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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평화기념관 개관[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83> 평화기념관 개관 진통 ③
양조훈
입력 2013-01-14 (월) 19:40:52 | 승인 2013-01-14 (월) 19:40:52 | 최종수정 2013-01-14 (월) 19:48:46

   
 
  4·3평화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제3관 '바람타는 섬'에서 강요배 화백의 그림을 배경으로 진창섭 4·3사업소장(오른쪽 첫 번째)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일부 그림 가려지자 "표현자유 침해" 논란
재향군인회 임원단 방문해 전시물 논쟁도

평화기념관 개관 진통 ③
2008년 3월28일 보수단체들의 반대 속에 제주4·3평화기념관이 개관됐다. 당초 전시연출자문단에서는 개관에 맞춰 외신기자를 초청한 대대적인 홍보전과 기념관 오픈 기념 국제심포지엄까지 구상했다. 그러나 개관식 계획이 뒤죽박죽되면서 이런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4·3평화기념관 개막식은 제주 지역 인사들만 참석하는 지역 행사가 되고 말았다. 기념관 전시물 설명도 공무원인 진창섭 4·3사업소장이 맡아 안내했다.

기념관 개막을 눈앞에 두고 아트워크 작품 일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돼 전시되지 못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중에도 가장 논쟁이 됐던 것은 김대중 화백의 '오라리사건의 진실'이다. 이 작품은 오라리 방화와 이를 무장대의 소행으로 조작 기록한 미군 쪽 영상자료를 테마로 시사만화 형식의 카툰과 포스터로 그려진 가로 10m에 달하는 대형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이런 조작사건을 백악관과 직접 연결된 것처럼 표현한 부분과 격한 포스터 표현 등이 과도하게 그려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3월20일 4·3중앙위원회 소위원회(위원장 박재승 변호사)의 평화기념관 전시물 최종 점검 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소위원회는 3월25일 "백악관과 중앙청이 전화선으로 연결되어 오라리 조작사건 배후에 미국정부가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추측, 추상적 표현, 자극적인 그림을 자제하고 진상조사보고서에 근거해 충실한 내용으로 수정할 것"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화백은 "미정부의 대응-미군정의 대응-평화협상-오라리사건-제주도 메이데이로 이루어지는 작품의 한 축은 사실로서 드러나지 않았으나 당연히 추론 가능한 부분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수정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해당 그림은 가려졌고, 그 위에 오라리사건에 대한 패널이 임시로 설치됐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예술적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입장과 공공 영역에서 역사적으로 규명 안 된 사실을 추론으로만 표현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촉발할 수 있다는 입장이 맞서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한 짐을 지고 있다. 4·3중앙위원회 소위원회의 현장 확인 과정 때 한 위원이 필자에게 "이 문제는 자칫 외교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데 대응할 자신이 있느냐"고 묻기에 "자신이 없다"고 답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표현에 문제 있다는 지적을 받고 벽 뒤에 가려진 '오라리사건의 진실' 그림 일부. 왼쪽의 포스터 부분과 오른쪽의 백악관 연결 부분(보이지 않음)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필자가 4·3취재반장으로 활동할 때 오라리 조작사건의 진실 규명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적했던 사안이다. 따라서 오라리사건의 실체는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 사건의 배후에 미군정과 미국정부에 대한 의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연결됐다는 식의 표현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이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한번이라도 작가와 사전에 협의하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명색이 전시연출자문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지만, 개막식을 앞둔 막판까지도 볼 수 없었던 것이 바로 김대중 화백의 작품 '오라리사건의 진실'이었다. 물론 이 작품은 그에 합당한 새로운 사료가 나오거나, 역사적 재해석이 정당하다고 자리매김될 때 재평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4·3평화기념관이 개관된지 보름쯤 지난 4월 중순께 재향군인회 박세직 회장 일행이 기념관을 방문했다. 방문단은 재향군인회 중앙회 임원과 각 시도 지회장 등 30여명에 이르렀다. 필자는 지난 3월18일 서울 회동 때 평화기념관 개관을 반대하는 박 회장에게 "기념관 전시물을 직접 보고 문제가 있는지 그 여부를 논의하자"고 제안한 바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동석할 수밖에 없었다.

방문단은 전시관 초입부터 전시물에 불만을 드러냈다. 인민위원회 활동 등을 미화하고 군경의 진압과정을 매우 부정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렸다. 필자는 제4관 '불타는 섬' 입구에 설치된 초토화되는 제주도 지형이 있는 곳에서 제주에서 감행됐던 초토화작전의 실상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리고 필자는 "중산간마을을 쓸어버린 이런 초토화작전이 정당한 진압작전인지, 그리고 오늘의 재향군인회가 왜 과거의 잘못된 군사행위까지 변호하고자 하는지 알고 싶다"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있었다. 몇몇 예비역 장성이 베트남 전쟁을 예로 들면서 피아간의 구분이 어려울 때에는 불가피하게 민간인 희생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필자가 더이상 대화는 어렵다고 보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자 박세직 회장이 뒤따라오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양 위원, 사람이 한 대 맞으면 화가 나서 두 대 때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두 대가 아니라 백배, 이백배의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제주도민들이 억울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평화기념관 개관을 둘러싸고 그처럼 아옹다옹 말다툼하던 박세직 회장은 그 이듬해인 2009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음회는 '산고 심한 4·3재단 출범'


양조훈  yjh4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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