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82> 평화기념관 개관 진통 ②

   
 
  2008년 3월 28일 동아일보·조선일보 등에 실린 보수단체의 평화기념관 개관 반대 광고. 4·3평화기념관 개관은 연기돼야 한다면서 "초대 대통령이 악마인가"는 등 격한 표현이 많다.  
 

김태환지사, 박세직 측과 간담회 설득 불구
보수단체, 중앙지 광고로 개관 저지 총력전

평화기념관 개관 진통 ②
2008년 3월5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4·3평화기념관 개관 연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과 박성일 4·3지원단장을 호출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쉽게 짐작이 갔다. 이 주장에 앞장서고 있는 재향군인회 박세직 회장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들이 전시 준비 중인데 4·3중앙위원회 위원장인 국무총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라고 따졌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4·3평화기념관 건립 사업도 4·3중앙위원회 소관이다. 4·3위원회는 2004년 3월9일 제9차 전체회의에서 기념관 건립 사업 등을 의결하고, 그 집행을 4·3실무위원회(위원장 제주도지사)에 위임했다.
필자는 그날 박성일 지원단장과 함께 정부 중앙청사 총리 집무실로 향하면서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 만일 기념관 전시물 문제가 제기되면 그것은 제주도지사에게 위임한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가능하면 그 과정을 잘 아는 수석전문위원인 필자를 배석시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입장은 허용되지 않았다. 한 총리와 원 장관, 박 단장 등 3자 회동이 30분간 진행됐다. 한참 후 총리 집무실 문을 열고 나오는 박 단장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얘져 있었다. 필자의 예상이 적중했다. 박세직 회장의 문제 제기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는 것이었다. 박 단장이 기념관 전시물은 제주도지사에게 위임돼 있다고 강조하자 질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위임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리서 바로 김태환 도지사와의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김 지사는 이에 대해 3월말 평화기념관 개관 계획은 이미 공표된 사실이고, 전시물에 문제가 있다면 개관 전에 수정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김 지사는 통화 과정에서 박세직 회장 등의 문제 제기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러면 박 회장을 직접 만나 의견을 교환하겠다고 버텼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민선지사가 아니고, 과거처럼 관선지사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3월18일 김태환 지사와 박세직 회장을 축으로 한 양쪽 진영의 조찬 간담회가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렸다. 제주도에선 김 지사와 강택상 기획관리실장, 박영부 행정자치국장, 진창섭 4·3사업소장 등이 상경했다. 필자도 김 지사의 요청에 의해 4·3전문가의 자격으로 자리를 같이 하게 됐다.

보수진영에서는 박세직 회장과 류기남 자유시민연대 공동의장 등 6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그 일행 속에 뜻밖에도 이선교 목사가 끼어 있었다. 그는 나를 보는 순간 움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 목사는 '제주4·3사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 사과를 취소하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내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진정서를 보내 4·3희생자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등 맹렬하게 4·3 명예회복 반대운동을 펴온 인물이다.

조찬 간담회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보수진영 측 참석자들은 "군경에 의한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불행했던 사태들을 침소봉대하고, 남로당 폭도들의 만행은 축소·은폐한 4·3진상조사보고서를 중심으로 4·3평화기념관 전시물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 중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학살자로 묘사되고 있다면서 "초대 대통령이 어떻게 악마인가?"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들은 평화기념관 개관을 연기해서 전시물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어떤 논리를 편다고 해도 그들이 수긍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박세직 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박 회장님, 평화기념관 전시물이 잘못됐다는데 직접 보셨습니까?"

"아니,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부하직원들이 다녀와서 문제가 많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추상적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박 회장님이 직접 제주에 가셔서 기념관 전시물을 보고 문제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필자는 어떻게 하든 3월28일로 정해진 기념관 개관 날짜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제안을 했다. 김태환 지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그 이전이라도 자체적으로 전시내용을 점검해서 수정 사항이 있으면 수정하겠다고 거들었다. 3월20일 4·3위원회 소위원회(위원장 박재승 변호사)의 평화기념관 점검 회의도 그런 일환으로 이뤄졌다.

개관 예정일인 3월28일이 다가오면서 개관 준비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당초 외신기자까지 초청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한다는 계획은 쏙 들어갔다. 그날에 개관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한마디로 개관식 계획은 뒤죽박죽이었다. 제주도는 어떻게 하든 그날 기념관 문을 여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반해 보수단체에서는 중앙지와 지방지 등에 "제주4·3평화기념관 개관은 연기되어야 한다"는 광고를 내는 등 저지 운동에 총력전을 폈다.  

☞다음회는 '평화기념관 개관 진통' 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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