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86> 4·3영령과의 만남 ①

   
 
  2007년 3월말 관음사 주관으로 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서 봉행된 4·3영령 천도재.  
 
위패봉안소 들른 고위 공직자에게 '빙의'
천도재 올리기로 약속 후 이행하자 풀려

4·3영령과의 만남 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소설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 일어난 일들이다.

2007년 3월 중순께 필자는 한 고위 공직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청와대 소속 위원회 국장으로 신분을 밝히고 4·3과 관련해서 상의할 일이 있으니 만날 수 없겠느냐는 뜻을 전해왔다.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2급 상당의 공무원(이사관)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노근리사건지원단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그는 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노근리에도 평화공원을 만들게 돼서 먼저 조성된 4·3평화공원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시찰이었다. 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 들른 그는 노근리공원 조성을 염두에 두고,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위패 크기를 일일이 재면서 30분가량 머물렀단다. 그리고 봉안소를 나와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음습한 기운이 갑자기 자신을 덮치면서 꼼짝 못하는 상태가 돼 버렸다는 것. 일종의 '빙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겨우 서울까지 되돌아왔지만 어쩐 일인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사찰에 가서 불공을 드렸다. 그래도 몸이 풀리지 않자 고향인 경상북도에 내려가 사찰에서 철야 기도를 드렸다. 그런 와중에 4·3영령들을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그 억울함을 듣게 됐고, 자신이 4·3공원 위패봉안소에서 천도재를 드리겠다고 영령들에게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일종의 신기(神氣)가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떤 사찰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고시 공부를 하기 위해 한 절간을 찾았는데, 신기하게도 고등학생 때 꿈에 나타났던 그 사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더라는 거다. 그곳에서 공부를 해서 행정고시를 패스했다. 그러면서 허공을 헤매던 혼백들이 그런 자신에게 기대어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접근한 것으로 풀이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내 의견을 물었다. 기독교인인 나는 4·3영령들을 만났을 때 교회에서 기도로 풀었지만, 천도재는 불교의식이 아닌가. 그래서 아무래도 스님을 만나 처방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마침 제주도 관음사에서 해마다 4·3영혼 천도재를 지내고 있으니 그쪽과 상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나와 함께 제주에 내려와 관음사 중원 주지스님을 만났다. 저간의 사정을 들은 중원 스님은 쾌히 4·3 위패봉안소에서 천도재를 봉행할 것을 허락했다. 행사 주관도 관음사에서 맡겠다고 선선히 나섰다. 그래서 그해 3월말에 위패봉안소에서의 천도재 계획이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오전 10시에 천도재가 치러지던 행사 당일, 서울에서 아침 첫 비행기를 탔던 그는 끝내 제주공항에 내리지 못했다. 아침 일찍 공항에 마중 나갔던 나는 그로부터 "여기 광주공항입니다. 4·3영령들 참으로 대단합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온 그의 이야기는 자신이 탄 비행기가 제주공항에 와서 세번이나 활주로에 착지했지만 그때마다 강한 바람이 불어 결국 광주로 회항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4·3영령들이 조화를 부린 것으로 해석했다.

천도재는 그가 없는 상태에서 봉행됐다. 중원 스님은 "그것은 4·3영령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본인이 없더라도 봉행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4·3유족과 관음사 신도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위패봉안소에서 처음으로 4·3영령들을 위무하는 천도재가 거행됐다.

그날 제주에 오지 못했던 그는 4월3일 제주에 왔다. 비록 앞의 천도재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3일 오후에 관음사에서 해마다 치러온 천도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날은 유독 추웠다. 관음사 야외에서 천도재가 진행됐는데, 어느 순간 그의 의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추워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떨림은 더 강해갔다. 스님이 큰 소리로 영혼들을 불러들이는 순서에서였다. 이어 합창단이 영혼들을 위무하는 찬불가를 부르자 그는 긴 숨을 내쉬면서 조용해졌다.

행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길 때, 내가 "아까 왜 그랬나"고 물었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와서 나를 흔들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찬불가가 흐르자 마음이 편해졌다고 덧붙였다.

일반 상식으론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4·3 진실찾기를 하다보니 이런 경험들을 종종 만나게 됐다. 4·3연구자나 유족들이 영혼과 만나는 빙의 현상을 자주 보게 됐다. 아니, 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있다. 얼마전까지도 나는 4·3영령과의 첫 만남이 4·3취재반장을 맡아야 될 지를 놓고 갈등할 때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체험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다음편은 '4·3영령과의 만남'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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