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어업문화유산 '도대불'을 찾아서] 11. 두모리 도대불

1920~1930년 두모리 선창에 축조 추정돼
사다리꼴형태 안정감 추구 어부들이 관리
1973년 마을에 전기 공급될 때까지 사용
방어유적 복원과정에 도대불 분리해 신축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는 16세기 말 설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해변에 위치해 제주시 서부권역의 행정 및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지형적으로 땅을 파지 않아도 물이 풍부한 지역이어서 일찍이 사람들이 모여살기에 적합했다. 농업과 어업이 생계수단이었던 만큼 두모리 포구에도 밤에 항로를 밝히는 도대불이 있었다.
△ 방어유적 연대 위 도대불 축조
두모리 도대불에 대한 기록은 옛 북제주군이 1998년 1월 발간한「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한경면 두모리 선창에는 조선 세종 때 축조된 방어유적인 '연대'가 있었다. 이후 1920년부터 1930년 사이 연대 위에 도대불이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연대의 모습은 납작한 상자형태였고, 연대의 가운데 부분에 사다리꼴 형태의 도대불이 세워졌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연대를 사용하지 않게 되자 주민들이 연대 위에 도대불을 축조해 불을 밝히는 시설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대의 위치가 포구와 가깝고, 연대를 기단으로 사용할 경우 도대불을 안정적으로 축조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두모리 도대불의 규모는 높이 234㎝, 하단 폭 143㎝, 상단 폭 108㎝로 기록됐으며, 윗부분에는 점등도구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대불의 등화 담당자는 어부들 중에 한 사람이 맡았고, 다른 어부들은 등화에 필요한 기름 등을 지원했다고 한다.
등화는 조업을 나가는 날 어두워지면 켰고, 선박들이 모두 입항하면 어부들이 소등했다. 도대불에는 상부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있었으며, 1973년 마을에 전기가 가설되기 전까지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 연대 복원과정에 도대불 분리

현재 두모리 포구에 남아 있는 도대불은 원형과는 다른 형태다.
연대와 분리돼 있으며, 규모와 형태가 옛 모습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내용은 제주시가 2011년 5월부터 2012년 2월까지 한국자치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제주시 방어유적 연대·봉수 조사연구 보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두모연대는 일제강점기 때 등대로 사용되면서 상부가 허물어져 있었다.
두모연대는 2004년 고증을 거쳐 도대불과 분리하고 새롭게 복원됐다고 했다.
연대와 분리된 도대불은 바다와 가까운 포구에 새롭게 지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새롭게 신축된 도대불의 규모는 높이 415~425㎝, 기단부 폭 385~475㎝, 상단부 폭 110~130㎝로 옛 모습보다 크다.
다만 기단부를 연대 형태로 만들면서 과거 연대 위에 도대불을 축조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처럼 현재 두모리 포구에 남아 있는 도대불은 옛 모습과 다른 형태를 하고 있지만 마을의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2004년 연대를 복원하는 과정에 도대불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연대와 분리한 뒤 새롭게 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특별취재팀=사회부 김경필 차장 대우, 한 권·김하나 기자 / 자문=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두모리 도대불은 선창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소개한 도대불의 축조방식과는 달리 연대 위에 도대불이 축조되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북제주군의 문화유적Ⅰ」(1998년)의 사진자료를 보면 약간 높은 지대에 놓인 연대위에 도대불이 높게 축조되어 있는데 아마 연대의 원래 기능이 없어지면서 두모리 어촌마을 사람들이 높이 쌓여진 연대의 특징을 살려 그 위에 도대불을 축조한 것이다. 연대의 기능상 개방적이고 높은 지대의 지형적 조건 위에 축조되었기 때문에 그 위에 도대불을 축조하는 것이 훨씬 멀리 불빛을 보낼 수 있고 별도의 구조물을 축조하는 번거로움도 줄일 수 있는 등 유리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도대불의 형태분류상으로는 방사탑형, 연대형, 사다리형 중에서 연대형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사다리형으로도 분류될 수 있는데 실제 애월읍 도대불의 형식과도 매우 유사하기도 하다. 독특한 연대 위 축조방식 때문에 옛 두모리 도대불의 구성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기단부분, 몸체부분, 상부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즉 자연스럽게 연대가 기단부분이 되고 그 위에 축조된 구조물이 몸체, 그리고 상부에는 불을 놓아두었던 집모양의 구조물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모리 도대불의 가장 큰 특징은 도대불 전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비례감과 안정감, 그리고 몸체부분의 세련된 곡선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먼저 비례감과 안정감의 경우 자칫 몸체가 형태적으로 가늘고 길어서 시각적으로 불안하게 보여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갖게 하는 것은 기단의 역할을 하는 낮고 넓은 연대 때문이다. 절묘하게 시각적 균형감과 안정감을 해결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몸체부분의 곡선미는 고산리 도대불이나 대포동 도대불의 몸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곡선미와는 다른데 몸체부분은 바닥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계단이 설치된 부분에서 위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곡선은 완만하지만 자연스러워 미묘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두모리 도대불의 또 다른 특징은 계단형식이다. 다른 도대불의 경우 도대불 몸체내부 혹은 외부에 폭이 좁은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두모리 도대불의 경우 몸체의 폭과 같이 넓은 계단을 설치하였다는 점과 특히 연대에 설치된 계단과 조화되어 마치 제단을 향해 올라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역시 시각적 비례감과 안정감을 보완해주는 요소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두모리 도대불은 연대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부분적으로 철거되거나 훼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서 바닷가 근처로 옮겨져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복원된 도대불이어서 오랜 세월 바다와 어촌 사람들과 함께 했던 두모리 도대불의 옛 정취와 아름다움은 많이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
김경필·한 권·김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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