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육 희망순례] 15.사단법인 동려(同旅)

▲ 동려는 늦은 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제도권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변지철 기자
동려, 아름다운 제주 위한 배움의 공동체 성장
올해 37년 사상 최다 검정고시 합격자 배출

배움의 꿈, 가르침의 희망이 쑥쑥 자라난다. 30여년간 꿈과 희망으로 뿌리내린 동려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제도권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배움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또 언제나 문은 열려 있다. '동려(同旅·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가 그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 '동려'

어려운 삶에도 배움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호롱불을 밝혀온 사단법인 '동려(同旅·이사장 한경찬)'가 창립한지 어느덧 37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창립 당시 불우한 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방법은 '배움'과 '가르침',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 밖에 없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젊은이 10명이 1974년 겨울 칠성로 호수다방에서 함께 뜻을 모았고 이듬해 3월 비로소 동려야간학교가 세워졌다.

▲ 1975년 당시 동려를 설립한 창단 멤버들과 당시 교사들의 모습.
강상배·강상임·강영은·고병률·고완진·백남국·윤용진·임흥순·한경찬·문정윤(故人) 등 10명의 '같은 길을 가는 나그네'들은 당시 스무살을 전후한 나이에 불과했다.

대학이 휴교되고 서울에 유학갔던 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오는 등 세상이 너무나 어수선했던 당시, 젊은이 몇 명만 모임을 가져도 불순한 조직(?)이란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제주도 교육감을 지냈던 고봉식 선생을 교장으로 추대해 가까스로 야간학교의 문을 열수 있었다.

미약했지만 큰 뜻을 가지고 시작했던 동려는 이제 3000여명의 동려회원을 간직하고 교육 및 문화, 봉사실천을 통해 아름다운 제주를 만드는 배움의 공동체로 성장했다.

평생교육, 인성교육, 문화시민, 나눔실천이란 큰 틀 속에 각각 동려평생학교(교장 강준배)와 동려청소년학교(교장 김옥랑), 동려교육문화원(원장 홍인화), 동려봉사단(단장 임행녕) 등 다양한 조직을 구성해 운영되고 있다.

동려평생학교는 현재 초등·중등·고등과정·한글기초반 등 4개과정 210여명의 재학생이 함께하고 있으며 총 15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동려청소년학교는 중등·고등과정 2개과정 40여명의 재학생과 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배움의 길을 걷는 이들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2012년도 제1·2회 초·중·고 졸업자격 검정고시에서는 평생학교와 청소년학교 모두 66명의 합격자를 배출시키는 등 37년만에 가장 많은 합격자를 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 동려평생학교를 다니는 어르신들이 저녁 늦은 시간에도 학교에 나와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변지철 기자
▲ 동려평생학교를 다니는 어르신들이 저녁 늦은 시간에도 학교에 나와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변지철 기자
△제2의 인생, 학교가 즐겁다!

'고사리 꺾을 때는/욕심에 아픈 줄도 모르고/하나라도/더 꺾으려고 욕심을 내지만//집에 들어오면/삭신이/안 아픈 데가 없고/꼼짝하기가 너무 힘이 들어/고사리 삶아/널 기운도 없어진다/그러면서도 산에는 가고 싶다'(고사리·동려평생학교 초등지혜반 이신봉)

올해 4년째 동려평생학교를 다니고 있는 최고참 이신봉 할머니(82)는 학교가 즐겁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젊었을 때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운 지식들에 매일 매일 신나는 나날들이 펼쳐진다.

학교를 다니면서 한글을 깨칠 수 있었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단한 사람이라야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를 이제는 이신봉 할머니가 직접 쓰고 있다.

최근에는 '고사리'란 시로 전국 성인문해 시화전 우수상(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상)을 받는 기쁨도 안았다.

중입검정고시 6개과목 중 3과목을 합격한 이 할머니에게 초등학교 졸업 자격을 갖는 것은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그저 배워서 행복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있어 즐거울 따름이다.

이 할머니는 "젊어서 못 배운 한이 있어 하나라도 더 듣고 배우려고 하다 보니 '나도 하면 되는구나!'하는 자신감도 생긴다"며 "앞으로도 건강 잃지 않고 배우는 재미 느끼며 평생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 외에도 동려평생학교에는 스타들이 많다. 73세의 나이로 고입검정고시를 합격한 송은정 할머니와 4년동안 중입·고입·고졸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하고 원광대 사이버 대학 무용학과에 입학한 김혜숙 할머니(65·가명) 등 많은 이들이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 2012 성인문해 시화전이 지난 5~6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펼쳐졌다.
△후회는 없다. 미래가 있을 뿐!

해마다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발생하며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마땅한 교육기관이 도내에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학교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계속해서 지적돼 왔고 개선 역시 이뤄지고 있지만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도내 상황에서 대안교육의 하나로 동려청소년학교의 기능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학생들을 위해 동려청소년학교는 중등과정과 고등과정 2개반을 운영하며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선 학교의 획일적·강압적인 분위기 대신 시설은 열악하지만 자율적이고 가족같은 분위기 속에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한 후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밤마다 '동려'를 찾아와 수업을 듣는다.

올해 고졸 검정고시에는 청소년 학생 27명이 응시해 21명이 합격했다. 합격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자격과 함께 대학에 진학, 새로운 배움을 찾은 학생들도 있고 직업을 갖고 사회일선에 뛰어든 학생들도 있다.

2년간 학업을 중단한 A군 역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2년을 쉬었지만 이번에 합격하면 친구들과 똑같은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갖는다. 후회는 없다. 앞으로의 미래만 있을 뿐이다.

한경찬 이사장은 "외부에서 학업중단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가 티 없이 밝고 착하다"며 "이들이 사회에서 동등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우리들은 뒷받침 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희생하며 살아온 어르신들을 위해 이제는 자식들이 갚아야 할 때"라며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청소년 뿐만 아니라 국가와 도 차원의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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