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악산은 '외강내유'형이다. 한라산 자락 해발 500m 지점에 홀로 우뚝 솟은 오름의 외관은 수려하지만 강인하다. 주변에 오름이 없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남풍에 혼자 맞섰으니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몸으로 느끼는 미악산은 부드러움이다. 탐방로가 전반적으로 완만해 오름이 아니라 숲길을 걷듯 편안하고 푸근하다. 정상부를 앞두고 경사가 없지는 않지만 정상으로 가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다. 미악산은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의 길을 돌려 바다로 인도하고 스스로 하천의 발원지도 되는 오름이다.
미악산은 한라산 남쪽 중턱 서귀포시 동홍동 산7번지 일대에 소재하고 있다. 서귀포시내 중심지인 1호광장에서 정북 쪽으로 5㎞ 지점이다. 미악산은 비고와 면적 모두 도내 오름 368개 가운데 상위 3분의1에 포함되는 비교적 큰 오름이다. 비고는 113m에 87번째, 면적은 42만4611㎡로 74번째다. 둘레는 2425m, 저경은 711m다.
미악산은 남동방향 터진 말굽형 분화구를 가지며 정상부엔 200m 거리를 두고 북동과 남서쪽 2개의 봉우리가 있다. 남서쪽이 주봉(표고 567.5m)이고 2개 봉우리 사이는 완만한 안부가 형성돼 있다.
오름·쌀오름이라고도 불리는 미악산(米岳山)의 어원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쌀(米)'이다. 지금처럼 조림수 등 관목으로 가려지기 이전 잔디와 억새 등으로 뒤덮인 오름의 형태가 마치 쌀을 쌓아올린 것 같다고 하여 명명됐다는 설이다. 반론도 있다. 제주말의 쌀은 ''이 아니라 ''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 신역시(神域視)한 이름이라거나, 잔디 등 초본식물에 뒤덮인 오름의 부드러움이나 색깔이 사람의 피부와 같아 ''오름이라 했다는 주장도 있다.
▲ <미악산 탐방로> A=주차장 B=탐방로 입구 C=코스 갈림길 D=야영장 갈림길 E=제2봉 정상 F=주봉 정상 G=야영장 갈림길 H=분화구 I=영천 난대림 J=전망대 K=산록남로 L=동홍로
미악산은 신제주로터리에서 대략 37㎞다. 아연로와 애조로에 이어 5.16도로를 타고 32㎞ 지점에서 나오는 삼거리에서 산록남로로 우회전, 4.8km를 더 가면 미악산이다. 노견에 주차장(탐방로 지도 A)이 넓게 조성돼 있다. 제주시에선 40분, 서귀포시에선 10분 안쪽이다.
미악산 탐방로는 남서쪽 주봉(〃F) 또는 북동쪽 제2봉(〃E)으로 올라 맞은편 봉우리를 거쳐 내려오는 2개의 코스가 조성돼 있다. 출발 후 100m까지(〃C)는 하나였던 코스가 2개로 갈라진다. 동쪽이 A코스, 서쪽이 B코스다. 거리는 왕복 3㎞다. 출발해 A코스를 이용한 제2봉 정상까지가 1.5㎞, B코스로 최정상까지 1.3㎞에, 제2봉에서 최정상 사이가 200m다.
그런데 탐방로 입구(〃B)가 오름의 자락은 아니다. 미악산의 저경이 711m인 점을 감안하면 500m지점을 지나야 오름이 시작되는 셈이다. 탐방로는 목재계단·타이어매트·야자수매트와 자연 그대로 등 다양한 소재로 잘 정비돼 있다. 특히 삼림욕에 좋다는 편백나무의 분포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우뚝 솟은 편백나무 숲길은 걷는 것 자체만으로 즐거움이다.
탐방로를 출발, 오른쪽 A코스로 7분 정도 걸으면 350m지점에서 개활지다. 남서쪽의 고근산과 제주월드컵경기장, 그 너머 범섬 등 서귀포 앞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완만한 경사길이 이어지다 1100m 지점 갈림길에서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1400m지점까지 목재 계단이다. 1350m지점의 벤치에서 땀을 식히고 5분 더 오르면 A코스의 끝인 제2봉 정상이다. 출발한지 약 30분이다.
북쪽엔 한라산 정상이 한껏 가까이 다가와 있다. 동쪽으론 수악·이승악 등 산남 동부지역 오름군의 아스라한 실루엣이 남쪽의 영천악·칡오름·제지기오름으로 이어진다. 그 뒤로 지귀도·섶섬·문섬·범섬이 고즈넉이 떠있다. 서쪽으론 고근산·군산·산방산·모슬봉이 보인다.
제1봉 쪽으로 50여m 내려가면 안부의 최저지점이다. 정상부의 비교적 넓은 개활지여서 헬기포트도 있고 화장실로 갖춰져 있다.
150m를 올라가면 미악산에서 가장 높은 남서봉이다. 하지만 최정상은 방송용 초대형 안테나 등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여기에 통신용 안테나까지 합세, 바다 쪽 경관을 방해하고 있다. 그래도 시원하게 뻗어 내려오는 한라산의 서쪽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남서부지역 오름군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내려오는 길은 쉽다. 코스는 다르지만 능선이 비슷해 B코스 임에도 올랐던 A코스를 내려오는 느낌이다. B코스 정상에선 1200m다. 100m 정도 내려가면 쉼터다. 주변이 편백나무 숲이어서 쉬면서 준비해간 차라도 한잔 마시면 좋을 듯하다.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출발 기준 450m 지점에 조그만 습지다. 많지는 않지만 물이 항상 공급되는 듯 올챙이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하산도 30분 정도 걸렸다.
미악산은 좌우로 하천이 형성되는 등 물과 인연이 많다. 보목천은 미악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 남동쪽으로 흐르다 상효천과 합류해 보목동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정방천은 한라산 남쪽에서 발원한 여러 가닥이 미악산 서쪽에서 합류, 남쪽으로 흘러 해안가 절벽으로 떨어지며 정방폭포가 된다.
▲ 영천의 난대림
특히 영천은 한라산 정상부 방애오름 동·서쪽에서 발원, 남류하다 미악산을 만나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영천악 아래서 효돈천과 합류, 효돈천이란 이름으로 바다까지 흘러간다. 이 하천은 울창한 난대림에 '원앙폭포'와 물이 맑고 시원한 돈내코유원지 등 절승의 계곡미를 자랑한다.
65특히 미악산 북쪽 해발 약 700m지점부터 영천을 따라 해안가까지 형성된 난대림은 우리나라 유일의 '극상림(極相林)'으로 알려져 있으나 논란도 없지 않다. '극상림 대우'라는 지적이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배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무의 1 사이클(100년이상)도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극상림은 아니"라면서도 "그 정도의 좋은 숲이 국내에선 드물고 해서 일반인들에겐 극상림이라고 말해도 된다"고 밝혔다.
▲ 미악산의 비목나무(왼쪽)와 제비꽃
솔오름의 식생은 삼나무·편백나무 조림지와 상록활엽수들이 분포하는 난대2차림 및 잡목림 등으로 구성된다. 사면의 조림지 하부에는 국수나무·비목나무·사스레피나무 등이, 하단부 초지 및 2차림지역에는 곰솔과 비목, 가막살·보리수·동백·쥐똥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김철웅 기자
▲ 김대신 연구사
인터뷰 /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
"미악산 주변 수계를 따라 형성된 난대림은 완전한 극상림(極相林·climax forest)으로 보기 힘들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미악산 북쪽부터 해안가까지 영천과 효돈천을 따라 형성된 난대림, 특히 돈내코계곡은 원시림과 같은 인상을 주지만 아직 그 정도이고, 현재의 참나무류 우점 양상은 천이의 한 과정으로 보인다"면서 '극상림' 인증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김 연구사는 산림식생은 여러 가지 입지조건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뀌다 점차 안정되면서 구성 수종이나 수량의 변화가 거의 없는 극상단계에 이르게 되지만 현재 영천 난대림은 천이가 진행 중인 만큼 극상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 구실잣밤나무·종가시나무·참가시나무·붉가시나무 등 참나무류가 우점하고 있는 이 지역은 천이 및 극상림 연구에 중요하다"며 "장기간 인위적인 간섭 등이 없고 안정되면 참나무류에서 어떠한 수종의 극상림으로 갈지 매우 궁금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연구사는 "영천·효돈천 난대림의 경우 길어야 50년 등 인위적인 간섭이 끝난 지가 오래되지 않았다"면서 "남해안을 기준으로 후박·참식·육박나무 등 녹나무과가 거론되기도 하지만 계곡이라는 특성과 많은 비 등 평지와 다른 조건 때문에 미래의 수종을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위적·자연적 교란 등에 의해 숲이 파괴된 뒤 유입된 식물들 간의 장기간 경쟁단계를 거쳐 최종 극상림으로 이어진다"며 "일종의 안정된 형태의 천연림인 극상림은 주변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식생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사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인위적인 산림교란의 역사가 길어 극상림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며 "그나마 국립수목원이 있는 광릉숲은 500여년 동안 산림생태계가 보존된 덕분에 긴 시간 적응해온 온대활엽수 극상림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