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음식이 경쟁력이다]
2. 나른한 봄, 제철 밥상으로 원기회복

▲ 왼쪽부터 깅이범벅, 멜국, 자리지짐, 우럭콩지짐.
멜국·우럭콩지짐 등으로 봄철 영양 공급
자리, 영양학적 완전 식품…회국수 인기
 
예전에는 제주음식이 초라한 음식이었다. 영양학적으로 절대 권장량에 모자랄 때는 '흉'이었다. 재료도 조악하고, 다양성도 부족했다. 하지만 요즘은 소박하고 초라한 밥상이 되야 하는 시대다. 과열량·패스트푸드 시대에 제주음식이 조명받는 이유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제주음식은 건강음식·힐링음식이 됐다. 변화하는 추세속에서 제주음식도 재료나 조리법에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제주음식은 제주만의 재료를 사용해 말그대로 '치유음식'이 돼야 한다. 여기서 계절성이 강조되는 제주음식의 특징이 주목된다. 계절에 따라 제주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어왔는지, 또 어떻게 하면 제주맛의 원형을 잃지 않고 요즘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인지 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이번 회에서는 그 첫번째로 봄의 제주밥상을 담았다.
 
# 슬로우푸드운동과 제주음식
 
슬로우푸드(slow food)란 세계적으로 맛이 획일화되는 것을 지양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의 문화를 추구하는 국제운동이다. 1986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인 브라지방에서 시작된 식생활운동으로, 특히 로마의 스페인광장에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 맥도널드가 진출하자 이에 대한 저항으로 출발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 확산돼 현재 전세계 50여개 국가에 7만여명의 회원을 지닌 조직으로 커졌다.
 
슬로우푸드운동은 단순히 천천히 먹자는 게 아니라 햄버거 등 현대의 대량생산 음식의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 전통음식문화와 미각, 건강한 먹을거리를 보존하자는 문화운동의 성격까지 포괄하고 있다. 생산자나 생산과정을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온 음식, 많은 이윤을 위해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빨리 생산한 음식을 먹다보니 공장형 사육, 유전자 조작, 성장호르몬 투여, 광우병 등 많은 문제가 나타난데 대한 반발이다.
 
이에 반해 제주의 전통음식은 그 자체로 '완벽한' 슬로우푸드라 할 수 있다. 조리법은 단순하지만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원재료의 맛이 그대로 드러나는 슬로우푸드의 원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고 있는 '슬로우푸드' 바람도 제주 전통요리방식을 가정에서 되살린다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다. 제주의 입맛을 찾아 전통음식의 장점을 연구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 다양한 봄의 음식
 
▲ 봄철 제주밥상.
봄은 쉽게 피곤해지기 쉬운 나른한 계절이다. 겨울 추위가 물러가고 따뜻해지면서 신진 대사가 활발해지기 때문에 영양소가 골고루 몸에 공급돼야 하는 시기다. '봄 탄다'고 말하는 것처럼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주 사람들은 이 계절에 쑥과 씀바귀, 냉이, 원추리나물 등 쓴 맛이 나는 나물을 캐서 먹었다.
 
고정순 제주향토음식문화원장에 따르면 겨우내 웅크리다  봄에 싹을 틔우는 쓴 나물은 피로를 풀고 간의 원활한 작용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부족해지기 쉬운 비타민까지 공급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봄에 많이 먹었던 국으로는 '멜국'(멸치국)을 들 수 있다. 멜국은 봄에서 초여름에 많이 나는 생멸치의 머리와 내장을 빼고 소금물로 씻은 후 끓는 물에 넣고 다시 배추를 손으로 잘라 넣는다. 여기에 다진 마늘과 청장, 후추 등으로 간을 맞춰 밥상에 올렸다. 뼈채 먹는 생선국으로 풍부한 칼슘과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균형잡힌 음식이다.
 
우럭콩지짐(우럭콩조림)과 자리지짐(자리돔조림)도 빼놓을 수 없다. 우럭콩지짐은 비늘을 긁어내고 내장을 꺼내 볶은 콩에 물과 양념을 넣고 조린 반면 자리지짐은 비늘째 양념과 함께 조렸다.
 
우럭콩지짐은 특히 생선과 콩이 조합된 세계적으로 드문 요리방식으로 꼽힌다.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 양을 늘리기 위해 제주에서 비교적 많이 나던 콩을 밑에 깔고 우럭을 놓은 후 오래 조렸다. 다 먹고 남은 진한 국물과 콩으로는 상추·깻잎·호박잎 등으로 쌈을 싸먹기도 했다.
 
자리회는 보리싹 펼때부터 보리 수확이 끝날때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지금은 온난화로 타 지역에서도 많이 잡히지만 제철은 5월부터다.
 
특히 자리회는 영양학적으로 완전한 식품으로 꼽힌다. 머리부터 가시까지 버리는 것 하나 없다. 제철 채소인 미나리와 오이, 풋고추, 깻잎까지 골고루 들어가 한 그릇만 먹으면 다른 반찬 필요없이 완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요리하기 전 뼈가 부드러워지게 식초에 재웠다 야채와 양념을 넣고 버무렸으며, 여기에 물을 넣으면 자리물회가 된다.
 
이외에도 잡곡밥과 각재기국, 깅이범벅, 몸무침, 톳두부무침, 쌈채소 등 계절에 나는 해산물과 채소를 사용한 음식들이 봄철 밥상에 주로 올랐다.
 
# 자리회국수로 가능성 탐색
 
▲ 고정순 제주향토음식문화원장(왼쪽)은 지난해 9월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 행사장에서 열린 한식축제에서 제주향토음식을 선보였다.
자리(물)회는 늦봄부터 여름까지 제주의 대표적인 별미이지만 특유의 비린내로 인해 제주 안에서도 특히 젊은 세대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이같은 비린내를 없애 자리회를 대중화 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제주향토음식을 주제로 세심재갤러리에서 슬로우푸드 국제교류전을 개최하는 등 제주 음식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는 고정순 제주향토음식문화원장이 개발한 '자리회국수'다. 물을 넣지 않은 자리회(강회)에 삶은 국수를 섞어 만든 비빔국수로, 역시 봄철에 나는 녹차 새싹을 넣어 비린내를 싹 없앴다.
 
비린내 때문에 자리회를 입에 대지 못하던 주변 사람들은 물론 갤러리를 방문하는 관광객과 육지에서 온 손님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고정순 원장은 "개인적으로 자리회가 비려서 잘 못먹었기 때문에 처음 먹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개발했다"며 "비린내를 최대한 없애고 녹차 새싹으로 녹차의 향도 느낄 수 있어 가능성 크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제피썹'(초피잎)의 효능도 주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제피는 단순히 특유의 향으로 비린내를 잡는 것만이 아닌, 항균작용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운 날씨에 상하기 쉬운 생선요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피의 항균효과를 이용해 식중독 등 탈을 막았다는 것이다. 또 구내염과 구취 치료에도 도움되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특별취재반=김봉철·고혜아 교육문화체육부 기자

인터뷰 / 고정순 제주향토음식문화원장

"볼품 없던 제주음식이 슬로우푸드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다'로 인식이 바뀌어 가는 듯 합니다"

고정순 제주향토음식문화원장은 "슬로우푸드 정신에 가장 맞는 곳, 해야 할 곳이 바로 제주"라며 "관광객들에게 제주는 '쉬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슬로우푸드를 먹고 건강해져서 돌아갈 수 있도록 식단을 연구하고 요즘 입맛에 맞게 개발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특히 슬로우푸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원장은 "슬로우푸드는 '가정식'을 복원하자는 운동"이라며 "요즘의 제주음식이 슬로우푸드가 되기 위해서는 계절식·제철 식재료를 철저히 지키는 범위에서 하루에 한번이라도 가정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음식 관련 전시나 축제에서도 이 개념을 먼저 이해하고 알려나가는 것이 먼저"라며 "규모를 키우고 타 지역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보다 주민 스스로 슬로푸드 개념을 이해하고 보여주는, 소박하지만 축제다운 축제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또 "제주에서 열린 슬로우푸드 국제교류전을 계기로 어떻게 하면 젊은 사람, 타지역 사람들도 제주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사찰음식이 붐을 이루던 중 선재스님을 만나면서부터 '먹어서 치유되는' 방향으로 가면 제주음식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슬로우푸드·치유음식이 위해서는 '제철'에 나는 것을 양념이 과하지 않게 재료의 맛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그에 반해 요즘에는 연중 갈치국이 나오는 등 '계절'이 없어지고 있다. 제철음식을 한번씩이라도 먹어주는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제주의 대표적 밥상은 시대와 재료가 달라지는 환경에서 요즘 사람에게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제주음식의 근간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연구와 개발을 통해 제주음식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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