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기로에 선 제주] 4. 제주생태계 요동

해안지역 난대서 아열대로 변화 외래식물 확산
미기록 열대조류도 출현…도롱뇽 산란시기 빨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제주지역 동·식물생태계의 교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산간과 해안지역도 온대에서 아열대식생으로 변화하면서 외래종이나 특정한 동·식물종의 서식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반면 작고 고립된 섬지형적 특성으로 서식지가 한정돼 있고, 온도변화에 민감한 제주특산 동·식물들이 멸종위협을 받는 등 제주생태계가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제주지역은 늦가을 시기에 가을에 피는 억새와 '봄꽃' 철쭉이 함께 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제주식물 기후변화로 천이
 
제주의 식물생태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고도에 따라 해발 해안~600m는 난대, 600~1400m는 온대, 1400m~한라산 정상(1950m)은 아고산대(아한대)가 뚜렷한 분포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기온상승으로 해안지대는 난대에서 아열대로, 중산간 지역은 온대에서 난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식물학자들은 기온 1도 차이마다 143m 정도 고도차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아열대로 변하는 해안지대는 오키나와 이남지역에서 서식하는 외래식물이 정착하고 있다.
 
아열대와 열대지방에서만 서식하는 코멜리나 벵갈렌시스와 코멜리나 대퓨사 등이 제주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오키나와 남부지역과 대만 이남지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닭의장풀과에 속하는 단자엽식물 2종류도 제주까지 북상한 상태다.
 
또한 아열대식물인 통탈목과 파초는 서귀포해안의 좁은지역에 한정돼 서식했었지만 최근 해발 300~500m까지 자생하고 있다.
 
특히 제주의 대표적인 온대식물인 억새는 주로 해발 200~600m에서 서식했지만 최근에는 해발 1700m의 고산지역인 한라산 윗세오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제주의 식물생태계 교란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제주조릿대가 한라산 고지대까지 확산하면서 토종식물 서식지를 잠식하고 있다.
 
이처럼 제주의 식물생태계는 저지대 식물종이 고지대로 빠르게 침입하면서 외래종 유입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돌매화나무, 시로미, 들쭉나무, 흰괴불나무, 댕댕이나무 등 제주의 토종식물들은 멸종위기에 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재 보호대책이 시급한 제주희귀식물은 157종으로 이 가운데 56%인 88종이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적으로 천이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제주동물상 변화도 가속화
 
제주도에 서식하는 동물생태계는 주로 한반도로부터 격리된 이후 오랜기간 기후나 기류, 섬의 면적 및 지형 등 생태·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섬고유의 변화를 거쳐 독자적인 동물상을 간직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아열대성 조류의 출현, 겨울철새의 텃새화, 동물의 번식주기 변화 등을 일으키면서 제주의 동물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 남부와 필리핀, 일본 등에서 서식하는 철새인 붉은부리찌르레기가 제주에서도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열대권 희귀조류인 물꿩도 제주서 텃새화됐으며, 녹색비둘기와 검은바람까마귀 등의 아열대 조류도 제주에서 발견되고 있다.
 
밝은가슴딱새는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거나 기록된 적이 없는 조류로 마라도에서 서식이 확인되기도 했다.
 
제주도롱뇽의 첫 산란시기도 지구온난화에 따라 앞당겨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됐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 따르면 제주도롱뇽의 첫 산란일이 2008년 1월27일, 2009년 2월2일, 2010년 1월23일, 2011년 2월26일, 2012년 2월 6일에 이어 지난해 1월7일로 나타났다.
 
제주도롱뇽은 겨울철 기온이 5도 전후에, 계곡물이 넘치지 않고 습지에 고일 정도인 20㎖의 비가 온 후 첫 산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도롱뇽의 첫 산란시기가 기온 및 강수량과 연관이 있어 향후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산란시기는 더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제주도에만 분포하는 특산곤충은 77종이며, 제주에 분포하는 전체 곤충은 256종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제주의 곤충상의 변화가 빠르게 나타날 수 있으며, 특히 국내 미기록종인 아열대 나방류 4과 6종이 제주전역에서 채집되는 등 생태계 교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인위적으로 제주에 들어온 아열대 원산지의 외래종 동물들이 기후변화 등으로 제주환경에 적응하면서 토종생태계를 위협한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뉴트리아는 1985년 모피용으로 성산읍 중산간 지역에서 사육됐다가 관리부실 등으로 탈출해 표선면 습지에서 서식하고 있다. 
 
또한 남미가 원산지이자 환경부 지정 생태계교란종인 왕우렁이도 1980년대초 식용을 위해 도내에서 양식됐다가 도내 하천과 습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김용현 기자

"제주지역의 생태계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아 자연천이나 외래종 확산, 특정동식물군 잠식 등의 변화가 예상된다. 단 식물생태계 변화는 오랜기간 조금씩 나타나고, 동물생태계는 식물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고정군 제주도 한라산연구소 박사는 "현재 기후변화에 따른 제주생태계 변화전망에 대해 여러 가지 예상시나리오와 가설로 연구되고 있지만 정량화시킬 수 있는 데이터는 없다"며 "식물변화를 연구하려면 5년에서 10년 자료로는 힘들고 최소한 50년전 비교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박사는 "지금부터라도 앞으로 50년과 100년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제주 동식물 서식지와 개체수 등을 면밀히 연구·분석해야 한다"며 "현재는 왕벚나무 개화시기나 구상나무와 소나무 서식지 변화 등의 연구만으로는 향후 기후변화와 제주생태계의 연관성을 밝혀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제주해안지역은 앞으로 아열대 동·식물군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지만 변화속도를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며 "짧게는 몇십년이 될 수 있고 백년이 훌쩍 넘을 수도 있다. 단 제주 특산식물 가운데 멸종위기종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고 말했다.

고 박사는 "생태계가 변화하면 우선 특정 동식물군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억새와 조릿대가 한라산 정상 부근까지 점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또한 아열대지역의 외래종 조류들이 제주에서 자주 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 열대성 고사리와 야자수, 종려나무 등이 제주에 유입돼 확산될 수 있다"며 "단, 외래종 유입보다는 구상나무와 소나무처럼 제주생태계 자체내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박사는 "제주생태계는 아열대 지역부터 한반도를 넘어 시베리아 일부지역에 서식하는 식물군들이 압축된 곳"이라며 "제주에서의 연구만으로도 기후변화에 따른 동북아지역의 생태계 변화를 알 수 있어 앞으로 큰 관심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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