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한 마리의 용이다. 단산의 모습은 머리인 동쪽 봉우리를 산방산 쪽으로 하고 동서로 길게 엎드린 용의 형국이다. 혹자는 주봉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펼쳐진 북면의 절벽 형상을 보고 '박쥐'라고도 했으나 단산은 박쥐가 아니라 용이다. 오랜 세월 파식과 풍식을 거치며 동서 1㎞에 걸쳐 형성된 능선은 용의 등에 나 있는 갈기 비늘이고, 능선에 겹겹이 쌓여있는 응회암층은 용의 전신을 덮고 있는 튼튼한 비늘이다. 승천을 앞두고 숨을 고르는 듯 쉬고 있는 용의 등을 타는 듯한 설렘이 인다. 산방산과 형제섬·가파도와 마라도 등 주변 경관 또한 일품인 단산이다.
단산은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취락지 북서쪽 1㎞ 지점에 있으며, 주소는 사계리 3121번지 일대다. 동쪽1.2㎞ 지점의 산방산, 서쪽 1.8㎞ 지점의 모슬봉과 거의 일직선상이다.
단산은 비고가 113m로 전체 368개 오름 가운데 88번째, 면적도 33만9982㎡로 116번째로 넓다. 비고·면적 모두 전체의 3분의1 안에 든다. 하지만 '동네'에선 산방산(비고 3위 345m)와 모슬봉(비고 44위 131m)에 크게 밀린다.
단산·바굼지오름·바고니오름 등으로 불리는 이름의 유래에는 2가지 설이 있다. 오름의 형상이 바구니냐 박쥐냐다. 전자는 '소쿠리 단(簞)'의 단산(簞山)으로 썼다는 주장이고, 후자는 박쥐의 옛말인 '바구미'가 와전됐다는 설이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엔 파고산(把古山), 탐라순력도(1703)엔 파군산(破軍山), 제주삼읍전도(1872)엔 단산(簞山)으로 기재된 점 등으로 미뤄 '바구니'에 무게가 실린다. 그런데 왜 용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지는 의문이다. 향교로 쪽에서 바라보는 단산의 남면은 머리를 동으로 두고 길게 엎드린 용의 형상 그대로다.
단산은 신제주로터리에서 약 36.5㎞다. 평화로를 타고 25.9㎞ 지점 동광IC에서 우측 보성·서광(대정)방면으로 9.0km 직진 후 안성교차로에서 일주서로 대정방면으로 우회전, 400m 이동 후 향교로75번길로 좌회전 1.2㎞를 진행하면 탐방로 입구다. 충분한 주차공간이 있다.
단산 '공식' 안내판에는 탐방로 입구(탐방로지도 K)에서 시작, 북동쪽으로 돌아 올라갔다 되돌아 올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단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단산사(〃B) 옆으로 올라 정상을 거쳐 뒷길로 내려오는 게 백번 낫다. 그런데 단산사(壇山寺)의 단자는 '제단 단'이어서 특이하다.
출발해 2분이면 퇴적암 층이 평평하게 형성된 전망대(〃C)다. 왼쪽의 산방산을 시작으로 형제섬과 송악산 등 제주의 바다와 들이 파스텔 톤으로 이어지며 한 폭의 시원한 풍경화로 다가온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오래된 수성화산체임을 절감한다. 수십만년에 걸친 풍화로 층층이 쌓여있는 시루떡처럼 발밑에 눈앞에 이어진다. 지질공원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북쪽은 깎아지른 듯 직각에 가까운 절벽이고 남쪽도 상대적으로 완만할 뿐 여느 오름보다는 가파르다.
경사가 가팔라 나무에 매여 있는 로프를 잡고 오르고, 간간이 완만한 화산재 구간을 걸으며 주변 경관을 감상하다 보면 정상(〃F·표고 158m)이다. 약 25분 걸렸다. 용의 꼬리인 단산사에더 나아가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동봉은 주봉에 8m 낮지만 삼각뿔처럼 뾰족하게 급경사를 이루며 솟아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까지 이어지는 능선도 '칼날능선'이어서 맨손 등반은 위험하다. 용의 머리인 만큼 '언터처블(Untouchable)'로 둬도 좋을 듯하다.
정상부의 풍광은 압권이다. 남쪽으론 오름 앞의 들판과 왼쪽의 장엄한 산방산, 바로 이어지는 바다, 그 가운데 앙증맞게 마주 서 있는 형제섬, 그리고 다시 바다와 송악산, 그 뒤 직선상으로 이어지는 가파도와 마라도 등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서쪽은 일제 수탈의 역사적 현장인 알뜨르비행장과 모슬봉이 이어진다. 북쪽은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병악·원수악·정물오름·금오름 등 제주 서부의 오름군들이 봄볕에 반짝인다.
일반적인 탐방코스도 주봉까지다. 하산은 교차로(〃G)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계단 내려가기로 시작된다. 250개 내외로 내려가는 데 5분이내지만 오를 때는 갑절이상이다. 이후는 완만하게 내려가는 둘레길 형태다. 휴식을 위한 벤치들이 여러 개 설치돼 있다. 계단을 내려와 10분을 못가면 오름방향으로 계단이 나있는데 일본군들이 강점기에 파놓았던 진지동굴로 이어진다. 진지동굴까진 왕복 10분이면 충분하다. 단산엔 7개의 진지동굴이 있는데, 2개는 토치카 형태로 구축돼 있다.
진지동굴을 거쳐 주차된 곳으로 돌아오면 정상을 출발한 지 25분, 경관을 감상하는 시간을 감안해도 1시간이면 탐방에 충분한 오름이다.
단산 남쪽 자락에 석천(石泉)으로 이름난 '세미물(〃L)'과 아름다운 대정향교(〃M)가 있다. 세미물은 대정현 성안의 물이 말랐을 때 길어다 썼다고 하는데 지금도 수량이 만만치 않다. 추사 김정희의 '체취'가 남아 있는 대정향교에선 금방이라도 정적을 깨고 사서삼경을 읽은 선비들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
단산은 바다였던 곳에서 폭발한 수성화산이나 응회구의 퇴적층이 수십만년에 걸쳐 침식되면서 원지형이 파괴, 분화구의 일부만 '이상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단산은 제주도 형성 초창기의 수성화산체 가운데 하나로 40만년전으로 추정된다"며 "워낙 크고 오래돼서 원래 화구의 형태가 사라졌지만 성산일출봉처럼 직벽인 북쪽이 바깥쪽이고 비교적 완만한 남쪽에 화구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산의 식생은 사면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남사면엔 곰솔군락, 북서사면엔 참식·생달·육박·까마귀쪽·후박·사철나무 등 상록활엽수들이 곰솔과 혼생하는 가운데 맥문아재비·보리밥나무 등 이 관목층과 초본층에 우점하고 있다. 긴잎도깨비쇠고비·맥문동·돌토끼고사리 등도 보인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정상부터 하단부까지 대부분 나출된 응회암으로 인해 송악·마삭줄·모람 등 착생식물군락이 발달하고 갯기름나물 등 해안성식물의 분포가 많은 게 특징"이라며 "정상부 바위에는 희귀식물인 지네발란·솔잎란 등도 드물게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대정향교는 자체의 소박함과 아름다운 주변 풍광, 그리고 추사 김정희와의 인연 등으로 지역의 명소다"
문순영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정책과장은 "명륜당·대성전·동재·서재·대성문에다 최근 복원된 전사청까지 갖춘 대정향교는 도내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향교"라며 "1772년 중건된 명륜당은 장식이 간결하고 단청을 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강건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제주엔 백성의 교육과 교화를 위한 국립교육기관인 향교가 제주시 용담동에 제주향교(1392년)와 안덕면 사계리의 대정향교(1420년), 표선면 성읍리의 정의향교(1423년) 등 3개가 설립됐다. 이들은 1971년 각각 제주도유형문화재 제2호·4호·5호로 지정됐다.
문 과장은 "대정향교의 경우 대정현 북성 안에 설립됐으나 터가 좋지 않다하여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1653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며 "얼핏 봐도 명당 같은 단산 자락에 소담한 모습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향교"라고 극찬했다.
그는 "경내 앞쪽에 학생들을 가르치던 명륜당, 그 뒤쪽엔 3칸으로 지어진 내삼문을 두고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자리함으로써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향교배치 통식을 따르고 있다"며 "명륜당 앞에 자리한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장소였다"고 설명했다.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한 5성위(聖位)와 주돈이 등 송조(宋朝) 4현(四賢), 설총·최치원·정몽주 등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문 과장은 "조선시대엔 훈도 1사람이 교생 30명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며 "하지만 지금도 봄·가을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사설학원인 문명학원(원장 강용중)이 설립, 학생과 일반인 대상의 한자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현재 제주추사관에 전시돼 있는 '의문당(疑問堂)' 현판은 1846년 유배 당시 추사의 글씨로 동재에 걸렸었고, 세한도(歲寒圖)의 모델이 명륜당 위의 소나무라는 전언 등으로 미뤄 추사가 대정향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추사와의 인연도 강조했다. 김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