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바꾸는 힘, 공공미술] 12. '지붕 없는 미술관' 그리고

▲ 대구 방천시장은 요절한 가수 김광석을 테마로 한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용어 혼동 속 유사 사업 이어지며 연속성 잃는 사례도 속출
지속성 위한 행·재정적 지원 외에 '사람'연결고리 활용 주문

공공디자인과 공공미술, 마을미술까지 아직도 정리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들리는 불협화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화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마을을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는 얘기에 목을 빼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사이 결과물 중 태반이 자치단체 입김에 처음과는 다른 형태를 하기 경우가 공공연하다. 유사한 내용의 사업을 유치해 기존 사업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일도, 예산 지원 중단과 함께 사업이 유야무야되는 일도 다반사다. 마을미술 프로젝트 역시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마을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연결성이나 지속성 등에 있어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주문되고 있다.

# 사업간 연계 부족 아쉬움

일단 용어부터 정리해보자면 '공공디자인이 도시의 수준을 높이고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켜 경제적 효과를 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공공미술은 '사회적 치유'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상대적으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민에게 문화 주권을 되돌려주는 사회치유이자 계몽 운동'(송만용 미술평론가·동서대 교수)이다.

조형물이나 회화 작품으로 지역의 독특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표현하고 되살리는 방식으로 지역의 사회·문화·정치적 정체성을 미술을 통해 콘텐츠화 하는 것 까지를 '공공미술'로, 이것을 지역 자생력과 결합해 주민들 스스로 향유하고 나아가 경제효과로 연결하는 것을 '마을미술'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 것이 큰 개념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중심에 '지역'이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문제는 사업 시행 주체에 따라 제각각 진행되다 보니 사업간 연결은 물론이고 지역 자생력까지 약화시킨다는데 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진행되고 있다. 시장을 테마로 한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프로젝트'도 문광부 지원으로 꾸려지고 있다. 살기좋은 농촌마을 만들기를 내건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촌종합개발사업' 안에도 공공미술은 중요한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각 지자체별로 추진하고 있는 생활공간 정비 사업 등에 있어서도 문화 아이템은 빠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모든 배경이 사람 사는 곳, '마을'이라는 점이다.

▲ 대전 중촌동 거리미술관 조성후 설치된 예술 벤치
▲ 대전 중촌동 ‘한밭에 휴가온 지렁이’
# '예술가'참여방안 고민 필요

이들 사업이 유기적으로 연계된다면야 사정이 다르지만 현실은 늘 아쉽다. 예를 들어 오랜 역사만큼이나 새로움이 절실했던 대전 중촌동은 'L.O.V.E·대표 김종한'팀과 함께 2010년 현대 미술작품이 있는 거리미술관을 조성했다.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대표 출사 장소로 입소문을 모았던 이 곳에 불과 1년 만에 새 판이 짜졌다. 우중중한 벽면이 화사한 그림들로 포장되고 도로가 만들어지며 반지하가 된 낡은 집 지붕과 벽은 녹슨 철판이 흙처럼 보이는 효과를 보태 '한밭에 휴가 온 지렁이'라는 세월을 타는 친환경 조형물이 됐다.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역 주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졌지만 그것이 화근이 됐다. 주민 대표가 바뀌면서 미처 손을 보지 못한 골목에 다시 색을 입히는 작업이 추진됐다. 이전 참여 작가들과 협의 없이 진행된 작업은 각각의 출입문을 둔 별개의 야외 미술공간을 만드는 아쉬움으로 이어졌다.

▲ 김광석을 그리는 조형물 (대구 방천시장)
요절한 가수 김광석을 테마로 변신한 대구 방천시장은 자생력 측면에서 아쉬움을 낳는다. 2009년부터 방천시장 빈 점포에 입주하기 시작한 지역예술가들이 김광석이 방천시장 인근에 있는 대봉동 출신이란 점에 착안해 2010년 11월부터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란 행사를 시작했고 이후 방천시장의 유입 인구가 3배 이상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2009년 상반기에 대구 중구청, 2009∼2011년 문전성시 프로젝트 지원을 받으면서 자리를 잡았는가 했지만 결과는 씁쓸했다. 지난해 지원이 끊기면서 이미 만들어진 '김광석 길'을 제외한 문화행사가 중단됐다. 지원금이 없으면 그에 의지해 상품을 만들고 월세를 충당하던 예술가 상인들의 정착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첫 행복프로젝트의 주인공인 경북 영천 역시 마을미술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농어촌 마을 개선사업 등으로 만회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자생력이 확보될 때 까지 계속 지원이 어렵다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사람', 다름 아닌 예술가(그룹)다. 하지만 이들의 참여를 유도할 방법은 사업 계획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 단기 아닌 순차 계획 중요

현장에서 이런 안타까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김종한 L.O.V.E 대표작가는 프로젝트와 관련한 질문에 몇 번이고 어디에 있는 어떤 작품인지를 되물었다. 김 대표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임대아파트 단지 내 50m 높이 굴뚝을 작업하는 등 공을 들였다"며 "주민 대표가 바뀌면서 새로운 사업을 진행했다고는 들었지만 도움을 요청하지도 자문을 구하지도 않았다"고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제주시 이도2동 ‘독사천(川) 흐르네’
▲ ‘독사천 흐르네-탐라순력도’
제주시 이도2동에 진행된 '독사천(川)흐르네' 역시 참여 작가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됐다. 지역의 요구라는 설명은 있었지만 복개된 공간이며 주변 아파트 단지 등의 상황은 통일성 보다는 '입맛대로'의 느낌이 강하다. 윤덕현 제주창작연구소 미 대표 역시 "후속 작업을 위해 현장을 둘러보다 낯 선 조형물을 발견해 당황했다"며 "사업을 단기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역 환경을 감안해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귀띔했다.

이런 아쉬움은 아예 사업 초기부터 최소 2~3년의 장기 사업으로 플랜을 짜고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몇몇 사례들과 비교할 때 더 커진다.

이재길 광주 시화문화마을조형연구소 대표는 "프로젝트 의뢰가 왔을 때 아예 3년차 사업까지 밑그림을 그렸고 그에 대한 다짐을 받고서 시작한 일"이라며 "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나 지역 모두 이런 공감대를 만들지 않고는 마을미술프로젝트의 효과를 제대로 얻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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