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어업문화유산 '도대불'을 찾아서] 8. 애월리 도대불

1930~1935년 애월포 선창가 암반에 축조
현무암 다듬어 바른층쌓기 사다리꼴 형태
관망대 기능은 못해…마을진흥회가 관리
2003년 새롭게 복원 지역 유산으로 인식
 
▲ 2003년 11월 복원된 도대불은 옛 모습과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애월리 주민들의 삶의 흔적을 간직한 소중한 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진=특별취재팀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는 삼국시대에 촌락이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민들은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지하용천, 연안의 해산물을 기반으로 농업과 목축, 어업을 영위하면서 생활권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포구를 중심으로 정착민이 늘어나면서 집단 취락 형태를 보이게 됐다. 이 지역도 어업이 발달했던 만큼 어두운 항로를 밝힐 시설이 필요했으며, 옛 등대인 도대불이 축조되는 계기가 됐다.
 
△ 사다리꼴 형태로 축조
 
애월리 도대불에 대한 기록은 옛 북제주군이 1998년 1월 발간한「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애월리 도대불은 '애월포'라 불리는 선창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 항파두성을 쌓고 관군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애월목성을 축성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선조 14년(1581)에는 같은 자리에 김태정 목사가 애월진성을 석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애월리 도대불은 애월포 동쪽의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암반에 축조됐는데, 1930∼1935년 마을 어부들이 쌓은 것으로 기록됐다.
 
▲ 애월리 도대불 정면도(왼쪽), 우측면도.
직사각형으로 다듬은 현무암을 이용해 사다리꼴 형태로 축조됐다는 것이다. 바른층쌓기 방식을 이용했고, 특별한 속채움은 하단부에만 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밑에서부터 허리부분까지는 급격히 오므라들다가 상단부까지 거의 같은 너비를 유지하며 축조됐다는 기록도 있다.
 
도대불 윗부분에는 불을 켜는 도구를 넣기 위한 시설이 있었으나 훼손됐으며, 다듬은 돌을 이용해 벽돌을 쌓듯이 축조돼 간단하면서도 튼튼한 느낌을 줬다고 한다.
 
다만 도대불 외에 관망대로는 사용하지 못하게 지어졌고, 한쪽 면으로 불을 켤 때 올라가기 편리하게 계단을 만들었다고 했다.
 
도대불 관리는 지금의 어촌계격인 마을진흥회에서 담당했으며, 석유 등피를 이용해 불을 밝힌 것으로 나와 있다.
 
도대불의 규모는 하단 142㎝, 상단 116㎝, 높이 246㎝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 복원됐지만 삶의 흔적 간직
 
▲ 옛 북제주군이 1998년 1월 발간한「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Ⅰ)」에 실린 옛 도대불 모습.애월리 도대불 정면도(왼쪽), 우측면도.
현재 애월포에 있는 도대불은「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Ⅰ)」에 실린 도대불과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 취재 결과 도대불의 규모는 물론 형태까지 바뀐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도대불은 하부기단과 몸체, 지붕으로 구분돼 있다. 하부기단은 높이 69∼100㎝, 폭 485∼508㎝로 측정됐다.
 
몸체는 높이 298㎝, 하부 폭 202∼206㎝, 상부 폭 137∼147㎝다. 불을 켜는 지붕의 규모는 높이 68㎝, 폭 86∼92㎝다.
 
이 도대불의 전체 높이는 466㎝로「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Ⅰ)」에 실린 도대불의 규모보다 220㎝ 가량 큰 것으로 나타났다.
 
책자가 발간된 1998년 이후 도대불이 허물어졌다가 다시 복원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도대불 옆에 세워진 비석을 보면 2003년 11월 애월항개발추진위원회에 의해 도대불이 다시 축조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38년생으로 옛 도대불에 불을 켜는 일을 마지막으로 했다는 강항윤씨는 "15살 때까지 도대불에 불을 켰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당시에는 배급받은 호롱불을 사용했고, 일당으로 생선 한 마리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 "옛 도대불의 모습은 지금처럼 견고하지 못했고, 형태도 많이 달랐다"며 도대불이 허물어진 뒤 복원된 사실을 증언을 통해 뒷받침했다.
 
하지만 도대불의 형태와 규모는 달라졌더라도 주민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별취재팀=사회부 김경필 차장 대우, 한 권·김하나 기자 / 자문=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애월리 도대불은 원형이 아니라 새롭게 축조된 것이다. 원래 자리는 애월포 동쪽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암반 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1930~1935년 사이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제주군의 문화유적(1) 문헌에 의하면 원형의 애월리 도대불의 몸체 아랫부분은 142㎝, 몸체 윗부분은 116㎝, 높이는 246㎝의 크기로 사다리꼴 형식이었다.
 
그러나 포구확장 등으로 인해 철거되었다가 도대불의 가치를 인식한 뜻있는 지역 분들과 단체가 성금을 모아 2003년 11월 새롭게 복원되었다. 복원된 도대불을 보면 정면에는 몸체 상부로 올라가는 외부 돌출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크기는 몸체 아랫부분은 203~206㎝, 몸체 윗부분은 137~147㎝, 높이 298㎝로 원형과는 다소 크기가 다르게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형태는 보목리 도대불과 유사한 형태이며, 몸체 부분은 거의 직선으로 단순한 형태로 축조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철거 이전의 애월리 도대불 원형 사진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흥미 있는 점은 잘 다듬은 현무암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축조된 사다리꼴 도대불이라는 점이다. 즉 복원된 도대불의 모습과는 달리 몸체 아랫부분은 넓고 윗부분 중간까지는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지다가 몸체 상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미묘한 곡선을 가진 도대불이었다. 이와 유사한 형식과 곡선미를 가진 도대불이 대포동 도대불이다. 그러나 대포동 도대불이 몸체상부는 가늘고 긴 직육면체 구성에 의한 날렵한 곡선미라면 애월리 도대불은 중후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곡선미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상부는 석유 등피를 이용하여 불을 켜는 도구를 놓아두었던 시설이 별도로 있었는데, 고산리 포구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귀덕2리의 도대불과 달리 관망대의 기능은 하지 못한 것 같다.
 
이와 같이 애월리 도대불은 어떻게 보면 다른 도대불의 여러 가지 요소를 섞어 놓은 것 같이 형태와 기능적인 측면에서 다른 도대불과 달리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최근 수년전부터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이 예술공간화 프로젝트로 인해 몸살을 앓은 경험이 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지역과의 관계성이 없는 예술작품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도대불만큼이나 뛰어난 민중예술품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복원이라는 측면에서는 애월읍 도대불이 가치를 찾을 수 없을지 모르겠으나 도대불이 놓였던 장소적 가치와 도대불과 관련된 지역사(地域史)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원형의 애월리 도대불은 사라졌지만 애월리 주민의 열정으로 인해 새롭게 복원된 도대불이 자리 잡으면서 화려했던 과거 애월포의 아련한 기억을 되새겨 볼 수 있고 또한 미래의 번영을 꿈꾸게 하는 소박한 바람이 담겨진 상징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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