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바꾸는 힘, 공공미술] 11.제주도 서귀포시 대평마을-JPA-올레

▲ 안덕면 대평리 아트올래-해녀상

지역 작가로 구성 2009년·2011년 두 차례 걸쳐 마을·올레 연결
'지붕 없는 미술관'파급력 톡톡…타 부처 사업 등 연계방안 필요

좁은데다 인적 드문 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만나지는 마을이 불과 몇 년 사이 달라졌다. '날이 좋으면 멀리 수평선 넘어 이어도가 보이는' 사정은 그대로지만 이제는 그 것들에서 삶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들고 난다. '지붕 없는 마을 미술관'이란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고즈넉이 자리를 지키는 것들 모두 허투루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좋다'는 것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일 수 있다. 물론 어딜 더 많이 보길 원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안덕면 대평 마을의 변화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동시에 안타까움을 산다.

# 골목마다 예술 향기

서귀포시 대평 마을은 주민수가 600명 정도인 작은 마을이다. 마을까지 닿는 좁은 길 때문인지 마치 제주 안 다른 세상인 듯 평화로운 마을은 제주올레 덕분에 말 그대로 떴다. 해안 절벽인 박수기정과 너른 바다를 낀 올레 8코스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발을 붙잡았다. 일부러 조성된 예술인마을이나 최근 뜨고 있는 중산간 예술인 촌과 달리 이 곳은 일찍부터 뭍에서 내려온 문화예술인들의 집합소 역할을 했었다. 그동안 마을은 '난드르 용왕마을'이란 이름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평'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늘었다. 올레 때문만은 아니다.

▲ 포구입체조형물 <2011>

서귀포시 대평 마을은 조금씩 변했다. 마치 마녀의 마법으로 돌로 변한 것들이 영웅의 입김에 생명을 찾아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심스럽게 달라졌다. '골목마다 문화향기가 가득하고, 환경과 생태가 숨 쉬는 공간'에 대한 바람은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마을을 바꿨다.

대평 마을의 변화를 이끈 예술가 그룹 JPA-올레(대표 윤덕현)는 제주 작가들로 구성됐다. 섬 태생 예술가들은 자연과 상생하는 법을 마을 미술에 접목했다. 첫 사업에서 마을체험학습장으로부터 포구 방파제에 이르는 약 1㎞ 구간에 '길섶미술로(路)'라는 이름의 미술길을 조성했다. 농협창고 벽은 마을 안내도로 부드러워졌고, 삼거리 공터는 '올레쉼팡(쉼터)'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골목 안 시멘트건물 벽면들에 그려진 마늘꽃과 아트문패는 마을을 찾은 많은 이들의 추억을 장식했다.

▲ 아트인-올레 <2011>
▲ 마늘꽃 <2009>

# 안과 밖, 소통하다

첫 사업은 그러나 여기 저기 아쉬움이 남았다. '기쁨 두배'란 타이틀로 시작된 두 번째 사업은 빈자리를 채우는 것 이상의 노력이 쏟아졌다.

일단 마을 밖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마을 사람들의 불편함을 문화로 푸는 작업이 시작됐다. 대평리 포구와 올레를 연계한 '아트올레'와 문화공간 '아트맵'은 지역주민과 올레꾼 등 방문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장치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직접 몽돌에 글을 써 쌓아올리는 참여형 방사탑이며 마을의 시간을 품고 해안가를 지키는 '해녀상' 등은 지역 작가들이 아니면 찾을 수 없는 아이템으로 타 지역 마을미술프로젝트와 차별화했다.

알맹이며 이물질을 제거한 수 만개의 보말과 작은 몽돌을 타일처럼 붙여 만든 '보들락(樂)과 놀자'는 작가 외에 주민과 관광객 참여로 만들어졌다.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 만든 'all-來' 등 많은 작품들이 원래 마을과 하나였던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 잇딴 사업에 색깔 혼란

마을은 이제 북적인다. 낯선 얼굴이나 어디로 봐도 관광객이 분명한 차림, '허'자 번호판의 차를 만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해진 마을 사람들의 걸음은 다시 느릿해졌다. 찾는 이들이 늘다보니 '민박' '게스트 하우스'같은 것이 하나둘 늘어나며 마을을 채우고, 빈 공간에는 어김없이 주차장이 조성된다. 이전에는 없던 풍경이다.

시작은 '문화'가 했지만 최근 마을을 바꾸는 것은 '사업'이다. 두 차례에 걸쳐 꼼꼼하게 손을 본 마을미술 아이템들 사이로 화장을 잘 못한 것처럼 겉도는 가건물들이 들어서고, 애써 손을 본 아기자기한 마을의 이야기가 화려한 외관들에 가리는 일도 생겨났다.

'누구 탓'이 아닌 것이 문화 관련 프로그램이 진행된 마을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평 마을 역시 문화관광부의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두차례 선정된 것 외에도 농축산식품부 등 다른 부처가 진행하는 농어촌 마을 개선 사업 대상으로도 낙점됐다. 이들 사업을 연계하는 장치가 없다보니 사실상 제각각 사업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처음 맞추지 못한 호흡은 결국 불협화음이 됐다. 물론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 대평은 섬을 휘감아 돌던 바람이 숨을 돌리고 가는 마을이다. 그 것을 잊지 않으면 된다.

"연결성 고민 없는 사업 난립 경계해야"
●인터뷰/윤덕현 JPA-올레 대표

▲ 윤덕현 JPA-올레 대표

대평 '아트 올(all)래(來)' 이야기에 윤덕현 JPA-올레 대표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두 차례나 걸쳐 공을 들였던 기억에 대한 흐뭇함과 최근 예상치 못한 변화에 대한 아쉬움 따위가 교차하는 표정이다.

제주 안이라고는 하지만 안덕면 대평리에서의 작업은 작가들에게 모험과 같았다. '마을미술'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인데다 작은 농어촌 마을이 그렇듯 주민들의 기대감은 작가들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뛰어난 자연풍광 역시 작가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윤 대표는 "자연풍광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포구와 마을 모두를 살리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며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제주적인 느낌을 살리다보니 시간이며 손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조성된 대평마을 '아트 올(all)래(來)'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꼭 한번은 들르는 명소가 됐다. 올레 8코스와 함께 사람들 들면서 마을은 변화라는 홍역을 톡톡히 앓고 있다.

문화 사업과 개발 사업이 제각각 이뤄지다 보니 기존 설치물이 불편해지는 상황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자연스러움이 살아진 어색한 분위기가 전체 마을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윤 대표는 "사업 시행 부처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기존 사업 효과를 살리는 방안 정도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애써 손을 대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지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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