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 제주 향토음식 명인 1호 김지순
돼지, 닭, 개를 키우던 집. 외할머닌 빨랫줄에 삶은 전복을 말리고 있었다. 그게 숙복이란 것, 커서야 알았다. 유월 스무날엔 봄 병아리 사다가 키운 닭 속에 마늘이랑 참기름 넣고 뽑아낸 진국을 어린 손녀에게 먹였다. 닭기름도 걷어내지 않은 그것을. 느글거리는 내장을 달래러 손녀는 장항독으로 달렸다. '마농지'를 손으로 북 찢어 먹어도 그 느낌은 사흘이나 갔다. 간장 된장으로만 양념하던 할머니, 어머니의 음식, 그건 제주도 맛이었다. 그 손녀, 대물림했을까. 평생 향토음식 외길. "이것도 요리냐" 거칠고 단순해 육지선 얕보던 제주음식, 이젠 슬로푸드 웰빙식이라고 대접받기까지. 아, 그렇게 되기까지, 이 여자 세월, 거기 있었다. 제주 향토음식 명인 1호 김지순, 이젠 일본 오가며 제주음식 한류 일으키고 있다.
그를 만난 건 그가 오사카로 가기 전날이었다. 오사카에서는 매달 '김지순 선생 한국요리교실'이 열린다. 아침 저녁으로 90명의 남녀 수강생. 벌써 1년. 갈수록 인기여서 내년에도 요리교실은 계속된다. "한국음식의 세계화라는데 보람있죠. 우리 제주도 음식은 양념이 담백하잖아요. 사람들은 고추장 고춧가루 넣은 것을 좋아해요. 한국요리 전반적인 것을 하기 때문에 메뉴도 다양하게 해요. 우리의 담백한 음식 하나, 고추장 들어가는 음식 하나 조화롭게 메뉴를 잘 짜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며느리들까지 데리고 와서 김치, 떡을 배우게 합니다. 그들이 한국음식에 더 빠져요." 가르치다보면 제주문화도 저절로 알려주게 된다. 매달 다른 음식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 향토음식 명인, 그의 요리인생은 음식의 깊은 맛처럼 오래됐다.
# 오사카서 '김지순선생 요리교실' 매달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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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첫 향토음식 명인 김지순은 1936년 제주도 출생. 2010년 최초의 제주 향토음식 명인으로 선정.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 졸업. 정부 차원에서 혼·분식 장려하던 1970년대, 우리나라 요리의 대가인 왕준련 선생을 만나 제주도 식생활 개선운동에 앞장섬. 1971년도 식생활개선연구소 제주도 지부장.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LA지부장 역임. 국내는 물론 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일본의 시즈오카, 다카오카 등에서 제주 향토음식 요리강좌. 차 모임인 '관향회' 회장. 제주산업정보대 관광호텔조리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 한 후 제주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 1985년 도내 첫 요리학원을 열었고,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장. 재암문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제주도 음식」(대원사·1998년), 「제주향토음식문화」(제주문화사·2001년) 등. | ||
지금까지 실습한 요리만 100가지가 넘는다. 그러다보니 한국음식이 세계화에 어느 정도 가까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단다. 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고, 꼭 한복을 입고 강의한다는 김지순. 일본에서는 제주 청정 식재료와 한국음식을 주제로 한 책도 준비하고 있단다. 오사카의 이조원을 운영하는 재일동포와의 인연으로 시작된 교류. "사장이 서울과 제주에서 기본 교육을 다 받고 간 사람입니다. 제주도에 빙떡, 호박탕쉬, 양애산적 배우고 간 사람들도 있어 제주도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지요." 요리교실엔 나라, 고베 등 먼 데서도 온다. 반 이상이 일본 사람. 재일 3세들이다.
김지순. 홀로 한 길을 가다보니 이젠 가족의 길이 됐다. 그의 아들, 며느리 모두 그 어머니의 삶의 길에 자연스레 들어섰다. 둘째 아들 양용진은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부원장으로, 체계적으로 제주음식을 연구하고 있는 든든한 협력자. 일본엔 이들이 두달에 한번씩 번갈아가면서 동행한다. "함께 가니까 마음 편하지요. 거기서는 각 식당의 조리사들이 한국요리를 모르면서도 해요. 한국요리의 흐름을 비로소 알 것 같다고 할 때 뿌듯해집니다. 실제로 그곳 식당에 손님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좋아해요."
# 제주도 음식 보편성 입증…세계화 가능
2년 전 프랑스에서 온 세계적인 3대 스타 셰프 장 조지가 제주를 찾았을 때다. 그 셰프 앞에 제주 국을 내놓았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은 놀라지 않아요. 제주도 음식과 제주도가 참 신기하다고 놀라더군요. 국을 맛보고는 국이 변하지 않고 이대로 이어졌으면 했어요. 국에 들어가는 내장인 장간막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준 스프의 맛을 생각나게 한다고. 제주향토음식이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세계화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제주에 온 추사와 많은 조선의 유배객들은 제주식 끼니에 많이 힘들어했다. 팍팍한 화산땅의 조팝이랑 반찬에 힘들다 힘들다 호소해 여러날 걸려 육지에서 공수해 먹기도 했다. 그렇게 괴롭히던 제주도 거친 음식, 이젠 웰빙식이고, 인기 음식이라니! "간단하고 거친 음식을 먹었던 조상들의 지혜를 우리가 이제 따라가는 것이죠. 젊은 엄마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자식들이 모릅니다. 소속 불명의 음식들을 내놓고 있다는 거지요. 제철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제주 향토음식이야말로 더없이 건강한 몸을 만드는 웰빙푸드, 슬로푸드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제주 음식의 매력에 빠진다는 이 음식 명인. 그는 안다. 가난해서 먹던 음식, 거친 음식에서 흘러나오던 조상들의 문화와 지혜를. 할머니와 어머니의 음식은 순전히 제주도 자연이 키워낸 것임을. 음식개발? "원형을 보존하고 입맛에 맛게 개발하는 것이지 그대로 시류에 따라가면 제주어처럼 우리들의 전통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가 후손들에 물려줘야한다며 책을 내는 이유다. 아직도 배울게 많다고 공부하는 이유다.
# 깐깐한 외할머니, 어머니의 영향
깨끗하고 깐깐한 할머니와 솜씨 좋은 어머니를 만났다. 일제강점기, 외할머니는 돈벌러 일본 방직회사에 다녔다. 모든 일에는 일가견 있던 외할머닌 "일 순서를 알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시집가선 생선 가운데 토막은 남편한테 바쳐야한다고 했다. "철마다 돼지새끼보 사다가 죽을 끓여 먹이거나, 닭제골 뽑아서 나만 먹였어요. 할머닌 돈을 준 것이 아니라 문화를 유산으로 준 것이죠."
일본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어머니는 결혼 후 두 어린 딸을 외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돈 벌러 두 번이나 도일했다. 밀항하다 붙잡혀서는 글 모르던 사람들 편지 대필도 해줬다. 일본에서 편물을 배우고 와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편물점을 낸 어머니다. 그것으로 아이들 교육을 시켰던 어머니는 빙떡 붙이러 서울도 갔다. 동네 잔칫집에선 솜씨 한자락 초빙해가던 손맛. "50년대에 친구들한테 에그밀크란 걸 처음 맛보게 해 친구들이 놀라기도 했지요." 딸의 길을 늘 후원해주던 동지같던 그 어머니, 올해는 영영 작별한 해가 됐다.
요리에 대해 충격을 먹은 건 서울서 대학 다닐 때. 이화여대 화학과 1년 하다 수도사대 가정과로 옮길 당시였다. 잠시 잘 사는 지인의 집에 살던 시기. "평양사람인데 뒷채에 조리사 할머니가 살았어요. 요리를 하는데 제주도 음식하고 너무 틀려. 여름엔 돼지고기 먹지도 안할땐데, 돌에다가 돼지고기 삶아 기름 빼고, 애호박으로 국·찌개·부침도 해서 먹고, 제주도에는 그런 찌개가 어디 있어. 신기한거라. 감자에 당면 넣고 국도 끓여먹고. 때만 되면 부엌에 들어가는거라. 할머니는 왜 여기 들어오냐고 야단치고." 그때가 새로운 요리의 세계에 눈을 뜨던 때가 아니었을까.
# 요리 스승 왕준련…국내·외 한국요리 전도사
이상하게도 여고 때는 가사 반장을 했다. 타고난 요리선생 김지순. 교육계에 들어가기 전부터 무근성 집에서 식탁 놓고 요리를 가르칠 때가 삼십대, 그의 요리 스승은 당대 요리계의 여왕 왕준련. 제주도 음식은 잘 몰랐지만 폭이 넓고 정열적이었던 스승은 그를 딸처럼 아꼈다. "양파가 과잉생산 된거라. 제주도에서 강사를 불러 요리강습을 할 때 초빙했는데 어머니가 그분에게 요리를 배웠던 인연이 있어서 요리 조교로 갔다가 만났지요."
그의 음식 전도사의 길은 1981년 왕선생과 함께 필리핀과 미국에서 해외교포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강좌에서부터다. 여행 자유화가 안되던 시절, 한영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영국 가서 한국음식 전시회를 했다. 에피소드도 많다. 80년대와 90년대 대통령 음식을 직접 그의 손으로 만들던 일, 그를 거쳐간 수많은 조리사들.
"이젠 제주도 식으로 해야돼요. 식당에 가보면 양념으로 덮여져 밑에 갈친지 고등언지 모르는데 우린 재료가 다 보이게 해 먹었잖아요. 다만 제주의 재료를 갖고 육지 식으로 요리를 하는 거지요. 우린 간장 된장 양념이고, 영호남 요리법 들어와서 관광객 기호에 맞추다보니 우리 음식이 사라지고 있지요. 외지서 온 사람들이 더 제주 토속 음식을 찾습니다."
운현궁에서 이틀동안 제주도 음식 전시한 적 있는데 그 맛과 신선함에 모두들 놀랐다. 그래도 시대와 사람의 입맛은 변하고 변하는 법. 안되는 것이 있다. 요즘에는 거의 모두 개량종이다 보니 토종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 제주의 맛을 담고 있는 그 재료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 우영팟의 배추, 무 하나 슥 뽑아 만들던 제주도 음식. 당시 팍팍하던 제주도 삶의 배경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 학교 급식 때 향토음식 의미 가르쳐야
"학교에서부터 향토음식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가령 급식을 할 때도 이것은 그냥 먹으라고만 하는데 왜 이 음식인가를 얘기해 줘야해요. 조상들이 이렇게 먹었던 음식이니까 건강식이다. 생선 조림 하나라도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먹었다고 해야지 안그러면 전부 사라진다는 겁니다. 옛날 조리법으로만 하라는 건 아니에요. 마농지 옛날 식은 짜서 못 먹어요. 아이들은 한마디만 해도 달라지지요. 알면서 안지키는 것과 모르면서 안지키는 것은 다르지요"
명인.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하고 좋아서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쉽지 않은 길, 참 견고하게 왔다. 말못할 고통이야 구태여 꺼내서 뭘하랴. 그간 그의 손을 거쳐간 후학들, 셀 수 없다. 요리 인생. 다도 인생. 언제봐도 그는 늘 정열적이다. 그래설까 그는 젊다. 손녀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할머니. 허나 열정 앞에 세월도 멈칫하는가. 몇십년 보는 일본 책 지금도 보고 연구한다. 이제야 길이 조금 보인단다. "명인 수식어가 붙어서 더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생각도 들지요. 팔십이 낼모렌데 이제와서야 겨우 틀이 보이네요. 맛을 내는 방법도. 맛의 길이 조금 보이죠."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ysun641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