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7. 곶자왈 옛 이름 - 사라진 이름을 찾아서
동·식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손길 닿아 있는 마을숲
조선시대 자연·풍물 등 기록에서 옛 이름·위치 등 남아
개발·개간·한자 기록 과정 등 사라지거나 잘못 쓰여져
무관심 속에 잊혀져

새벽까지 내린 장맛비에 곶자왈은 온통 물기를 머금었다. 몸이 젖고 발은 미끄러워 불편을 겪는 우리와 달리 이곳에서 자라는 생명들에게는 가장 신나는 시간이다.
알에서 깨어나 오래지 않았는지 가냘픈 북방산개구리 한 마리가 바스락 소리에 놀라 잔득 몸을 움츠리다 돌 틈 사이로 날름 몸을 피한다. 이렇게 개구리가 눈에 띌 즈음이면 시커먼 쇠살모사나 누룩뱀도 한창 배를 불릴 때이니 발걸음은 더 어려워진다.
온갖 동식물이 바지런히 살아가는 곶자왈속 빈터를 나누며 사람들도 살아왔다. 교래곶자왈 나무아래 숯가마와 움막터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고 돌무덤처럼 쌓아올린 머들이 이곳에 오래전 사람손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곶자왈은 멀리 떨어진 낯선 숲이 아니라 숯을 굽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마을숲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교래자연휴양림으로 유명세를 타며 교래곶자왈로 기억되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마을 뒤에 있는 곶자왈이라해서 뒷곶이라고 불러왔다. 교래곶자왈이 타자가 부르는 이름이라면 뒷곶은 곶자왈과 더불어 살아왔던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다.
하지만 이제는 곶자왈이 갈수록 사라지고 곶자왈을 찾을 일도 줄어드는데다 오랜 제주역사이자 자연을 담은 제주어 마저 사라지고 있으니 옛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조선시대 제주 자연과 풍물 등을 기록한 몇몇 기록에서 곶자왈 옛 이름과 위치 등을 찾을 수 있다. 오창명 등이 우리글로 풀어쓴 「남환박물」에는 곶자왈 옛 이름과 위치를 볼 수 있으며 지금도 곶자왈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고양이 연관된 지명 자주 쓰여
먼저 김녕곶인 김녕수(金寧藪)는 제주목성 동남쪽 50리에 있고 둘레가 50리로 기록하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넓은 숲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녕곶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서도 볼 수 있고 지금도 선흘곶과 함께 널리 불리는 이름이다.
곶자왈 가운데 고양이와 연관된 지명이 자주 쓰이는 것도 흥미롭다.
우선 「남환박물」에는 묘평수(猫坪藪)가 제주목성 동남쪽 23리에 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를 고양이(猫)를 뜻하는 제주어 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궷드르곶으로 해석하고 있다. 제피로스골프장 북쪽 조천읍 와흘리 지경으로 지금은 목장으로 많이 개간됐으나 간간이 남아있는 숲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거리로 제주목성 동남쪽 23리(약 9㎞)쯤 되는 봉개동에도 고양이숲을 뜻하는 고냉이술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거리 측정이 정확치 않았던 시기인 만큼 묘평수(猫坪藪)가 봉개동 고냉이술이 아닌 와흘리 궷드르곶일 수 있다.
이밖에 고양이와 관련된 지명은 구좌읍 한동리 궤쿠술(고양이코를 닮은 숲)과 한경면 낙천리 고넹이곶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고양이가 많이 서식한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해석과 곶자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바위굴인 궤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있다.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고냉이술이 되기도 하고 궷드르가 되기도 한다.
다만 곶자왈을 돌아다녀도 고양이를 보는 일은 드문 일이었는데 고넹이술이란 이름이 곳곳에 많은 것은 의문이다. 오히려 궤(바위굴)에서 비롯된 지명들이 한자표기 과정에서 같은 발음인 묘(猫)를 거치며 고양이로 해석됐을 수도 있다. 실제 와흘리 궷드르곶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괴질평수(怪叱坪藪)로 기록하고 있다.
곶자왈에 대한 지명을 좀 더 살펴보면 동거문이오름곶자왈 용암류에 해당되는 큰술(구좌읍 한동리)이나 둔지봉남쪽인 한을곶(구좌읍 송당리) 등은 지금도 곶자왈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밖에 개리모살곶(개사수 蓋沙藪)는 제주목성 서쪽 70리에 있다고 했는데 거리나 모래이름이 들어간 것으로 볼 때 한림읍 금능과 협재리 일대에 있는 넓은 숲으로 보인다.
판교수(板橋藪)는 널닥리곶이라 불렸을 것이며 대정읍 신평리 일대 곶자왈을 말하며 소라모양을 닮았다는 구제기곶(나수 螺藪)는 병악에서 산방산으로 이어지는 안덕곶자왈이다.

앞술·뒷술·넙은곶 등 기록만 남아
암수(暗藪)는 어둔곶 또는 된곶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제주목성 동쪽 95리에 있다하니 성산읍 일대 곶자왈로 보인다.
기록에서만 볼 수 있을 뿐 사라진 곶자왈도 적지않다. 일제강점기 이전만하더라도 제주도 마을주변에는 크고 작은 숲이 많이 있었으나 이제는 농경지나 주택지로 바뀐 곳이 많다.
남닥리곶(목교수 木橋藪)과 한곶(대수 大藪)이 정의현성 동쪽 17리와 남쪽 4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 숲이라 할 곳은 남아있지 않다.
한라장촉에 기록된 우진곶(芋藪)는 조천읍 함덕리 지경으로 곶자왈이 함덕리 서우봉까지 길게 그려져 있으나 이제는 도시형성과정에서 사라져 흔적을 찾기 힘들다. 용눈이오름곶자왈 상부에 위치한 개선술(구좌읍 상도리)은 지금은 초지로 개간돼 숲이라 할 수 없다. 이밖에 마을마다 앞술, 뒷술, 넙은곶, 고막곶 등 여러 곶자왈이 기록만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이 숲을 버릴 때 숲은 이름을 잃는다. 어릴적 뛰놀던 기억속 정겨운 곶자왈은 개발과 개간으로 사라지며 이름마저 기억속에 사라지거나 더러는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잘못 쓰이고 있다. 또 한자지명을 다시 제주어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온갖 오류와 부정확한 해석까지 생겨내 곶자왈은 개발에 상처받고 이름마저 잃어버린 신세가 되고 있다.
곶자왈을 지키고 살리는 일은 이제라도 옛 이름을 찾고 또 바른 이름을 부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특별취재팀=김영헌 정치부 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
김영헌·고경호 기자, 김효철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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