. 잠녀들은 단 한 번도 쉽게 숨비 소리를 내뱉은 적이 없다.

▲ 서동 불턱
▲ 해녀상

# 잠녀 삶 엿보는 '통로'기대

무거운 마음을 덜기 위해 숨비소리 길에 나섰다. 지난 9월 개장 때만 하더라도 2012 제주세계자연보전총회 등과 맞물려 언론 등의 주목을 받았던 길이다. 잠녀들이 물질을 하기 위해 바다로 나서거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삶과 죽음의 경계이자 두 개의 '밭'을 살피는 생존의 공간이다.

총 길이 4.4㎞의 밭담과 해안 조간대가 어우러진 순환코스는 그대로다. 하도리 어촌계와 잠수회가 공을 들여 '길'을 만들고 개장 당일 직접 테왁 등 등짐을 진채 동행, 길이 지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해녀박물관을 출발해 삼싱당과 별방진, 서문동 원담, 서동 불턱, 만물(면수동 용천수)을 거쳐 돌아오는 코스는 보통 성인 걸음으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남짓 걸린다.

박물관에서 모형 등으로 엿봤던 잠녀 문화를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새롭다. 개장 당시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해녀문화생태박물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가능한 잠녀·잠녀 문화를 가깝게 접할 수 있게 한다는 목적도 깔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적잖다. 개장일을 전후해 태풍 등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밭길' 구간이 잠겨 코스를 우회하느라 애를 먹었던 것은 차치하더라도 조금은 덜 친절한 이정표는 몇 번이고 발을 멈추고 주변을 서성이게 했다. 그것 역시 '쉼표'처럼 지역을 이해하라는 장치로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전체 경로를 표시한 작은 안내 팸플릿 말고는 현장에서 불턱이며 원담 등에 대한 상세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노파심에 언급하자면 '지붕 없는'해녀문화생태박물관 조성과 가파도 민속마을 조성 등 잠녀·잠녀문화 관련 사업에 대한 밑그림이 없이 끼워맞춰야 하는 조각이 늘어나는데 대한 걱정도 내려놓기 어렵다.

그러나 숨비소리 길을 걷는 내내 비릿한 바다 내음에 실려 잠녀의 깊고 긴 숨소리가 동행한다. 스스로 내 쉬는 것인지 잠녀와 오래 생활한 바다와 땅이 저절로 쏟아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 보도자료에 등장한 '해녀 체험의 산실'까지는 아니지만 한참을 물숨과 두려움을 참은 잠녀들이 지친 걸음을 내딛으며, 묵직해진 망사리를 등에 지고, 아니면 멀리 허옇게 일어난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목이 빠져라 내다보던 길에 섰다는 느낌은 체험 이상의 감흥으로 전해졌다.

누군가는 몇 안 되는 이정표며,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인적이 뜸해 위험하다는 지적을 해댈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실 이 길만큼은 물질 구덕 하나씩은 짊어진 채 걸어야 제 격이다.

그런 노력 없이 무작정 따라 걷는 '우후죽순' 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 어머니들이 그 길을 걸으며 흥얼거렸던 것은 그대로 노동요가 됐고, 서둘러 발을 재촉했던 까닭에 오늘이 있었다.

▲ 바다로 향하는 잠녀길

# 순서 아닌 가치 평가 무게 둬야

아직은 '정비 중'인 숨비소리길을 걷다 보니 다시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작업을 지켜보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를 가운데 둔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중국의 아리랑 자국 문화유산 등재 작업 소식이 알려지며 온 나라의 공분을 샀던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국내 인간문화재의 개념을 세계 기준으로 확대한 '인류문화유산'을 제안하면서 무형문화유산에 있어 일본과 함께 우위를 차지하며 타 국가들의 견제를 받고 있는 것 역시 공공연한 사실이다. 벌써 지난해부터 우리나라는 한 해 한 종목 밖에 등재할 수 없도록 제한을 받아왔다.

문화재청의 대한민국 무형문화유산 국가목록 작업에서 제주 잠녀는 아리랑 등과 함께 우선 등재 추진 목록 11개 종목에 포함됐다. '비지정 무형문화유산으로 과거 사회적으로 영향이 컸으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부각할 수 있는'을 기준으로 선정한 61개 목록 중 다섯 번째로 그 중요성을 평가받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먼저라는 순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뚜렷한 주체 선정에 있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살아있는 유산의 힘과 문화적 다양성은 정말 중요하다. 이것이 무형문화유산 보호가 필요한 이유다" 마츠우라 고이치로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75)의 말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무형문화유산 뿐만 아니라 '문화'라는 범주 안에 우리가 유산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목표하는 것이 과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인지, 아니면 제주 문화를 녹여낸 독창적이면서도 특수한 여성 중심의 해양 문화를 보존하겠다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혹시나 해서 언급하자면 제주도는 지난해 잠녀·잠녀문화의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추진했었다. 우선 순위에서 2014년도 어렵다는 얘기가 들린다. 천년의 역사와 단오 DNA를 앞세운 강릉단오제는 지난 2005년 '원조 논란'을 내세운 중국의 견제 속에 유네스코 사무국의 행정심사와 국제심사위원회 평가 등 2년여에 걸친 까다로운 절차를 밟고서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행정은 물론이고 학계며 ㈔강릉단오제위원회 등 민간 조직이 한 마음으로 준비 과정에 매진해 얻어낸 결과다.

그에 비해 우리의 준비는 '해녀·해녀문화 세계화 5개년 계획'과 '신청서'가 전부다. 내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 세계화 TF팀이 운영, 이를 중심으로 올 연말까지 도 단위 잠녀 조직을 만든다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성이나 집중력을 나열하기에 앞서 도의 의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등재는 마침표가 아니고 시작점이다. 도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역사회의 공감대 형성 등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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