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훈 변호사

   
 
     
 
어떤 여자가 임신을 했다가 낙태를 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그 여자는 법률상 배우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혼외정사로 임신한 것은 분명한데, 상대방 남자가 누구인지, 또 언제, 어디서 간통행위를 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여자의 남편은 아내가 간통을 저질렀다며 고소를 했고, 검사는 그녀를 간통죄로 기소했다.

그녀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몇 번에 걸쳐 성관계를 가졌는지는 특정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검사는 겉으로 드러난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즉 여자의 임신과 낙태 사실에 근거해 '피고인이 2009년 4월 중순 일자 불상경 대한민국 내에서 성명불상 남자와 1회 성교해 간통했다'라고 공소사실을 기재했다.

피고인은 간통 사실을 부인하면서 강간을 당해 임신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그 주장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나 정황은 내세우지 못했다. 이런 경우 과연 그 여자는 간통죄의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시일,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간통죄는 각 간음행위마다 1죄가 성립하므로, 그 각 행위의 일시, 장소 및 방법을 명시해 다른 사실과 구별이 가능하도록 공소사실을 기재해야 함이 원칙이다.

배우자 있는 자가 배우자 아닌 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인정된다고 해 그 행위가 언제나 간통행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낙태 사실은 그 임신에 이르게 된 성관계가 있었던 사실을 추정하게 할 뿐이고, 그로써 곧 그 임신의 원인이 된 성관계가 간통행위에 의한 것이라고 특정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법원은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사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 역시 같은 취지로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큰 잘못을 했어도 구실과 변명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 담긴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은 유부녀가 남편의 아이가 아닌 자를 포태한 경우에도 유추 적용된다는 것을 이 사례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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