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10. 곶자왈 동물상 - 여기 생명이 있다

▲ 곶자왈은 울창한 숲과 습지가 함께 분포하고 있어 양서파충류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사진은 먼물깍 전경.
끊임없는 개발·환경 오염으로 생태계 파괴 지속
포유류·파충류 등 다양한 생물종 서식 인지해야
 
탐방로·체험시설 들어선 곶자왈
 
몇 해 전만해도 곶자왈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곶자왈 탐방이 제주도민 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주요 일정이 됐으며 탐방객을 위한 크고 작은 시설이 잇따라 들어섰다.
 
소라를 닮았다 해서 구제기곶이라 불리던 안덕곶자왈에도 몇 해 전만해도 없던 탐방로가 깊숙이 나있다. 탐방객을 위한 불가피한 시설이지만 곶자왈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떨지 걱정 섞인 궁금증을 낳는다.
 
세계 환경 섬이니 생태계 보고니 자랑하는 제주지만 끊임없는 개발과 환경오염으로 옛 자연생태계를 잃고 있다. 곶자왈도 숱한 개발로 인해 갇힌 공간신세가 된 지 오래다. 더욱이 이 곳 저 곳에 탐방로와 체험시설이 늘어나고 찾는 이들도 많아지면서 곶자왈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니 편하게 걷는 발걸음에 비해 마음은 무겁다.
 
장마가 끝나고도 자주 내리는 비로 곶자왈은 습하고 더웠다. 언제 죽었는지 백골과 가죽만 남은 노루가 눈에 띈다. 노산 이은상 시인은 1937년 한라산 등반기에서 산중에 길을 잃고 죽어 백골이 된 말을 보고 조사(弔辭)를 남겼다.
 
'비바람 불고 가고 눈서리 치고 가고 껍질도 살도 썩고 백골만 남았구나. 세상에 헛된 것이란 생명인가 하노라'
 
백골이 된 생명을 보고 누군들 허무를 느끼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 여름 에너지를 듬뿍 받은 곶자왈은 생명체로 가득한 듯 생기가 넘친다.
 
곶자왈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살고 또 죽음으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생태계 보고답게 곶자왈에는 노루처럼 몸집이 큰 동물부터 곤충이나 미생물처럼 눈에 잘 띄지 않아 우리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숱한 생명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연구소가 2013년 펴낸 '곶자왈 환경자원 조사' 에 따르면 곶자왈내 포유류는 노루와 오소리, 제주족제비, 제주등줄쥐, 제주땃쥐, 집박쥐 등 19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멧돼지와 사슴, 다람쥐도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에서 야생하는 멧돼지와 사슴에 대한 기록을 조선시대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이원진이 쓴 탐라지(1653)나 이형상이 쓴 남환박물(1703)에는 '호랑이 표범 곰 승냥이 이리 등 사람을 해치는 사나운 짐승이 없고 삵 오소리 사슴 멧돼지 등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미 사슴과 멧돼지는 1910년대와 1940년대 멸종했다는 기록이 있고 삵도 서식환경변화와 포획으로 인해 멸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현재 곶자왈에서 발견된 사슴이나 멧돼지, 다람쥐는 제주고유종이 아닌 외래종이다. 오래전 곶자왈 탐사에서도 멧돼지가 땅을 파 나무뿌리를 먹었던 흔적을 본적이 있는데 농가에서 기르던 것이 야생화하면서 이제는 적지 않은 멧돼지가 한라산과 곶자왈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물론 제주에 사는 포유류는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거슬러 올라가면 제주는 빙하기때 대륙과 연결돼 동물 이동이 자유로웠다. 제주에서도 코끼리로 추정되는 발자국 화석이나 곰뼈 화석까지 발견돼 한 때 지금보다 다양한 포유류가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곶자왈 환경자원조사 결과에 따르면 곶자왈에서 서식하는 조류는 84종이다. 원앙, 황조롱이, 매, 독수리, 붉은배새매, 새매, 참매, 팔색조 등 천연기념물이 12종이었으며 붉은해오라기, 매, 벌매, 독수리, 붉은배새매, 참매, 팔색조, 긴꼬리딱새 등 멸종위기종도 8종이 서식하고 있다.
 
▲ 환경부 멸종위기 2급 동물인 애기뿔소똥구리(왼쪽), 꾸지뽕나무위에 있는 사슴벌레(오른쪽)
다양한 생물종의 보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곱게 단장한 깃털을 듣고 보는 일은 즐겁고 평화롭다. 하지만 곶자왈에서는 간혹 풀숲을 기어 다니는 뱀과 갑작스레 폴짝거리는 개구리에 한두 번 가슴을 쓸어내릴 각오를 해야 한다. 파충류 가운데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는 쇠살모사는 곶자왈에서도 가장 잘 눈에 띄는 독사이다. 제주에서는 구렁이로 불리기도하나 구렁이와는 다른 종인 누룩뱀을 비롯해 파충류 8종과 북방산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 6종이 곶자왈에서 살아간다.
 
이미 중산간과 해안을 중심으로 농경지와 주택지가 들어서 동물 서식환경이 크게 줄어든 제주에서 곶자왈은 중요한 서식처다. 곶자왈이 울창한 숲 뿐 아니라 습지와 초지를 포함한데다 한라산과 해안을 잇는 생태 축을 이루고 있어 제주도내 서식하는 포유류나 양서류, 파충류 대부분을 볼 수 있는 생물종 다양성 보고임을 확인할 수 있다.
 
포유류나 양서파충류에 비해 대체로 몸집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곶자왈속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동물은 곤충이다. 세계적으로도 생물군중 70%를 차지하는 곤충은 곶자왈에서도 16목 172과 1246종이 확인됐으니 종수가 포유류나 양서파충류와는 비교가 안된다. 환경부 멸종위기Ⅰ급인 두점박이사슴벌레를 비롯해 Ⅱ급인 물장군과 애기뿔소똥구리, 비단벌레, 왕은점표범나비 등 4종도 만날 수 있다. 수만마리 운문산반딧불이가 밤하늘을 수놓은 장관을 볼 수 있는 곳도 곶자왈이다.
 
곤충은 곶자왈 식물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포식자이겠지만 식물은 식물대로 온갖 지혜를 짜내며 대항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연생태계에서 곤충 때문에 특정 식물이나 생태계가 파괴되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곤충은 자연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생물일 뿐 아니라 인류가 맞닥뜨린 식량위기를 해결하는 훌륭한 식량자원으로 떠오를 거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바퀴벌레를 이용해 에너지 바를 만들어 먹는 영화 '설국열차'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온갖 과학기술과 문명을 확신하고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정작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해 곤충에 의존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도 우리들이다.
 
▲특별취재팀=김영헌 편집부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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