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3. 납읍리마을제

▲ 납읍리마을제는 유교식 포제의 전형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86년 제주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마을제 의미·방식 전승…도무형문화재 지정
'개방' 두고 의견 상충, 지속적 관리방안 필요
 
올해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애월읍 납읍리 마을에서 '사람'이 났다. 제주 주요 인사로 지역 출신이 낙점됐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하나 같이 '포제가 잘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관심은 이내 '소나무'로 이어졌다. 재선충병의 위협에서 포제청 앞 소나무 두 그루를 지키는 방법이 화두가 된다. 요즘 관점에서는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납읍리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마을에서 마을제는 하나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유교식 포제의 전형
 
"포신지신님, 토신지신님, 제물을 받치니 우리 마을에 가축이 번성하고, 풍년이 들게 해주옵소서, 어린아이들 잘 양육하게 해주시옵소서" 
 
매년 정월 상정일(음력으로 매달 첫째 드는 정(丁)의 날) 밤 12시 금산공원 내 포제청에는 예를 갖춰 모인 마을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축인 마을 청년회장이 축문을 읽기 시작하면 포제청은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해진다.
 
▲ 초헌관과 소집사들이 폐백을 태우는 모습.
마을지 등에 따르면 납읍리마을제는 포신(인물재해신)·토신(마을수호신)·서신을 모시다 지금은 의학발달로 홍역이 발생하지 않자 서신을 제외한 포신·토신에게만 지내고 있다. 포제는 당초 '춘제'와 '추제'로 나눠 행해졌지만 당초 7월 상정일에 봉행하던 '추제'가 지난 1972년 마을회의 결의로 폐지되고, 현재는 춘제만 행해지고 있다.
 
제물로 받치는 것만 해도 희생이라고 부르는 검은 수퇘지 2마리와 조기 외에 명주·백지 등 폐백, 미나리·무 등 채소, 밤·대추·비자·귤·배·사과·유자 등 과일, 쌀메·조메(예전에는 벼·피·조·기장 등 4가지)다.
 
제관으로 모두 13명이 참여한다. 초헌관·아헌관·종헌관은 이장과 노인회장, 부회장 등 마을 어르신이 맡고 소집사는 마을 청년들 중에서 정한다. 제관으로 결정되면 포제 3일 전부터 제청에 들어가 지내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예행연습과 더불어 제례에 관한 교육도 진행한다.
 
양의철 전 납읍리장(67)은 "예전에는 '합숙'기간이 일주일이나 됐다"며 "부정을 타지 않게 한다는 의미라고는 하지만 다음 세대에 마을제의 의미와 방식을 전승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정성'
 
제관들만이 아니라 마을제을 앞두고 마을 주민들 역시 부정한 것을 보지도, 먹지도 않는다. 정성이다. 예전 방식을 모두 고수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것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춘제와 추제를 모두 봉행하던 시절에는 아예 마을 내 연못에 금줄을 두르기도 했다. 당시는 수도·전기 시설이 없어서 행여 부정이 탈까 '이 물은 제를 지내기 위한 것'이라는 표시까지 해뒀다. 유교식 포제라고는 하지만 제수는 여성들이 준비했다. 이 것 역시 50세 이상으로 제한했다.
 
'비례'라 하여 마을 안에서 사람이 죽을 경우에 포제를 미루는 경우도 있었다. 장례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을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예에 어긋난 일로 여겨 포제 일자를 바꿨다. 포제를 지내는 정월 상정일에 마을 내 부정한 일이 생기면 중정일로 연기하고, 이날에도 제를 지내지 못할 사유가 생기면 해일에 지낸다는 규약을 지키고 있다.
 
얼마 전 시내 병원에서 숨을 거둔 마을 노인의 상여가 포제 당일 마을을 지나게 되자 마을회가 유족들을 설득해 상여 이동 경로를 바꾼 일도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야속하다 생각할 수 있을 일이지만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수용 가능한 일이었다.
 
포제에 들이는 정성에 연계된 풍습까지 생겨났다.
 
납읍리민들이 모두 동참한다는 의미로 가구당 1000원씩 갹출해 제물을 올린다. '각반 분식'이라 하여 제에 올렸던 음식들을 나눠 먹는다.
 
양의철씨는 "마을 남자들은 제관으로 참여하고, 여자들은 음식 준비로 그 정성을 다한다. 현대로 들어와서 처음과 달라진 부분도 있지만 지역 주민들 모두가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유산 활용'에 대한 합의
 
납읍리마을제는 유교식 포제의 전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난 1986년 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보존회가 만들어지며 포제의 보존·전승 체계는 갖추게 됐다. 운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잡음이 많다. 포제청 시설을 개선한지 10년도 되지 않아 지반이 내려앉는 등 보수가 필요해졌지만 도의 반응은 냉랭하다. 포제와 관련한 제수비용 예산 역시 물가 인상은 관계없이 수년째 묶여 있는 상태다. 문화재로 지정되다 보니 주변 정비 등에 있어 제약이 많아지면서 활용역시 쉽지 않다. 단순히 시설 보수나 보충차원이 아니다.
 
▲ 애월읍 금산공원 내 위치한 포제청.
마을 안에 뿌리내린 의식인 탓에 개방을 놓고도 마을 안에서 의견이 상충되고 있다.
 
유교식 제례인데다 마을의 길흉을 좌우한다는 상징성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과 문화유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번번히 부딪힌다.
 
학계 등을 중심으로 연구자들이 마을 포제 참관을 희망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지만 제례 중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거나 소음을 내며 마찰을 빚기도 하고 올레 15코스와 연계되며 마을 밖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늘면서 별도의 관리 방안이 필요해졌지만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해 색깔 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면서 전국적으로 홍보팸플릿이 배부되면서 도외 관광객들이 유교식 포제를 체험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한 고민도 늘었다.
 
아직 기록 작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마을 내부 규약과 전통을 통한 전승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납읍리마을제의 특성 중 하나다.
 
하지만 문화유산으로 공유하는 것 역시 이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포제 개방에 있어서는 우선 '사회적 합의'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사전에 마을 포제 참관 메뉴얼을 만들어 공유하고 중요한 의식에 있어서는 참여 제한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마을과 절충할 수 있다.
 
김경호 납읍리장(52)는 "포제단 옆으로 올레 코스가 생기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마을제를 알릴 장치는 제한적"이라며 "이미 개방된 송당리 마을제와 달리 유교식 포제여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 "이라고 말했다.
 
김 이장은 또 "마을 전통문화라는 점에서 문화재를 넘어 문화 유산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은 보존 방안이 될 수 있다"며 "포제가 열릴 때의 반짝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를 관리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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