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19> 방콕에서 마지막 날

▲ 담넌사두악 수상시장 풍경.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새벽같이 수상시장으로 가는 미니밴에 올라탔다. 어제는 물갈이를 하는지 방콕에 와서 과식을 한 탓인지 배탈 나고 설사하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래서 파타야에 하영, 상훈, 유진, 윤미가 함께 가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또 나운이가 갑자기 다리가 아프단다. 아내가 병원에 함께 다녀오기로 함으로써 또 두 명이 빠졌다. 나운이가 수상시장을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그것이 못내 아쉽다.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수상시장은 그야말로 물 반에 고기 반, 아니 현지인 반에 여행자 반이었다. 그만큼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아 정신없이 복작거렸다. 몇 일전부터 수상시장 방문을 고대해 왔던 아이들은 시장초입에서부터 들뜬 목소리를 드러낸다.

 "와아~! 똑같다, TV에서 보던 거랑!"
 "TV에서?"
 "네! TV에서 보고 진짜 신기해서 꼭 와보고 싶었거든요!"
 "뭐가 신기해?"
 "저거! 배에서 과일도 팔고 생선도 팔고!"

 수상시장은 여러 겹으로 얽힌 수로를 따라 열대 과일과 해산물을 가득 실은 배들이 빽빽이 떠다녔다. 그 사이사이에 야채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배들이 끼어들었고, 가끔은 국수나 볶음밥을 싣고 다니면서 장사꾼들에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해주는 배도 보였다. 여행자들은 때로는 관광객용 배를 타고 때로는 다리를 넘나들면서 수상시장이 뿜어내는 들뜸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그대로의 전통 수상시장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관광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그저 그런 시장도 아니었다.

 우리는 시장 끝머리에서 돌아서지 않고 수로를 따라 더 걸어 나갔다. 길은 사람이 딱 한 명만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소로였다. 길모퉁이를 만나면서 두 번을 더 꺾어 돌았더니 갑자기 수상시장 풍경이 사라지고 수로 양쪽으로 가정집들이 나타났다. 예쁜 화분들이 가꾸어져 있고, 빨래가 바람에 날렸다. 집 안에서는 팬 선풍기가 돌았고 TV에서는 이 나라 가수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 내 뒤를 따라오던 승현이는 이 평범한 풍경들이 오히려 신기한지 그 특유의 구렁이 어법으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

 "삼촌 있잖아요. 이거 진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요. 저기 시장하고 조금밖에 안 떨어졌잖아요. 그런데도 진짜 완전 다른 집들이잖아요. 화분도 있고 안에 사람도 살고 있고요. 이거 신기하지 않아요?"

▲ 사뿐히 들어올려 '주차'된 배.
 그래, 신기하다. 항상 삶의 이면은 신기한 법이다. 삶이란 흔히 눈에 보이고 잘 드러난 부분 그 이면에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평소와 다른 얼굴이라 낯설 것 같지만 때로는 더 친숙해서 오히려 신기한 것이 삶의 이면이다. 나의 경험상 여행에서는 이러한 삶의 이면과 마주하는 기회를 더 자주 갖게 되는데, 이는 여행이란 것 자체가 삶의 이면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삶이 여행의 이면이거나. 아무튼 나는 나이가 들수록 삶이든 여행길이든 수상시장 그 너머 혹은 도시의 번화가 뒤편 같은 삶의 이면의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 더 즐겁다. 그 곳 수상가옥에서 승현이

와 내가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집집마다 작은 자가용 배가 있었는데, 좁은 수로의 교통 흐름을 막지 않기 위해 공중으로 매달아 올릴 수 있는 주차시설을 다 갖췄다는 점이다. 아니, 주배(?)시설이라고 해야 하나?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순간 중의 하나가 이런 것이다. 그곳의 독특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사람들의 문화를 이렇듯 작고 일상적인 것에서 발견할 때면 내가 인류학자라도 된 것처럼 흐뭇하다.

 그렇게 수상가옥이 있는 삶의 공간을 둘러본 후 다시 수상시장에 돌아와서 열대과일을 샀다. 다른 모둠 아이들 역시 배를 타고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과일도 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몇 명은 과일 말고도 손에 향, 인형, 티셔츠 등 여러 품목들이 들려있다.

 "삼촌! 저 스카프 샀어요. 할머니 드릴 거예요."
 "색이 예쁘네. 구경은?" 
 "아! 배 탔거든요, 그런데 장사하는 분들이 여기저기서 작대기로 끌어당겨서 좀 짜증났어요. 뭐, 그래도 재밌었어요. 할머니가 스카프 좋아하시겠죠?"

 뭔들 좋아하지 않으실까. 강아지 같은 손자·손녀들이 먼 여행으로부터 무사하게 다녀온 것만도 기특할 텐데, 그들이 사온 선물이라면 말해 뭣할까.    

 마지막 밤이 왔다. 내일이면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아이들 말대로 아직은 언제까지고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날이 왔다. 27박 28일 여행 중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이 오늘이다. 그 마지막 밤을 아이들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아내와 나는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태국의 제대로 된 전통 음식점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아이들이 이곳 음식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고 또 그것이 여행의 의미도 더해줄 것 같았다. 그런데 전날에 다른 일로 여행사에 들렀다가 그곳에 놓인 광고 리플릿을 보고 그만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방콕에서 제일 높은 빌딩 바이욕 스카이 호텔(Baiyoke Sky Hotel).

    그 스카이라운지에서 International Food !!'

▲ 마지막 밤 바이욕에서 즐긴 저녁 만찬.

 호텔이 자그마치 83층이었다. 그 곳 72층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어느 도시든 도착하면 꼭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도시의 골목 이곳저곳을 목적 없이 걸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을 올라가보는 일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들은 방콕에서 두 번째 것을 못했다. 더구나 메트로폴리탄 야경인데. 그리하여 우리들의 여행학교 마지막 만찬은 방콕에서 제일 높은 곳에서 갖게 되었다. 뷔페 음식은 깔끔하고 풍성했고 크고 넓은 창밖으로 보이는 방콕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세 번에서 네 번, 혹은 여섯 번까지 먹고서야 가득 부른 배를 부여잡고 아이스크림 코너로 향했다. 식사 후에는 다함께 83층 회전 전망대에 올라 방콕 하늘 공기를 마셨다. 그때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정말 '퍼펙트'한 마무리야!"

 돌아보니 상훈이였다. 도솔이는 화려한 마무리에 야경이 대박이라고 했다. 영준이는 한 달만 더 놀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호는 여행이 끝나는 것이 슬프다고 했고, 유진이는 '저 지금 많이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또 수경이와 승현이는 '삼촌과 이모'에게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을 방콕의 밤하늘에 풀어놓았다. 나도 한 마디 했다, 마음속으로. '큰 사고 없이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 모두!' 

    시내버스를 타고 방콕 밤거리를 달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 표정이 조금 복잡하다. 이제 그들도일상으로의 복귀를 생각하는 모양이다.  <끝>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 
 0908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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