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⑭ 비엔티안에서 태국 국경 다녀오기

아침부터 아이들은 신이 났다. 대학생인 하영이도 중학교 꼬마들만큼 들떠 있더니, 내게 와서는 상훈이의 옷차림을 가리키면서 고자질인지 '자랑질'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표정으로 말한다.
"삼촌, 상훈이 좀 보세요."
아이들이랑 놀고 있는 상훈이는 맨발에 조리를 신고 반바지를 입었다. 그것도 체육복이다. 하영이의 말뜻은 아무리 국경놀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를 다녀오는 날인데 그의 복장이 무슨 저녁나절에 잠시 옆 동네 마실 나가는 꼴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사이 출국신고서를 쓰느라고 바쁘다. 그래도 두 번째로 넘는 국경이라고 서로서로 보면서 눈치껏 잘들 작성하고 있다. 출국신고서를 막 다 쓴 막내 수경에게 짐짓 질문을 던진다.
"수경아,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비자연장 하는 거잖아요. 에~이, 삼촌도. 그것도 모를까 봐요?"
"단순한 비자연장, 그거 아니거든! 음~, 지금 하고 있는 건…국경놀이!"
'놀이'라는 말에 수경의 눈빛이 반짝 빛난다.
"삼촌, 그러면 우리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면서 여권에 도장 잔뜩 받아도 돼요?"
그러더니 다른 친구들에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국경놀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온 15명의 여행자들은 라오스 국경관리사무소에 출국 신고를 마치고 두 나라를 잇고 있는 '우정의 다리'를 건너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라오스 경찰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것은 금지되어 있단다. 지난여름에 나는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직접 이 다리를 건넜었다. 경찰에게 내가 그 당사자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소용없다. 나는 상급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사무실로 안내된 나는 나 자신을 교사로 소개하고 우리 학생들이 국경을 걸어서 넘는 경험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의 철책선이 놓여있는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자신의 두 발로 또박또박 걸어서 넘는 국경선이 어떤 의미가 될지 생각해달라고 간곡히 얘기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넣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라오 말로 한참을 통화한 후에야 말을 이었다.
"미안합니다. 당신 학생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해진 규칙에 다른 선례를 남기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라오스로 돌아오는 길, 수경이가 내게 다가와서는 넌지시 물어본다.
"삼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어떤…사람이라니?"
"옆 나라에 가서 점심 먹고 돌아오는 부자들!!"
국경놀이가 아이들에게 상상력의 날개를 한 쪽 달아주고 있다.
◇ 아이들의 일기
"라오스로 돌아오는 길에 태국에서 쌀국수를 먹었는데 낍(라오스통화)을 사용하다가 바트(태국통화)를 다시 사용하니 뭔가 어색했다. 다시 라오스로 돌아오니 '국경놀이'가 참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하면 여권이 도장으로 꽉 채워지니까 이상해서 잡혀갈 지도 모를 것이다. ㅠㅠ. 오늘의 교훈 : 국경놀이도 적당히." (신수경·열네 살)
"국경을 넘어본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얼떨결에 부자만 할 수 있다는 점심 먹으러 다른 나라에도 가봤다. 그리고 여권에 도장도 정말 많이 받게 되었다." (양나운·열다섯 살)
"여권이 더러워져서 기분이 좋다. 2면이 꽉 찼다. 여권에 도장을 받는 게 이렇게 보람찬 일이라니. 그냥 버스 타고 다리 왔다 갔다 한 것뿐인데. 초등학교때 포도알 스티커 받는 느낌이랑 비슷하다." (김하영·스무 살)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 /0908y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