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2. 곶자왈 어원 - '곶'과 '자왈'의 조우

▲ 할미꽃(왼쪽)과 '곶(숲)'과 '자왈(덩굴)'이 어우러진 모습.
'곶자왈' '오름' '올레' 제주의 자연·문화 상징
1990년 이전 일부 계층 써오던 말 굳어져 사용
숲·덩굴·습지 등 포괄하는 제주 식생지대 의미
 
제주어는 흔히 화산섬과 바람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사람들은 가장 자연을 닮은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인가 곶자왈이 아닌 그 어떤 말이 이 거칠고 투박한 땅과 그 속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생명을 그려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오랜 세월 수난을 이겨낸 숲이 살아나듯 제주어 곶자왈은 제주생태계 소중함은 다시금 우리에게 말해준다.
 
제주생태계 상징적 언어
 
늘 그렇지만 봄은 몇 차례 매서운 추위를 통과의례로 삼고서야 온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봄맞이란 추위를 몇 번 견디면 되는 일이겠지만 자연계에서는 아슬아슬한 투쟁기(鬪爭期)다. 개구리들이 얼어 죽는 수난을 당할 때는 정작 추운 겨울이 아니라 파릇파릇 싹이 돋는 봄이다. 봄이 채 오기 전에 깨어난 개구리들은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는다. 개구리만이 아니다. 식물들도 겨울을 이겨내며 애써 키운 싹이 봄 추위에 동해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꽃샘추위를 걱정해서 식물들이 싹 트기를 미룰 수는 없다. 그 짧다는 봄날에 다른 식물들과 다투며 잎을 키우고 꽃을 피워야 살아갈 수 있는 게 숲이다.
 
꽃샘추위도 이겨낸 곶자왈에 풀들은 벌써 꽃을 피워냈고 나무들도 뾰족뾰족 새잎을 내놓기 바쁘다. 겨울부터 열매를 준비한 상동나무도 보일 듯 말듯 동그란 열매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봄은 모두에게 바쁘기만 한 계절인데 사람들은 겨울을 지내며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따스함에 노곤해진다.
 
'봄은 가시자왈에 걸어져도 잔다'라는 제주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날이다.
 
그냥 자왈도 아닌 가시자왈에 누워도 잠이 온다니 나른한 봄날 밀려드는 달콤한 잠을 참 절묘하게도 표현했다.
 
하지만, 제주어를 거의 쓰지 않고 자왈이란 말도 모르는 세대가 늘고 있으니 이 제주어 속담이 주는 뜻과 느낌을 얼마나 공유할 수 있을까.
 
제주어는 섬이란 고립된 지리적 환경과 역사,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거칠고 척박한 땅과 섬을 휘감고 불어오는 바람이 만들어낸 언어다. 특히, 거센 바닷바람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짧고 강한 억양을 갖는 언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주어를 처음 듣는 사람들로서는 억세고 날카로움을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왔던 김 정(金淨)은 「제주풍토록」(1521)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소리는 가늘고 높아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土人語音 細高如針刺)'며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어에 대한 당혹감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제주어는 유네스코가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소멸위기 언어'로 지정할 정도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는 다른 지방까지 널리 알려지는 제주어도 있다.
 
특히 제주 생태계를 대표하는 '곶자왈'과 걷기열풍을 불러온 '올레', 제주 화산체를 뜻하는 '오름'은 제주자연과 문화를 상징하는 언어로 사멸위기를 넘어 생명력을 얻었다.
 
▲ 쥐똥나무순(왼쪽)과 올벚.
의미·정의에 대한 논란 이어져
 
하지만 제주생태계 상징적 언어로 떠오른 곶자왈에 대해 의미와 정의를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곶자왈이 무엇을 말하는지 새롭게 정의해야한다는 의견부터 쓰임이 잘못됐다는 주장도 있다.
 
먼저, 곶자왈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곶과 자왈을 먼저 살펴야 한다.
 
곶은 오래전부터 제주사람들이 숲을 부르던 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제주사람들이 숲을 곶으로 불렀다는 '수언작화(藪諺作花)'란 기록이 있다. 「탐라순력도」 등에도 구좌읍 김녕곶(金寧藪)을 비롯해 조천읍 우진곶(芋藪), 안덕면 구제기곶(螺藪) 등 '~곶'이라는 지명을 볼 수 있어 오래전부터 제주에서 곶이란 말을 써왔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어사전」에는 '산 밑에 숲이 우거진 곳'을 곶이라 정의하고 있다. 「제주말큰사전」도 곶을 '마을과 멀리 떨어진, 잡목 따위가 우거진 들로 가축을 놓아 기르거나 땔 나무 따위를 하는 들이나 산'으로 생활문화와 연결해 풀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자왈은 앞서 본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어서 덤불을 뜻하는 제주어에 해당된다.
 
제주어로 생명력 공유
 
그렇다면 곶자왈은 무슨 뜻이며 언제부터 써온 말인가.
 
제주어 학자들이 밝힌 것처럼 곶자왈은 곶과 자왈이 합쳐진 말이다. 하지만 곶자왈이 곶이나 자왈처럼 오래전부터 써온 말인지 아니면 20~30년전 새롭게 만들어진 말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곶자왈 인근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곶자왈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다. 「제주어사전」 이전 제주어 관련 문헌에서도 지명이 결합된 형태인 '~곶'은 볼 수 있으나 '~자왈'이나 '~곶자왈'로 사용된 옛 사례는 없었다. 결국 1990년대 이전 어느 지역이나 일부 계층에서 써오던 말이 굳어지면서 지금처럼 곶자왈이란 제주어를 만들었다는 추정은 가능하다.
 
곶자왈 의미를 놓고 언어학적 분석을 통해 곶자왈을 곶과 자왈을 포괄하는 뜻이 아니라 '곶에 있는 자왈'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현재 사용사례와는 사뭇 다르다.
 
이미 곶자왈은 곶쇠(곶에 있는 소)나 곶멀뤼(곶에 있는 머루)처럼 '곶에 있는 자왈'이란 뜻보다는 숲과 덩굴, 심지어 습지도 포괄하는 식생지대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더욱이 곶자왈은 돌무더기 화산 용암이 만들어낸 식생지대라는 지질적 의미도 함께 담고 있어 언어학적 분석과는 다르게 쓰인다.
 
언어의 사회성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곶자왈은 1995년 「제주어사전」에 실려있으며 이제는 제주를 잘 나타내는 제주어로 사회성과 역사성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김녕곶이나 선흘곶처럼 이미 고유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에 대해서 '~곶자왈'이란 이름으로 바꿔 부르지 않는 게 옳다.
 
곶과 자왈이 만나 곶자왈을 이루고 아름다운 제주어로 생명력을 얻었다. 무관심속에 차츰 사라지는 제주어와 그 말을 만들어낸 제주 자연을 좀 더 보듬고 아름답게 하는 일은 우리 몫이다.
 
▲특별취재팀=김영헌 정치부 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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