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17> 강 위의 섬 돈콘에서

▲ 성떼우를 타고 가다 잠깐의 휴식을 즐기는 아이들.
 참파삭에서 배를 타고 나왔다. 나루터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로컬버스 '성떼우'를 잡아탔다. 시판돈에 있는 작은 섬 돈콘까지가 오늘 우리들의 여정이다. 시판돈은 '시'가 4이고 '판'이 천이고 '돈'이 섬이니 이른바 '4천섬'인데, 메콩 강 위에 4000여 개의 섬들이 흩뿌려져 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우리들은 시판돈의 초입에 해당하는 강변마을 나카상에 도착해서 다시 배를 탔다. 작지만 길고 날렵하게 생긴 배는 우리 일행을 7~8명씩 나누어 태우고 꽁무니에 달린 모터의 동력 소리와 함께 힘차게 강물을 갈랐다. 강물이 대지를 향해 기울고 있는 태양 빛과 어울려 싱싱하고 예쁘게 빛났다. 태양 빛을 먹은 그 강물이 우리 배가 만들어낸 파도를 넘실넘실 넘을 때마다 작은 별 몇 개가 반짝 물 위로 뛰어올라 대기 속으로 사라졌다. 제 자리를 모르고 머리 위까지 올라갔던 내 마음이 심장 아래로 회귀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평화롭고 고즈넉했다. 그때 한 아이의 낮은 목소리가 내 마음에 작은 파문 하나를 더 그려 넣었다.

 "아아…좋다…."
 배가 작은 섬들과 수초들 사이사이로 달리는 동안 좋을 때면 '진짜' '대박' 같은 센 단어들을 동원해 소리를 지르는 것만 알 것 같던 아이가 들릴 듯 말 듯 낮고 수줍은 언어 두 마디를 강물에 문득 '툭' 풀어놓은 것이다. '아… 좋다….' 그 아이의 좋아하는 그 마음이 내게로 건너와 내 마음 속에서 작은 파문이 되어 번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좋았다. 

 그 앞에 앉은 다른 아이는 여행 초기에는 탁해 보여 더럽다고 말했던 강물에 스스럼없이 손을 집어넣고 그이의 맑은 눈빛을 밑밥 삼아 물살을 낚고 있다. 그 너머에는 또 다른 두 아이가 전날에 우리가 참파삭 유적지에 다녀올 때에 자전거를 타고 황톳길을 달리던 그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이야기하고 있다. 차를 타고 갔더라면 그만큼은 멋지지 않았을 거라고 자기들끼리 다짐하는 말도 들려온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차를 타는 것보다 볼 것이 많다는 것, 또는 여행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점심때에는 나루터 식당에서 아이들이 능청스럽게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한 손으로 '조물딱 조물딱' 뭉쳐서 먹는 그 모습이 라오 현지인들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섬에 도착하자 모둠별로 숙소를 구했다. 그동안 아낀 돈으로 '근사한' 호텔을 잡겠다던 희경이네 모둠은 뜻한 바대로 '온수도 콸콸 에어컨도 빵빵'한, 다른 모둠에 비해 두 배나 비싼 호텔에 들어가 부러움을 샀다. 저녁에는 여행학교 아이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 강물 아래로 해가 빠져들고 있다.
그날은 저녁놀이 압권이었다. 강물 아래로 해가 빠져드는 모습은 차라리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만큼 아름다웠다. 파랗고 붉고 노란 기운이 야자수와 강물과 그 강물을 저어가는 배와 레스토랑의 외등에 차례대로 내려앉고 스며들다가 바람이 되어 사라져갔다. 우리들은 레스토랑에 앉아 저녁놀의 풍경 안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주문한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문득 우리들이 집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삶이 단순해서 좋았는데, 집에 돌아가면 다시 머리가 복잡해질 것 같아." 
 중학교 3학년인 도솔이다. 이곳에선 삶이 단순해서 좋았는데, 돌아가면 다시 복잡해질 것 같단다. 도대체, 이제 겨우 나이 열여섯인 이 아이의 삶이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하는 걸까? 내 마음도 그 아이처럼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열네 살 수경이가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도 얹어놓는다. 
 "여기서는 걱정거리가 없어 좋아요."
 또 다른 한 아이가 그 말에 동조한다.
 "여기 사람들은 걱정이 없는 것 같아요. 욕심도 없고요. 그래서 나도 걱정이 없어 좋았는데…."

▲ 삶이 단순해서 좋았다는 열여섯 살 도솔.
 역시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서희다. 거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우울해진 아이는 말을 더 잇지 못한다. 그 아이를 따라 그만 내 가슴까지 먹먹해지고 만다. 우리들은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 사회는 이 작은 어깨에 무슨 걱정들을 그리 많이 짐져놓은 걸까? 나는 그 다음 순간에 다른 몇 아이들이 동시에 한숨처럼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정호와 영준이, 그리고 성호였지 싶다.
 "돌아가기 싫다… 진짜로."

 돌아가기 싫단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싫단다. 돌아가면 고등학생이 된다고, 학원을 다녀야 한다고, 방학숙제가 폭풍이라고. 아이들은 지금 그들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고국임에도, 그곳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문장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가슴이 아파왔다. 이제 열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말하는 나라가 세상에 얼마나 더 있을까? 그런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일까?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의 나라가 바로 그 나라라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날 밤 나는 삶이 다시 복잡해질 것 같아서, 걱정이 많아질 것 같아서, 단순해서 좋은 지금의 행복을 놓고 싶지 않아서, 집에 돌아가기 싫다는 아이들의 삶의 무게로 인해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에서의 밤을 참으로 무겁게 보내야 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만큼, 지금 이 순간에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할 텐데' 하는 생각. 아니, 열네 살인 지금 그들의 삶이 행복할 수 없다면, 열여섯 살인 지금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면, 수능시험을 치고 스무 살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 과연 현재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행복해질 거라고 말할 수 있기나 한 걸까? 대학에서 또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고 취직시험을 치고 결혼을 하고 내 집으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고 나면, 그때는 과연 오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하다.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동시에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삶이 그렇게 단순해서는 안 되는 걸까? 그런 걸까?

 여행을 떠나온 지 20일째가 되던 그날.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여행의 현실과 한국에 두고 온 또 다른 현실 모두를 인식하고 있었다.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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