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배 안에서 100 시간, 남포는 멀다

2등기관사실에 침대 두 개가 있고, 그 중 한 침대를 배정 받자마자 덩치 우람한 선원이 씩 웃으며 플라스틱 양동이 하나를 방안으로 들이밀었다.

토할 일이 있으면 토하라. 아니 토하고는 못배길 것이다.

선원의 웃음에는 그런 의미가 포함돼 있는 걸 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흔들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똑바로 누워서 나는 하필 반동강이 난 강토에 태어나서 그 동안 흔들리며 살아온 세월을 반추하고, 하필 이런 일을 자청하고 나서서 고생하게 된 나의 팔자를 속으로 한탄했다.

나는 평소 구약시대의 선지자 요나를 친숙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이때도 흔들리면서 요나를 떠올렸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갈 때 타고 있던 배는 얼마나 흔들렸을까. 얼마나 흔들렸으면 그를 들어 바다에 던지기까지 했을까. 그는 또한 고래 뱃속에서 거듭 태어나는데, 나는 이번 바다여행을 통하여 얼마나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떠나 오기 전 교회의 여러분들이 걱정을 해 주었고 삼다수와 라면과 과자들을 실어 주었다. 막판에 사진을 찍으며 바라본 아내와 아이들의 추워 보이던 모습이 영 시선에서 안 떠났다. SBS 카메라가 방파제 끝에서 멀어지는 우리 배를 찍고 있던 장면도 잊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항해를 했을까. 고개를 벽쪽으로 트니 세기(世紀) 간희(干禧) 2000년 1월의 손바닥 만한 달력이 벽에 핀으로 꽂혀 있다. 우리가 타기 전날인 16일까지 날자가 하나하나 싸인펜으로 지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방 임자의 어제까지의 생활이 엿보였다. 그의 배에서 보내는 하루 하루의 의미를 약간은 알 것 같다.

배의 흔들림이 많이 순해진 느낌이다. 기관실 바로 옆 방이라 엔진 소리는 탕탕탕탕, 적당한 간격으로 튀어 오르고, 옛날 애기구덕이 이랬을까. 배의 로울링이 아주 평안하다.

아예 저녁을 먹을 엄두도 못내고 누웠다가 파도가 잔잔해지니까 밤 자정쯤 밖으로 나왔다. 어둠 속에 가까이 멀리 작은 섬들. 가끔 희미한 불빛도 보인다. 달이 떠 있어 바다는 은빛 물결이다. 그런 밤바다 위를 배는 순항중이다.

배 안에 있는 텔레비전의 시계는 북경의 시간에 맞춰져 있어 내가 끼고 있는 팔목시계 보다 대충 한 시간 정도가 늦다. 배에서는 시간 보내는 것이 그렇게 더딜 수가 없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의 반댓말이 무엇일까. 계속 그 숙어를 찾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세찬 강물이 흘러가듯 흐르는 은빛 수면을 바라보며 나는 사유에 잠긴다. 우리는 사노라면 어떤 경우 오늘처럼 폭풍 속으로 항진하지 않으면 안될 때도 있잖을까. 그것은 개인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 민족일 수도 있다. 그것을 배와 선장은 묵언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이번에 여러 시간 먼 길을 항해하면서 배운 것인데, 바다는 어떤 시기, 어떤 경우 매우 거칠다가도 어떤 때는 아주 잔잔해진다는 것이다.

사유의 늪에 빠져 있다가 18일 한시 이후에 잠자리에 들어서 얼른 눈을 붙이고 깨니 새벽 네시. 엔진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다가 여섯시가 지나서 밖으로 나갔으나 잔뜩 날씨가 흐려 첫날 바다에서의 일출을 보기는 틀렸다.
선장의 말로는 명일(明日) 중오(中午;정오)에 배가 인천 앞바다를 지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날 아침에 '햇밥' 몇 숟갈을 물에 말아 먹고 나서 이내 토하고 말았다. 일행 중에는 양유진씨가 첫날 배에 올라서 얼마 안돼 토하고, 그 다음 바톤을 내가 넘겨 받은 셈이다. 서른네살의 처녀 김선희 양만이 귀 밑에 키미테를 붙여서인지 잘 견뎌내고 있다.

이날 오후 한시쯤이 됐을 때 나는 몹시 탈진하고 엔진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미리 준비하고 간 청심환을 먹었다. 내가 올해로 회갑인데 여기까지 와서 잘못되던가, 아파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것이 도움이 됐던가, 그 후 바로 좁은 침대에 누워서 잠시 눈을 붙일 수가 있었다. <오성찬·소설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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