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화유산 제주잠녀] 6부 제주해녀 문화 목록 7. 동김녕 잠수굿

매년 음력 3월 8일 '요왕문 열리는 날' 맞춰 진행
강한 의지·생활력 넘어 문화 결집·보존 능력 검증
그들만의 행사 아닌 생존법 전승 과정 의미 부각
"좀 더 해보젠 욕심들 내지말곡 바당에서랑 둘씩 꼭 짝을 이뤄 뎅기곡 병원 다녀와서는 바당에 들지 말곡…"(물건을 많이 하겠다고 욕심 내지 말고, 바다에서 작업을 할 때는 둘 이상 꼭 짝을 이뤄서 다니고, 몸이 안좋으면 물질하러 나가지 말고) 심방의 사설에 잠녀들이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명심하쿠다(명심하겠습니다)" "잘 알아들었수다(잘 알겠습니다)" 모르는 얘기도,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닌데 잠녀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점점 더 나이 들어가는 잠녀들의 생존법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금기 등 정성

잠수굿이 언제부터 치러졌는지는 모르지만 학자들은 영등굿의 본래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잠녀들이 많은 지역에서 많이 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잠수굿은 북촌과 동복·김녕리 외에도 용왕제라는 이름으로 안덕면 사계리, 성산읍 신양리 등지에서도 치러진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된 것이 동김녕리 잠수굿이다. 매 음력 3월 8일 치러지는 의식을 위해 준비 단계부터 공을 들인다. 취재를 위해 문의전화를 했을 때도 "아무나 와서 사진 찍거나 하는 행사가 아니"라고 말을 잘랐다. '해녀목록' 작업 취지를 설명하고 제차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야 "최소 3일 전부터 돼지고기도 먹지 말고, 궂은일도 보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영등할망의 행적을 따라 진행되는 영등굿과 달리 이 지역 잠수굿은 성세기당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성세기당은 1·3·7·9월 8일과 18일을 중심으로 제를 드리는 여드렛당적 특성을 지닌다. 잠수굿이 '음력 3월8일'열리는 것은 '요왕황제국 말젯아들이 요왕개폐문을 열고 나오는 날', 정리하면 요왕문이 열리는 날이라 그렇다는 설명이다.
동쪽 공동탈의장이 있는 사계알에 서낭기가 올려지고 제상이 준비된다. 올해 제관은 김녕리 총괄잠녀회장인 이순심씨와 동김녕잠녀회장 박영렬씨, 서김녕잠녀회장 문경옥씨가 맡았다. 다른 굿들과 달리 여성, 특히 잠녀 중심으로 치러지는 굿인 만큼 제관 역시 잠녀들이 맡는다고 했다. 같은 날 서쪽 공동탈의실에서는 불교식 의례가 진행됐다.
잠수굿이라고 해서 잠녀들만 참여하지는 않는다. 굿판에 내걸린 열명서들에는 잠녀들의 이름 외에도 가족들의 이름과 차량 번호 등이 빼곡하다. 행정기관과 학교, 수협, 지역 단체 등을 확인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삼석울림으로 시작해 초감제-요왕세경본풀이-요왕맞이-지드림-액막이-도진의 순을 따라가지만 사정에 따라 그 순서를 조금씩 바꿔가며 진행한다.

잠녀들마다 표현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성만큼은 한결같다.
이날 제관으로 참여한 박영렬 동김녕잠수회장은 "올 한해 무탈하게 물질 잘 하게 해주십사하고 비는 자리라 더 정성을 기울인다"며 "상가에도 가지 않고 길에서 좋지 않은 것을 볼까 외출도 삼가고 남편 옆에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어머니나 다른 잠녀들에게 듣고 배웠다"고 했다.
다른 잠녀들이 잠수굿을 위해 '해신제 물에 들어' 작업한 해산물을 제상에 올리는 일은 제관들의 몫이다.
잠녀 중심 문화 '강점'
"아이고 다 막아줍서"
섬 안에서는 잠녀들의 무사고와 풍족한 해산물 채취를 기원하는 의식적 행위로 해석이 되지만 섬 밖의 시선은 좀 달랐다. 이번까지 꼬박 7년째 동김녕 잠수굿 현장을 찾았다는 도쿄 제주도 연구회에서는 '잠녀들만의 축제 행위'라는 점에 관심을 뒀다.
잠수굿은 사실 가장 큰 마을 행사다. 굿이 치러지는 동안 동네 사람들이며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와 해상 무사고를 기원하고 공동체 유대 강화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제주도연구회 역시 "일본의 아마마츠리(해녀축제)는 마을 행사에 아마 문화가 일부 접목된 형태지만 제주 잠수굿은 잠녀들이 주축이 돼 하나의 마을 축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며 "잠녀들이 강인한 의지와 생활력 외에도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경탄했다.
그 뿐일까. 김녕리 잠녀들에게 잠수굿을 하는 날은 국경일이나 마찬가지다. 1999년 발간된 「한국의 해녀」 등에 따르면 당시 잠녀들이 잠수굿 하는 날을 '잠녀의 날'이라고 강조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내용은 앞서 1996년 제주도가 만든 「제주의 해녀」에서도 대동소이하다.

제주잠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추진하면서 수차례 '해녀의 날 지정' 논의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훨씬 일찍 잠녀들의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장치가 있었던 셈이다.
또 하나 '국경일'은 휴일의 의미도 강하다. 물 때에 맞춰 바다에 들고, 그렇지 않으면 밭일을 해야 했던 제주 잠녀들에게 온종일 일을 쉬어도 무방했던 날은 굿판을 지키는 이 날이 유일했을 터다. 여성들이 대놓고 끼를 풀어내기 어려웠던 시절 노래와 춤을 즐기고 공동작업한 해산물 등을 나눠먹으며 결속을 다졌다.
심방들이 은근히 흥을 부추기고, 제비를 좁고 산을 받는 과정들을 통해 험한 바다 작업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준다. 좁씨를 맹텡이(멱사리) 바다에 뿌리며 풍년을 기원하고 운수가 좋지 않은 잠녀나 잠수회를 위한 액도 막아준다. 불운을 피했다는 위안과 공식적인 휴식, 여기에 흥이 어우러지는 것. 이것이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 미 기자 ※ 이 기획은 ㈔세계문화유산보존사업회와 함께합니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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