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바꾸는 힘, 공공미술] 4.경상남도 거창군·공공미술 아림 '생초리-천년의 숨결'

▲ 이강준·강남철·김정현·김광헌·김병욱·최락원 작 '우륵과 가야금'

'탄생지' 우륵 문화 아이템화 시도…시간 멈춘 마을의 기분좋은 변신 
고령·공동화 한계, 프로젝트 지탱할 마을·자치단체 역량 등 '진행형'

"즐거우나 지나치지 않고, 슬프지만 비탄에 젖게 하지는 않으니 바르다고 할 만하다".

우리 역사의 대표적 음악인 우륵은 12현금(絃琴)인 가야금(가얏고)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악성(樂聖)이다. 반역자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사치와 방탕에 젖어 있던 가야를 떠나 신라로 정치적 망명을 했던 까닭에 가슴을 뜯어 영혼을 울리는 소리가 완성됐다. 음악사적 영향력을 넘어 최근 우륵은 지역자치단체의 문화 경쟁력을 집약하는 아이템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대가야 옛터인 경남 의령 신반과 매년 추모제를 올리고 있는 경북 고령, 탄금대 등 우륵의 예술적 완성을 이뤘던 역사적 흔적들로 벌써 40년 넘게 우륵 문화제를 열고 있는 충북 충주다. 그리고 우륵의 탄생지로 지목되고 있는 경남 거창 가조면 생초마을이 줄을 섰다. 마을 최연소자가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이후 가만히 시간이 멈춰버린 마을은 '옥구슬(玉)과 옥구슬(玉)이 지금(今) 부딪혀서 만든 아름다운 소리(금·琴)'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 생초마을 입구의 마을미술 프로젝트 안내도

# 예인의 마음 닮은 17조각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지난 2005년 한 원로 국어학자의 연구 발표를 통해 '우륵의 탄생지'로 지목됐던 마을은 여느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와 공동화의 한 가운데 있었다. 구시대적 방식으로 조성된 마을은 낡아버린 슬레이트 지붕과 오래된 시멘트 블록, 돌담 따위가 불규칙적으로 이어지는 등 변화를 위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거창군이 사업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로 지역 예술인들에 관련 사업을 의뢰, 2010년 마을미술프로젝트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고배를 마셨다. 재정기반이 약하고 무엇보다 마을미술을 품고 키워내기에 마을 차원의 역량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1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해 사업이 시작됐다.

공공미술 아림(대표 민병주)은 경남 지역 예술인을 주축으로 꾸려졌다. 공공미술사업 당시 주목받았지만 유지 등 사후 관리에서 문제가 지적되면서 보조 장치처럼 활용되던 벽화를 사업 중심에 뒀다.

외곽 마을에서의 작업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인내가 담보돼야 한다. 작업을 위해 마을을 오가는 일도 쉽지 않았고 자치단체의 신념과 달리 예산 확보가 늦어지며 작업 일정이 지연되면서 작가들의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벽화와 조형물 등 17개 예술 씨앗이 마을에 심어졌다. 그런 상상으로 마을 어귀에서부터 그윽한 선율이 귀를 잡아챈다. 금(琴)은 모든 고을의 소리를 담고 있다 했던 우륵의 말이 바람을 타고 온다. 두고 온 고향이지만 무너진 고을에 살아남은 백성들의 소리를 한 토막씩 주워서 다듬었던 예인의 마음 같은 17조각의 예술 작품들이 '생초 마을'을 새롭게 했다. 우륵이 그러했듯 넘나듦과 그곳에서 번지는 즐거움으로 마을의 시간을 되돌리고자 했던 의도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 강남철 작 '가야금과 웃음'

# 가야금 테마 통일·연결성 강조

현의 떨림처럼 벽화와 조형물을 찾아가는 동안 마을이 저절로 발 아래 섰다. 그 느낌이 어딘가 친숙하면서도 당혹스럽다.

예를 들어 김득신·신윤복·김홍도의 동양화 작품이 피리를 부는 소년을 패러디한 테디베어와 벤조를 닮은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와 어우러진다. 집주인 부부로 보이는 인상 좋은 남녀의 웃는 얼굴 아래 가야금을 짊어진 강아지가 앞발을 들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집과 담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 이강준·강남철·김정현 작 '가야금 연주2'
▲ 최락원 작 '가야금을 위한 해금'

오래된 낡은 나무 대문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개가 그려지고 식구나 마찬가지인 축사 옆 창고 벽은 친구가 되기를 꿈꾸는 그림 소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울 듯 고개를 갸웃댄다.

가장 많이 표현된 것은 역시 가야금다. 어린 우륵을 표현한 조형물에도 마을입구 느티나무 아래 쉼터 벤치도, 낡은 농협 건물을 화사하게 탈바꿈 시킨 자리에는 어김없이 가야금이 배치됐다. 절대 지지 않는 오동나무(가야금 재료) 꽃들은 마치 잘 조율된 음악처럼 벽을 타고 마을을 흐른다.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다고 하나 주제가 분명하다는 점이 마을 전체에 통일감을 준다. 앞서 둘러봤던 영천 행복프로젝트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목적을 어디에 뒀는가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 곳 역시 작품 간 거리감이 적잖다.

마을 정자 아래 주민들이 쉬면서 즐길 수 있는 평상은 그대로 장기판이나 바둑판으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어느 것 하나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 생초마을 프로젝트의 특징인 듯 했다.

'어?'하다 '아'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각각의 그림들이 내는 소리가 저절로 섞여 쾌활하고 맑은 소리가 내는 듯 느껴지지만 온기는 아직이다.

▲ 어린우륵을 표현한 조형물

# 아직 채워야할 부분 많아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우륵 탄생지 공원화 사업은 아직 시작을 알리지 못했다. 인근 온천 단지 등과 연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지만 주민들의 삶은 변화라 말하기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일반 벽화 작업과 달리 전문가까지 섭외해 재료와 기술에 변화를 둔 점은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확인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 위원회 차원에서 사업별로 전체 사업비의 0.5%를 보존금으로 예치하도록 하는 등 보수를 위한 준비를 했고 지역 작가에게 우선 관리 책임을 주는 것으로 지속성을 고려했지만 문제는 마을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마을미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지붕 개량이나 담 보수 등의 요구가 잇따랐다. 귀농·귀향을 위한 인프라가 충분치 못한 상황은 마을을 그냥 스쳐가는 곳으로 남게 했다. 마을 특산품 등을 판매하는 구판장 시스템도 고려했지만 실현하지는 못했다. 생초 마을 역시 아직 진행형이다.

"힘들었던 작업…'정겨움' 이상 결과 기대"
●인터뷰/민병주 공공미술 아림 대표

▲ 민병주 공공미술 아림 대표

"쉽지 않았던 만큼 애착도 많이 가고 앞으로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생초리 천년의 숨결'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민병주 공공미술 아림 대표에게는 또 다른 직함이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거창군지회장으로 지역 문화예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처음 생초 마을 사업 의뢰가 들어왔을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거창군 내에서도 외곽 마을인데다 사업 효과를 장담하기에는 주변 환경적 여건도 열악했기 때문이다. 준비과정부터 이제 3년차인 올해 그는 우륵과 생초마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됐다. 지형 곳곳을 가리키며 그 유래나 의미를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신명이 실렸다 느껴질 정도였다. 마을 어르신들 역시 오랜만에 찾은 집안 식구인냥 끼니며 안부를 묻는다. 마을을 돌며 느낀 묘한 감정은 '정겨운'이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시골 마을 어르신들은 특별한 변화보다는 환경 개선에 더 관심이 많았다. 모처럼 마을을 찾은 '젊은이'들은 고장난 형광등을 갈아끼워주고 읍내 심부름을 도와주는 고마운 이들이었지 예술가는 아니었다. 어쩌면 생초마을은 예술로 변화하기 보다 사람을 품은 연습으로 뜨거운 한해를 보낸 듯 느껴졌다.

민 대표는 "테마가 분명했지만 재정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이 많았고 한겨울에도 작업을 진행하느라 작가들이 고생이 많았다"며 "이런 부분이 보다 안정적이고 지역 작가들의 접근성과 관련한 고민이 보태진다면 마을미술 프로젝트 역시 보다 내실 있어 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오래된 담을 그대로 살리며 작업을 했던 까닭에 보수나 관리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예정됐던 지역 개발사업들이 본 궤도에 들어서면 이번 작업의 효과가 분명히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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