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37.체오름

일국 수도급 역수세 명당…탐방에 100분 충분
체오름은 당장이라도 용이 승천할 듯 웅장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는 오름이다. 풍수적으로 제주 동부지역 오름 가운데 가장 남성적인 오름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고도 오름 앞에서면 강한 기운이 전해지는 듯하다. 깎아낸 듯 직각으로 솟아오른 분화구 내면과 그곳을 덮고 있는 천연림 같은 식생들은 태고의 신비감마저 선사한다. 용이 아니라 시조새가 날아오를 듯한 기분도 든다. 훌륭한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린 장군대좌형의 체오름은 가슴 안쪽에 일국의 수도가 되기 위해 '필수'라는 역수세도 갖고 있다. 기세뿐만 아니라 풍광 또한 남성적인 체오름이다.
체오름은 행정구역상 구좌읍 송당리 산64-2번지와 덕천리 산2번지다. 비고는 117m로 368개 오름 가운데 78번째, 면적은 43번째로 55만3701㎡다. 저경 910m에 둘레는 3036m다. 어원은 북동쪽으로 탁 터져나간 말굽형 오름의 형상이 곡식을 고르는 체(키·箕)와 같다고 하여 '체오름'이라 했다. 한자로는 훈과 훈을 빌어 기악(箕岳)·기산(箕山) 또는 체악(體岳)·체산(軆山) 등으로 표기했다.

A=비자림로 상 입구 B=우회전 지점 C=좌회전 지점 D=탐방로 입구 E=오름 동쪽 입구 F=최정상 G=풍수적 정상(현무봉) H=오름 서쪽 입구 I=알오름1 J=분화구 K=알오름2 L=밧돌오름 M=안돌오름 N=거슨세미 O=거친오름
여기서 오름 커다란 송전탑 아래에 있는 동쪽 입구(〃E)까진 280m다. 철조망이 처져 있으나 사람들이 다니면서 느슨해진 '통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탐방은 오름 능선을 따라 둘러진 철조망 바깥쪽으로 올라가다 최정상을 앞두고 철조망 안쪽으로 들어가 형식이다.

탐방을 시작해 25분경이면 오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멍'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정상부 능선을 돌아가며 곳곳에 '통로'가 있으니 놓치지 않았는지 조급할 필요가 없다.
남남동쪽의 '정상적인' 구멍으로 들어서면 바로 최정상(〃F·표고 382.2m)이다. 국토정보지리원에서 세운 '삼각점' 팻말이 정상임을 짐작케 할뿐 주변 경관이 식생에 가려 '정상의 맛'이 없다.
여기서부터는 오름 안쪽 감상이다. 울창한 숲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오른쪽 분화구 안쪽은 절벽에 가깝다. 탐방로와 인접한 분화구 내측이 무너져 '절벽' 바닥까지 보이면서 아찔한 지점도 나타난다. 한발 저쪽이 저승인 셈이다. "이런 게 삶인데 영원할 것처럼 왜 이리 각박하게 살고 있나"하는 '건방진' 생각이 스쳐간다.

풍수적인 설명이 없더라도 이곳에 서면 막연한 경외감이 쏟아진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그 것을 덮고 있는 천연림 같은 식생이 절벽 위에서 흔들리는 인간을 더욱 조그맣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이다. 발길을 붙잡는 가시와 옷깃을 잡아끄는 나무들을 헤치고 5분을 가면 다시 개활지이고 본격적인 내리막길이다. 10여분이며 평지(〃H)다. 대략 1만3000㎡이다. 이곳에서 오름 중앙 방향으로 250m지점에 봉긋한 것이 알오름(〃I)이다. 풍수상으로 생기가 모인 주혈이라고 하니 비록 제주도에 있으나 일국의 수도 못지않은 '귀한 땅'인 셈이다.
알오름을 지나 계속 전진하면 '인간의 흔적'이 나온다. 특히 알오름 남동쪽에 있는 시멘트 저수시설 등 이곳에 주둔했던 일제의 잔재들이 눈에, 마음에 거슬린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분화구의 가장 안쪽인데 적지 않은 규모의 평지(〃J)가 있다. 1시간 남짓 걸렸다. 바닥에서 오름 정상까지는 90여m, 나무의 높이까지 감안하면 100m가 넘는다. 분화구의 위용에 위축되며 또다시 작아지는 느낌이다. 분화구 바닥에는 대형 후박나무가 주인인 양 터를 잡고 자라고 있다.
웅장한 분화구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은 직진이다. 철탑까지 8분 등 탐방로 입구까지 15분 정도다. 전체적으로 1시간40분 정도면 탐방에 충분하다.
화구 바닥의 길이가 어귀에서 제일 안쪽까지 최대 500m에 이르는 말굽형 오름인 체오름은 외사면에 비해 내사면의 경사가 아주 급하다. 화구는 중심이 깊게 패여 있으며 용암은 유출이 시작된 화구 중심에서 V자형 침식계곡을 만들며 유선형으로 진행된 것이 2.7㎞ 추적됐다. 1.7㎞ 전방에는 마소에 물을 먹이는 '말천못'을 형성하기도 했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체오름은 급한 경사면과 알오름을 비롯, 주변 습지와 동굴함몰지 등으로 생물다양성이 매우 높은 오름"이라며 "주변 비자림과 구좌-성산곶자왈지대와 함께 동부지역의 중요한 생물종 공급원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 "동부의 가장 남성적 오름
![]() 안선진 풍수지리사(제주관광대학교 '풍수지리와 인상학' 강좌 교수)는 "한라산의 지맥은 동으로는 사라오름, 서로는 영실에서 강건하게 뻗어 내려와 각각의 오름에서 봉우리인 '현무'를 틀고 저마다의 성정을 갖는데 동쪽 지맥 중 가장 남성적이며 강건한 오름이 체오름"이라고 설명했다. 안 풍수지리사는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인 남성적인 오름은 대체로 말굽형이고 가슴 안에 물을 담아두는 여성의 성정을 하는 오름들은 화구호를 가진 경우가 많다"며 "장군대좌형에선 동으론 체오름과 영주산을 꼽고 서쪽에선 노꼬메오름이 으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체오름은 서쪽에선 거친오름, 남쪽에선 거슨세미, 그리고 남동에선 안돌·밧돌오름이 생기를 몰아주면서 장군이 서쪽으로 등을 기대 머리를 틀고 동으로 얼굴을 내밀고 든든한 두 어깨로 좌청룡과 우백호를 이루고 앉아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특히 안 풍수지리사는 "체오름은 드물게 수도가 들어서거나 인물 나는 곳이 갖는 역수세가 특징"라며 "일반적으로 오름 자락으로 떨어지는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체오름에선 구불구불 구곡수가 가슴 안 주혈 앞으로 흘러들어 오는 형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체오름의 현무봉은 동쪽의 지리적 정상(최고봉)이 아니라 서쪽으로 치우쳐 있고, 가장 중심된 생기(生氣)는 현무와 그 서쪽인 좌청룡 사이에 우뚝 솟은 암반"이라면서 "이 기운이 바닥으로 흘러가 모인 알오름이 주혈"이라고 했다. 안 풍수지리사는 "체오름의 생기를 받기 위해선 동쪽 철탑에서 탐방을 시작하는 게 좋다"며 "남동쪽의 백호를 따라 돌다 현무봉을 만난 뒤 좌청룡 가지를 타고 내려가며 체오름의 온화한 장군의 좌청룡 당판(초지)과 알오름을 거쳐 현무와 얼굴을 마주하고 진행하면 강한 장군의 품속으로 재물과 함께 걸어 들어가는 형상을 하게 된다"고 제안했다. 김철웅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