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49. 고근산

▲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바라본 고근산 남면. 김철웅 기자
한라산 배경으로 우뚝 선 지역 최고 높이의 풍채
산·바다·억새 풍광 '종합세트'…탐방 1시간 충분
 
고근산의 느낌은 서귀포 앞바다를 지켜온 대장군이다. 일단 풍채가 당당하다. 면적은 도내 오름 가운데 6번째로 넓고 높이는 서귀포시에서 최고다. 위치도 서귀포의 중심이다. 왼쪽으론 천지.정방·중앙동 등을, 오른쪽으론 법환·강정·중문동 등을 두고 있다. 그리곤 뒤로 한라산을 배경으로 남쪽의 바다를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에서 눈을 부릅뜨고 서있다. 경관도 일품이다. 주변의 산과 바다, 분화구의 억새 등 그야말로 풍광의 '종합세트'다. 섬들이 떠 있는 제주의 푸른 바다와 눈이 시릴 듯 다가오는 한라산의 풍광은 작품 그 자체다.
 
고근산의 소재지는 서귀포시 서호동 1286-1번지 일대다. 동·서 방향으로는 서귀포의 중심에 해당되고 오름 남쪽 자락 너머엔 신시가지와 혁신도시다. 조선시대에는 정의현과 대정현의 경계였다.
 
고근산은 도내 368개 오름 가운데 정상급 규모를 자랑한다. 원형이 잘보전된 원형분화구를 가지면서 면적이 120만4428㎡로 6번째로 넓고 비고는 171m로 14번째다. 표고는 396.2m(165위)에 저경과 둘레는 각각 1140m·4324m다.
 
근처에 산이 없어 외롭다는 의미에서 고근산(孤根山)이라 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다른 이름인 고공산(古公山·古空山)은 고근산의 변형이란 해석도 있다.
 
▲ 고근산 탐방로 A=입구 B=화장실 C=남쪽 갈림길 D=전망대 E=서쪽 갈림길 F=정상 G=분화구 입구 H=동쪽 갈림길 I=분화구 J=출구 K=강생이궤 L=고근산로 M=서호공동묘지.
제주시(신제주로터리)에서 거리는 45.9㎞다. 평화로를 타고 29.4㎞를 가다 상창교차로에서 좌회전후 15.7㎞ 지점에서 고근산로(〃L)로 좌회전, 800m를 올라가면 탐방로 입구(탐방로 지도 A)다. 
 
오름 중턱까지 자동차로 오르는 바람에 탐방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남쪽 갈림길(〃C)을 거쳐 전망대(〃D), 오름 정상(〃F) 등 시계방향으로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전망대(〃D)로 와도 30분 정도다. 여기서 서쪽 갈림길(〃E)로 내려오는 데도 10분 이내, 주변 풍광과 분화구(〃I)의 억새 감상에 빠진다 해도 1시간이면 탐방 완료다.
 
▲ 가을을 걷는 고근산 탐방로.
대설이 지났으나 대한민국의 최남단 서귀포 고근산은 가을이 한창이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10여분동안 목재계단 주변은 온통 울긋불긋하다. 일교차가 크기 않아 단풍이 곱지 않다는 '불평'도 들린다. 그래도 곱다. 나의 가을도 이렇게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을까 고민에 잠시 빠져본다.
 
인공조림된 삼나무 사이로 범섬이 보인다. 고려시대인 1374년 최영장군이 제주의 명월포로 상륙, 패주하던 목호군의 잔당을 쫓아와 완멸시킨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선 마라도와 가파도·형제섬이 석양에 반짝거리며 송악산·산방산 등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굳이 설치된 망원경을 빌리지 않아도 감동에 큰 차이는 없을 듯하다.
 
바로 북쪽이 정상이다. 패러글라이딩장이 설치돼 있다. 한라산이 좌우로 팔을 펼친 듯 능선이 힘차게 내려간다. 남쪽으로 깊게 패어진 계곡은 효돈천의 상류다. 산을 쪼개어 내를 이뤘다는 '산벌른내'다.
 
고근산의 지세는 배산임수다. 한라산의 명을 받들어 좋은 터에 자리 잡아 제주의 남쪽 바다를 지켜온 수호신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한라산 정상부 오른쪽 각시바위 2개의 봉우리는 여인네 가슴처럼 봉긋하다. 그 뒤로 미악산이다. 야자수매트 탐방로 주변으로 간간이 철쭉이 피었다. 온난화 때문인지, 원래 그러는 건지 최근 오름에서 종종 목격하는 '철없는' 현장이다.
 
오름 동남쪽 정상부에도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서귀포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지귀도와 섶섬·문섬·범섬이 떠 있다. 동쪽 갈림길(〃H)로 가는 중간에도 분화구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어른 키보다 웃자란 억새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연신 흔들어댄다. 분화구는 거신(巨神)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정상부를 베개 삼아 누워 범섬 앞바다에서 물장구를 칠 때 궁둥이를 얹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남동사면 중턱 '머흔저리'라는 곳엔 국상시 이용됐던 곡배단(哭排壇)이 있고 서북서 자락 해발 320m 지점엔 강생이궤(〃K)라는 2개의 수직동굴이 있다. 꿩사냥하던 강아지(강생이)가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담긴 큰 궤는 아주 깊어 높은 철조망으로 둘러치고 '추락위험'이란 팻말까지 붙어있다. 큰 것 남동쪽의 작은 궤는 직경 30㎝ 정도의 구멍 몇개에서 열기가 솟아나온다.
 
▲ 오름 정상부의 노박덩굴(사진 왼쪽)과 작은 강생이궤(강아지굴). 김철웅 기자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강생이궤는 화산폭발 당시 가스가 나왔던 분기공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래서 수직으로 형성됐고 항온항습 작용을 하는 송이가 있는 오름 내부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겨울엔 따뜻한 바람, 여름에는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식생은 남사면과 동사면 중심의 삼나무·해송·상수리 조림지와 분화구 중심의 초지로 구성돼 있다. 예덕·팽·사스레피·상동·쥐똥나무와 산철쭉 등의 관목림이 조림지 주변으로 형성돼 있고, 정상부에서 북서사면으론 상수리·사스레피나무의 키 작은 숲과 초지대가 이어진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주변의 초지가 빈약해 고근산 초지는 방울란 같은 초지형난과식물의 중요한 서식처가 되고 있다"며 "강생이궤 주변은 초겨울임에도 뿜어져 나오는 열기 덕에 가는쇠고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
 
"오름에 군인들 열병식처럼 나무들이 줄을 맞춰 늘어서 있다면 인공림이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인공조림은 적정 식재와 관리를 위해 줄을 맞춘다"며 "1960∼80년대 연료림 조성과 치산녹화를 위해 삼나무와 곰솔·편백나무·상수리나무 등을 많이 심었는데 현재 오름에서 만나는 인공림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사는 "도내 조림역사는 1922년 제주시 아라동에 갱신조림으로 해송을 심으며 시작됐다"며 "2012년 현재 산림면적 8만8874㏊ 가운데 삼나무·편백·해송 등 침엽수림이 2만3341㏊, 활엽수림이 3만538㏊"라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편백이 삼림욕에도 좋고 목재로서도 각광 받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도내 인공림 가운데선 삼나무가 가장 많다"며 "인공조림 초창기에 편백은 제주도에 적응이 안된다고 판단한 데다 삼나무가 빨리 자라는 속성수여서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과론적으로 편백도 잘 자라고 있는 만큼 애초에 편백을 많이 심었으면 하겠지만 삼나무도 40년 이상만 되면 목재로서 유용하다"며 삼나무가 꽃가루 알레르기 유발 식물이라는 일방적인 '매도'를 아쉬워했다.
 
김 연구사는 "삼림욕에 탁월하고 부작용 없는 숲치유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면서 삼나무·편백·비자나무 등 침엽수 인공조림지 가치가 날로 상승하고 있다"면서 도내 조림지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주문했다.
 
그는 "솎아내기 등으로 나무들이 관리, 숲 하부에 햇빛이 들어야 식생이 형성되고 야생동물이 숨거나 먹이 활동이 가능해진다"며 "이래야 목재 생산을 통한 숲의 경제적 가치는 물론 생태적 가치 또한 높아지고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도 향상된다"고 강조했다. 김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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