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10. 제주농요

전수자 없어 '단절 위기'…다양한 활동으로 명맥 이어
제주에서 '노동의 노래(謠)'는 숙명과 같았다. 돌덩이 가득한 땅을 일구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려면 '노래의 힘'이라도 빌려야 했다. '피할 수 없어 즐겨야' 했던 제주인. '농요'는 흥겹지만 그 배경에는 고된 삶이 녹아있었다. 그러나 지금 유일한 전수자가 숨을 거둔 후 '계승'에 위기가 찾아왔다. 문화유산의 명맥을 잇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다.
제주서 농요는 '고통의 산물'
제주는 본래 화산섬으로 땅이 척박했다. 사면은 죽음과 같은 바다로 둘싸여 있는데다 땅은 메마르고 좁았다. 세찬 바람이 수시로 휘몰아치며 흙바람이 거셌다.
대부분 바닷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땅에서 나는 작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먹고 살기 힘든 과거, 생계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해야 했다.

농사는 주로 밭농사를 지었다. 제주땅은 투수성이 강한 현무암으로 이뤄져 벼 등의 논농사는 힘들었다. 이에 주 작물은 보리, 밀, 팥, 감자 등이었다.
또 제주 밭농사는 고되기로 유명했다. 육지부 밭농사는 쟁기로 밭을 갈고 일구지만 제주에서는 흙덩어리를 '곰베'로 부수고 '써레'로 밭을 잘 갈무리하는 등의 추가 작업이 필요했다.
돌멩이가 지천에 널린 척박한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린뒤 발로 밟았다. 여름이면 콩을 일구고 가을이면 곡식을 타작하는 제주농업은 엄청난 고역의 연속이었다.
원시적인 농업이 빚어낸 고통의 산물은 '농요(農謠)'였다. 기운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비타민'과 같은 역할이었다. 더불어 농요는 제주인들이 노래도 힘든 노동을 이겨내던 근면하고 부지런한 생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문화로 의미가 깊다.
흙덩어리 다질 때 부르는 노래
농요는 2002년 5월8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됐다. '밧 리는 소리' '진 사대 소리' '마당질 소리' 등 제주 농사 관행에 따른 노래가 많다.
'밧 리는 소리'는 흙덩어리를 다질 때 부르는 노래이며 '진 사대 소리'는 김 멜때 불렀다. 마당질 소리는 탈곡기가 없었던 과거, 콩이나 메밀, 보리 등 곡식을 수확한 후 '도리깨'로 내려쳐 탈곡할 때 사용됐다.
'밧 리는 소리'는 땅을 다질 때 부르는 노래로 '월월~ 뱅뱅에~' '어~ 으~' '월럴러 월월 와 어허어 와' 등 말과 소 떼를 유도하는 소리가 많다. 선소리꾼이 노래를 부르면 몰이 꾼들이 장단을 받아 노래를 주고 받는다. 보리타작이 끝나는 6월 한달 동안 제주의 들녁에는 농부들의 밭 밟는 소리가 잘관이었다고 전해진다.

'마당질 소리'는 두 세명이 주고받는 형식으로 불리운다. 도리깨를 내리치며 선창을 하면 탈곡을 보조하는 사람들이 후창을 한다. 이 농요의 특징은 남녀와 지역을 불문하고 넓게 분표됐다는 것이다. 또 강한 박절적 성격이 강하고 리드미컬해 흥겹게 불린다.
결국 농요는 강도높은 노동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흥를 돋구는 '쉼'의 역할이 됐다. 특히 협동을 요구하는 맡일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단합'의 주요역할을 맡았다. 농요는 제주인의 '삶의 지혜'였다.
유일한 전수자 사망…그 이후
지난 2007년 제주농요의 유일한 기능보유자였던 이명숙 명창이 운명을 달리했다. 이후 7년간 문화재 보유자 지정을 위한 노력은 이어져 왔지만 문화재 지정 회의 때마다 무산됐다. 전수자 지정이 늦어짐에 따라 결국 제주농요 전승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현재 제주농요의 전수자는 이명숙 명창의 자녀 김향옥·김향희씨다. 이들은 이 명창이 활동하던 한라예술재단을 이끌며 다양한 '명맥 잇기' 활동에 전념해 왔다.
지난 2008년부터 '제주도무형문화제 제16호 제주농요 전승을 위한 공연'을 매년 개최해 오며 이명숙 명창 추모공연을 열고 있다. 더불어 이 공연을 통해 '제주농요'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추모공연도 오는 8월17일로 잡혀 있다.
한라예술단 김향옥 단장은 "제주농요는 제주사람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배어있는 역사적 산물"이라며 "제주 농요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 또한 이 시대를 갈아가는 사람들의 시대적 사명이자 책무"이고 전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화유산으로의 전승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보유자 지정에 매달리다보면 문화재 전승 고리 단절만 부각되지만 문화유산적 접근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전수자 지정이 '문화재 명맥 유지'를 대표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현재 보유자들의 활발한 활동도 이를 방증한다. 제주농요보존회를 중심으로 제주시전통학교와 제주농요전수교육관에서의 교육이 이뤄지고 '제주농요 체험학습장'에서는 실제 농사체험과 더불어 농요의 의미를 찾는 과정도 꾸려지고 있다.
다행히 '음악'이다. 특별한 장치나 공간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더라도 전승에 대한 의지를 반영한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만으로도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지역 문화재'로의 강점 역시 활용가능 아이템이다. 강릉단오제에서는 '관노가면극'하나를 놓고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생, 일반에 이르기 까지 경연이 이뤄진다. 정통을 지키되 나름의 해석을 인정해 우승팀을 가리는 것으로 '문화'를 만든다. 제주도가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로 등재된 제주어 교육을 확대하는 것을 접목시키는 것도 방안이다.
제주 관광지 마다 농요를 들려주는 등의 활용으로 도민들과 관광객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
한 사람에 대한 전수가 아닌 '범도민적 계승'이 필요한 것이다.
전해지지 못하는 문화재는 '빛은 잃은 과거'일 뿐이다. 문화재 보유자 지정은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문화를 잇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이소진 기자
이소진 기자
lllrayoung@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