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음식이 경쟁력이다] 9. 제주음식 현주소와 과제

▲ 성읍민속마을 제주전통음식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통음식장.
남양주 슬로푸드 국제대회·장흥군 등 타 지역 선전
제주음식 가능성 확인…브랜드화 등 활용방안 과제
 
앞서 탐사를 통해 타지역의 '음식문화' 육성사업을 살펴봤다. 지리적 약점으로 '산업화'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지역 경제 활성화 주체로 활약하고 있는 강원도 '곤드레 경제'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 음식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전주시의 사례를 보면 '제주음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어느정도 윤곽이 잡힌다. 지역색을 갖춘 음식소재와 브랜드 파워에 현지 식재료 확보, 행정의 적극적인 노력 등이 뒷받침 될 때 음식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주음식의 현주소와 과제를 살펴본다.
 
# 가능성에서 활용방안으로
 
지난 1일부터 6일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열린 국제행사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음식의 종을 모아 지역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슬로푸드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2013 남양주 슬로푸드국제대회(아시오 구스토·Asio Gusto)가 그것이다. 슬로푸드대회가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생산은 유기농, 밥상은 슬로푸드' '슬로푸드 맛으로 바꾸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펼쳐진 대회에는 아시아·오세아니아 62개국 가운데 43개국이 참가해 각국의 다양한 슬로푸드와 전통음식을 선보였다. 조직위는 500여개 부스를 마련해 6일 동안 다채로운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로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대회의 주요 포인트인 '맛의 방주'(Ark of Taste)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었다. 국제슬로푸드 생명다양성재단이 인증하는 맛의 방주는 사라져가는 전 세계 소멸종을 모아 기록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이를 보호하고 지키는 프로젝트다. 76개국 1211가지가 등재돼 있으며, 제주음식은 8월26일 '푸른콩장'과 10월5일 '제주흑우' 등 국내 8종중 2종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제주음식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를 어떻게 브랜드화하고 활용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남해안 지방의 전통 발효차인 '청태전'을 맛의 방주에 등재시킨 전남 장흥군의 노력은 눈여겨 볼 만 하다. 장흥군은 2008년부터 청태전 복원과 상품화를 연구해 총 3건의 제조특허와 상표등록을 출원했고, 지난해 향토산업육성사업으로 청태전육성사업을 선정한데 이어 이번 등재를 계기로 적극적으로 청태전 세계화와 명품화에 힘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 지난 1일부터 6일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열린 2013 남양주 슬로푸드국제대회 모습.
# 음식산업 육성 '의지 부재'
 
타지역의 선전에 비례해 제주음식은 그늘에 가려지는 형국이다. 이번 슬로푸드대회만 해도 당초 예상한 관람객수 30여만명보다 월등히 많은 53만여명이 대회장을 찾는 등 반응이 좋은데다 앞으로 2년마다 같은 지역에서 대회가 열리는 만큼 앞으로 국민들에게 '슬로푸드의 본고장'은 제주가 아닌 남양주시로 인식될 확률이 커졌다.
 
거의 모든 재료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제철식재료로 쓴 점, 양념과 인간의 손길을 가능한한 최소화한 점 등에서 슬로푸드의 정신과 가장 부합한다고 자부했던 제주로서는 뼈아픈 일이다.
 
특히 이탈리아 '살로네 델 구스토', 프랑스 '유로 구스토'와 더불어 슬로푸드 국제본부가 승인한 세계 3대 슬로푸드대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번 대회의 위상을 생각하면 더욱 아쉽기만 하다.
 
대회가 성공한 이유는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변화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기농 육성으로 시작해 음식산업 육성을 추진한 남양주시의 오랜 노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평이다.
 
남도음식의 대표주자인 전주 역시 음식산업화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지난 1998년 '전주향토전통음식 발굴육성 관광상품화 조례' 제정을 비롯해 2003년 전통음식 전담팀 구성, 2004년 '대표 음식목록' 정리, 2005년 전통음식명인 지정까지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전주는 지난해 유네스코 지정 음식창의도시에 세계 4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반면 제주음식을 전략산업으로 육성시키려는 제주도정의 노력과 의지는 부족한 편이다.
 
향토음식조례를 제정했다고는 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과다한 규제 등으로 정작 향토음식점에서는 불만이 쌓이는 형편이고, 전담부서 등 체계적인 조직도 없다.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제주음식축제도 마찬가지다. 2010년 새 도정이 들어서고 향토음식육성 주관부서가 보건위생과에서 신설된 식품산업과로 이관되면서 제주음식축제는 폐지되고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도 함께 묻히고 말았다. 음식산업 육성에 대한 도정의 '의지 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다.
 
타 지자체의 향토 음식 산업화에 뒤쳐지지 않도록, 제주도가 법과 제도를 현실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음식·관광을 포함한 3차산업과 1차산업의 융합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 슬로푸드국제대회에 전시된 푸른콩장 샐러드(사진 왼쪽)와 푸른콩장 칡소 맥적.
# 재료확보·상품개발 등 과제
 
물회, 냉국 등 날 음식이 많은 제주음식의 특성상 생물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관건이다. 앞서 많은 전문가들이 제주음식의 전제로 '제철'과 '향토 식재료'를 강조해온 만큼 '제주산' 재료가 풍부하게 공급될 수 있어야 음식산업 발전도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사례를 상기해 보면 '곤드레 경제'가 강원도산이 아닌, 타 지역에서 들여온 산나물이었다면 이 만큼 사람들이 찾는 음식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최근 해수온 상승 등 자연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제주 해안의 수산자원도 구성변화가 현실로 다가온데다 중국어선의 남획으로 인한 토종 어류의 고갈, 해마다 큰 가격차를 보이는 어획량 등 앞으로 제주음식이 맥을 이어가기 위해선 이에 발맞춘 대응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제주발전연구원 고철수 책임연구원은 '제주 향토음식 세계화 방안' 연구자료를 통해 "농산물과 달리 자연상태에서의 채집·포획을 통해 조달되는 수산물과 임산물 등은 계획생산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는 특성이 있어 신선한 제철 생물 의존도가 높은 제주 토속외식산업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며 "재래 어종의 개체수 확보를 위한 노력이 절실한 상황으로 토속 어패류의 고갈을 막고 체계적 연구를 통한 서식지 조성과 필요하다면 조업제한 등 물리적 장치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고 연구원은 또 전국 어느 곳에서나 근거를 알 수 없는 똑같은 맛이 외식시장을 지배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제주음식이 지역적인 특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신품종 개발과 함께 사라져가는 재래종 작물들을 복원해 경쟁력을 살릴 것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어떻게 제주의 맛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어떻게 '명품'의 이미지를 심을 것인가 등 상품개발 중요한 측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제주음식의 기본이 되는 날된장의 경우, 타지역 관광객들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혈전 용해 단백질 등 날된장만의 효능을 부각시켜 '힐링음식'으로 상품화 하는 방안이나, 여러 음식을 편하게 만들수 있도록 음식별로 소스를 개발하는 등의 방법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음식 관련 기업들이 영세성을 탈피해 프랜차이즈 개발과 브랜드 역량 강화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특별취재반=김봉철·고혜아 교육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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