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특별시 강남에 사는 초등학생들 사이에 영어는 기본이고 일본어나 불어 독일어 등 제2외국어 하나쯤 더 배워야 한다는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겨울방학동안 미국이나 유럽에 어학연수 가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고,어학에 앞서 컴퓨터는 필수라고 덧붙입니다.

 온 나라,온 세계가 영어로 쓰인 명령어인 인터넷을 예찬하며 거기에 빠져들고 있습니다.21세기 최강의 덕목을 스피드라고 했던가요? 컴퓨터황제 빌게이츠가 그의 저서 「생각의 속도」에서“세상의 변화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개인은 정보화사회의 미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공언했듯이, 자고나면 하나의 전자코드가 개발되는 속도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지금 총선시민연대가 벌이고 있는 선거혁명도 인터넷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기 때문이지요.이제 인터넷은 시대의 흐름이고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고,정부는 급기야 인터넷에 기죽는 주부들 100만명을 대상으로 적은 돈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합니다.

컴퓨터는 물론 대단히 사랑받을만 하지요.어떤 검색식 어떤 키워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경제가치도 갖다주고 말이지요.정보고속화 혁명은 국가의 전략이 되었고,미국은 차세대 인터넷 즉 인터넷2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합니다.통신속도 초당 270메가바이트이상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권을 1초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보화시대 경쟁력의 뿌리는 지식 정보의 내용물입니다.그것의 바탕은 개성과 창의력의 밀도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정보에 보다 빠르게 접근해갈 때 순기능과 역기능은 당연히 따르는 것이겠지만,지금 우리 사회처럼 정치가 미숙하고 익명의 여론호도용 글들도 난무하고 있는 사이버세상에서, 컴퓨터는 잘못된 정보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때문에 낙관적 전망과 함께 암울한 전망도 생각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정말 인터넷은 지금까지 누려온 우리의 삶 위에 한층 행복을 가져다 줄까요?그것이 우리 삶의 질에 윤기를 더하게 해줄까요? 인터넷시대는 또한 현실적으로 생활의 빈익빈 부익부처럼 정보의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하고 있지는 않는 것인지요.? 아직도 많은 소외계층과 대중들은 인터넷에 쉽게 접속하지 못하고 있고,정보의 가치를 활용하는데도 상당부분 문제가 있습니다.인터넷과 컴퓨터와 친밀해지지 못한 기성세대의 캄캄한 불안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경험의 삶으로 충만한 노인들도 인터넷을 모르면 21세기에 뒤떨어진다는 위기감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경험은 인간의 경험을 전혀 따라가지 못합니다.아무리 정보의 창고를 손가락 하나로 꺼내볼 수 있다해도 인간이 오랜 세월 자신의 삶을 닦아오면서 얻어낸 귀한 경험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그 냉혹한 기계가 몇년에 걸쳐 쓴 작가의 책한 권을 밤새워 읽으며 그 맛을 두고두고 음미하는 기쁨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디지털화면으로 아무리 좋은 영화, 좋은 그림을 만난다해도 영화관과 갤러리에서 직접 만나는 짜릿한 전율과 질감을 느끼기엔 어렵지 않을까요.무엇보다 고독한 사이버 방에 너무 깊게 칩거하다 더욱 고독해질지도 모를일입니다.

 정보는 정보일 뿐이며,그 정보의 중요한 내용물을 가치 있게 하려면 그 바탕이 되는 인간의 스토리,창조적인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가꾸고 그 문화를 어떻게 정보화 하도록 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아무리 사이버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해도 과연 우리가 누구인가를 계속 질문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고귀한 인간 삶의 경험을 많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경험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꿈꿉니다.펜의 느낌이 좋다고 아직도 펜으로 쓰는 고집스런 사람을 시대에 뒤처졌다고 몰아부칠 수 없는 다양성의 시대입니다.영어와 인터넷을 아직 모른다해도, 경험의 세계가 풍부한 사람들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당연히 그들도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 21세기여야 하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총선시민연대의 혁명역시 궁극적으로는 시민의 권리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요? <허영선·편집부국장대우 문화부장><<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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