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 시인 문충성

 '제주바다는 싸움터였다'부른 시인이 그였으며, '그리하여 제주사람이 아니고서는 진짜 제주를 알 수가 없다'고 노래한 시인이 그였다. 그로 인해 제주바다의 생명력은 새롭게 인식되었고, 비로소 신화의 여인들은 잠에서 깼다. 눈물로 이뤄진 제주섬. 시인의 노래는 그 소년의 바다에서 시작됐으리. "손을 펴면 지금도 수평선 같은 손금이/어린 날의 꿈을 태운다/수평선을 넘어갈 팔자우다"던 시인의 운명. 끝내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물어간다. '떠나도 떠날 곳 없는' 제주바다, 과랑과랑 햇살 쏟아지던 그 젊은날의 제주바다가 아닌, 저녁 눈썹에 걸리는 금빛 수평선으로. 그럼에도, 단 한편의 시, 아직도 못 썼다 하는 시인. 그 단 한편의 유혹에 아직도 엄살떠는 제주도 시인 문충성. 그다.

   
 
 

 문충성 시인은

 1938년 제주시 출생. 제주대 명예교수. 한국외국어대와 동대학원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제주신문 기자 생활을 거쳐 제주대 인문대 교수 역임. 1977년 계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 시집으로 「제주바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민속서사시집 「자청비」, 「섬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내 손금에서 자라는 무지개」, 「떠나도 떠날 곳 없는 시대에」, 「설문대할망」, 「바닷가에서 보낸 한철」, 「허공」, 「망각 속에 잠자는 돌」 등 시집 총 20여 권. 문학연구서로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와 한국의 현대시」를 냈다.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 수상. 금년에 출간한 20번째 시집 「허물어버린 집」으로 편운 조병화 시인을 기려 제정한 편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 시집은 얼마전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0년대 초였으리. 그와의 인터뷰 때, 그는 이젠 절필하겠다고 했다. 순진하게도 철렁했다. 「섬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는 마지막 노랜줄 알았으니. 절필이라니! 허나 그의 절필 선언은 한번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신 속지않으리. 면역력도 강해졌다. 그의 시는 터진 폭포처럼 쏟아졌으며, 시집은 줄줄이였다. 그의 절필 선언은 좋은 시 한편을 향한 욕망인 것도 알았다. 그게 '문충성스타일'이란 것도. 그의 시는 삶이며, 눈물인 것을(이번엔 절필 선언 없었다).

 시인과는 참으로 많은 시간을 이야기했다. 돌아오는 시인의 답은 제줏말로 참 간드랑했지만 그는 여전히 단 한 편을 이야기했다. 제주적인 삶의 역사와 감수성에 뿌리내린 시인. 몸의 안팎까지 제주바닷물로 적셔진 그를 육지 시인들은 '제주도 시인 문충성'이라고 부른다. 헌데, 격랑의 바다 건넌 그는 점점 깊어간다. 요즘 쓰는 시? "죽음을 노래하는 거지 뭐." 간결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제주섬을 대신한, 결연히 무장한 자세로 저 수평선 너머로 예리한 칼끝을 꽂았다.

 # "우리는 때로 우리를 토벌했습니까"

 "우리는 때로 우리를 토벌했습니까/우리는 때로 우리를 습격했습니까/제주 섬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산폭도가 되고 빨갱이가 되고/산간 마을들 불탔습니까 그 섬마을 사람들/총에 맞고 죽창에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까 비록/그 비참한 삶이 지난 세기 1940∼50년대뿐이었겠습니까…"('우리는 때로 우리를 토벌했습니까' 중). 시인의 어조는 퍼렇다. 최근에 낸 스무번째 시집 「허물어버린 집」 맨 앞에 내세운 시다.

 그는 16편의 4·3을 문충성 식으로 노래해버렸다. 죄없는 민중들, 언제 우리가 그랬냐는 이 강렬한 톤. 항변하듯, 제주사람들의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되 노골적이지 않다. '섬 하나가 딱 감옥'이었던 4·3. 그는 봤다. 초등 4년의 눈으로. 곡식 저장한 눌 쑤시는 군인들도 돌틈에서 봤다. 무시무시한 아수라에서 도망가던 사람들도 봤다. 일제강점기, 4·3, 한국전쟁을 거치며 상처와 눈물의 뜻을 캐내야 할 것 같던 땅, 제주섬의 그 아이, 시인이 되어 이렇게 노래한다.

 "게난 홋설 잘 살게 되난/거들거리멍/무싱 것들 햄수광/원수처럼 경들 싸우지들 맙주//영정 죽어지게 사랑이나 허당갑주/반백 년이 넘어쑤게/경허난 이제사/끝나감수광 아아! 끝났쑤광"('4·3의 노래' 중). 이 '4·3의 노래는 총 16종의 검인정 교과서 중 창작과 비평사가 제작한 고교 문학Ⅱ 지역문학에 수록된 작품이다.

 # 제주어가 사라지면 제주인이 사라진다

 제주어에 표준말 토? 달지 않았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제주어를 그냥 살려놓는다. "해석이 필요한 제주어가 아니주. 그냥 읽히는 대로 느끼면 되는 거주." 시 역시 그에게 걸어들어올 때 쓴다는 시인. 고향이 없어지는 시대, 제주어는 과거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제주 토속적인 정서를 나타내면 그만인거지. 해설이 더 길면 실패라. 단테도 '신곡'을 자기네 고향말, 사투리로 썼거든. 사투리거든. 그래도 당당하게 세계적인 명작이 된 거죠." 단테는 물론 라틴말을 잘 할 수 있었으나 고향 토스카나 지역의 사투리로 신곡을 썼다. 당시 공통어가 따로 없었지만 그의 사투리는 이탈리아말의 토대가 되지 않았는가.

 언어는 인간의 혼이다. 혼이 사라지면 인간은 동물이나 진배없다는 시인. 제주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어를 쓰는 제주인이 사라진다는 것이란다. "그 다음은 거기에 뭣이 남겠는가 그거죠. '솔째기'를 '살그머니'라고 하면 안어울리죠. 비모음이 충분해서 좋고, 의성·의태어가 독특해서 좋은게 제주어지요. '자꾸 쓰고 읽고 굵어지다보면 사전에도 들어가고." 관광객들은 자기들 사투리로 말하지만 제주사람들은 제주어로 말하는 이가 많이 사라지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럴수록 유년은 더듬더듬 그를 찾아서 오는 건가.

 # 아! 날아다니던 유년, 유년송 쓰고 싶다

 "똥깅이가 쳐다봐. 콱! 잡젠허면 도망가. 잡아먹어보진 안했지만. 밤부리(잠자리) 잡아난 거. 똥깅이 잡으러 남수각천변이나 산지천변을 싸돌아다녔주." 날아다니는 것에 홀렸다. 잠자리에 홀렸던, 저쪽의 시간이 돌아온다. '똥깅이'를 품고 있던 기억의 저장고. 무궁무진하다. 이제는 유년송을 질펀하게 풀어내고 싶다는 이 시인. 그에게 유년송은 늘 시가 됐다. 팽이치기, 구슬치기, 전부 시가 됐다. 한 생을 떠다니고 한 시대를 떠다닌다. 역사적 체험부터 찬란한 기억까지. "소년병 같은 일본군인이 건빵 갖고 와서 콩 한됫박과 바꿨던 기억, 별사탕 건빵 먹던 기억같은 것도 잊지 못허주." 가난이 정상이던 시절, 부자가 이상하던 시절 이야기다. 얼마나 황홀했던가. 그 날개달린 것들에 홀려다니던 그 유년은.

 "해방전 동척회사 아래쪽 소이탄 같은 폭탄을 저장해둔 데를 어떻게 알았는지 미군 폭격기가 와서 터트렸는데, 밤낮없이 한 삼일 걸렸주. 오현단 집까지 흔들리던 소리 들었고, 피난가던 기억이 나. 옛날 현대극장까지 가면서도 마음의 거리는 꽤 길었지. 집이 허물어지는 줄 알았주." 그 시절, 여섯 살 아이의 꿈은 전투기 조종사였다.

 태평양 전쟁시기, 외할머니와 살았던 외로운 아이. 그가 아는 제주도 옛 이야기는 전부 외할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 "외할머니한테 자꾸 '자청비'얘기 해줍센 허민. 골아난 거 곧당(말했던 말하다가) 내가 골으쿠다 이어받고. 그거 틀렸져. 밤새 다시 되풀이되고." 책도 없던 시대, 할머닌 첫 번째 이야기꾼이었다.

 # 독자 의식하고 쓰지 않아…음악성 중요

 이미 오현고 시절 날리던 학생시인 문충성. 그의 등장은 당시 전국 문학지망생들의 가슴을 뛰게하던 「학원」의 제2회 학원문학상에 입선하면서다. 눈 펑펑 쏟아지던 날 "네 시가 실렸다"며 「학원」에 실린 그의 시를 들고 찾아온 '학생문사' 김종원의 표정도 잊을 수 없다. 고교 졸업반땐 키이츠에 홀려 영어에 미쳤고, 불문학을 하며 말라르메에 매혹됐다. 그러고보면 그의 언어감각은 타고난듯. "말라르메의 음악성은 뛰어나죠. 시에 대한 낭송법 같은 것도 제대로 공부해서 제대로 읽는다면 대단한 음악성을 느끼게 돼요. 혼을 울려주는."

 1976년 등단작 「제주바다」 이후 쏟아진 시들의 내공은 이미 이십대초의 수없는 시력 때문 아닐까. 일과 술에 중독되던 젊은 기자시절에도 그는 태연하게 시와 살았던 거다. "「망각속의 돌」은 스물 네 살부터 쓴 것들이죠. 집중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지요. 엉터리 혁명하며 쓴 '머리칼에게'는 잡혀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주. 5·16을 은유했는데, 나도 뭘 얘기하는지 모르지만." 그 시절 시쓰기는 먼저 세상을 떴지만 친구 김재민 교수의 강권에 의해서다.

 이제까지 독자를 계산해서 쓴 적은 없다는 시인 문충성. 시인은 다시 제주바다로 돌아간다. 신문기자 15년 해보고 대학교수 25년, 그리고 자유다. 결국 남은 것은 시이며, 시 한편으로 시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그는 쓴다. 어머니의 바다이기도 했고, 생의 깊이를 말해주는 존재의 바다이기도 했고. 제주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주고 달래준 바다이기도 했으며, 찬란한 생명을 잉태한 바다. 언젠가 그가 그랬다. 거친 제주바다에서 지탱시켜준 것은 사랑이었다고.

 # 시는 살아있다는 증거

 "문예사조 최고는 낭만주의가 아닌가 해. 그게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거주." 그래설까. 이 낭만주의 시인의 스캔들 다 안다. 알만한 주변사람들은. 평생의 동반자가 된 아나운서 출신 김청신과의 10년 연애. "책 읽고, 음악 듣고 하던 서울에서 보고싶다 하면 올때는 급행타고 내려오는 거라. 와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다 돌아가는 거고." 어느새 부부의 황혼. 오른발 통풍에, 허리병에 음식 하나까지 신경써야 하는 시인은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환한 세상 아닌가.

 아플땐 낼 죽을 것처럼 시를 쓴다. 허리 수술해 드러누운 제주대병원에서다. 옆 어르신 가르릉 콧소리가 미웠다. "누구 고양이 잃어버린 사람 잇수과? 고양이 소리난덴 허엿주." 악동의 끼를 갖고 있던 시인. 그것은 시로 걸어왔다. "콧소리 한다 무거운 짐/하나하나/벗어놓으며 가벼워졌을까"('나풀나풀 콧소리' 중). 흘러갈 것을 생각하면 적막강산. 산다는 건 죽는 것, 살았음을 깨닫는 의식이 중요한 것 아닌가 한다는 시인. 왜 안 그러랴. 시는 그에게 살아있다는 증거이니.

 미친 바람 불고 파도가 기어이 온 몸의 것을 드러내며 꿈틀거리는 당신의 어느날, 제주바다에 서 보라. 저절로 이 시인의 절창 중의 절창 '제주바다' 한구절에 몸을 떨리라. "누이야, 어머니가 한 방울 눈물 속에 바다를 키우는/뜻을 아느냐. 바늘귀에 실을 꿰시는/韓半島의 슬픔을. 바늘구멍으로/내다보면 땀 냄새로 열리는 세상/어머니 눈동자를 찬찬히 올려다보라…"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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