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도예원을 찾은 유치원생들이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밟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김대생 기자>
푸르던 시절이 낙엽되어 떠나간다. 한해의 달뜬 호흡을 불어넣어 가슴속 아궁이를 지피라고 재촉하는 늦가을 찬바람 속. 온가족이 가마의 장작불 앞에서 뜨끈뜨끈 온기 한줌, 그릇 한점 두 손에 쥘 수 있는 곳, 도예체험장에서의 특별한 주말 하루는 어떨까.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연인들의 애정 ‘열전도체’를 형상하던 물레 앞 정경. 그 물레 위에 갈라지고 부르튼 엄마손과 아이의 고사리손이 포개어지는 풍경을 연출하며 찰칵. 추억의 가족사진 한컷을 찍는다.

도내 여러 곳 있는 도예체험장에서 가짜 찰흙의 차가운 촉감에만 익숙한 아이들과 진짜 흙장난을 저지른다. 손으로 주무르고 발로 밟아 꼭꼭 다지고. 말랑말랑한 흙덩이를 주물러가며 도자기, 아니 그릇을 빚는다. 못으로 가족이나 연인의 얼굴을 그려넣고 ‘엄마, 사랑해요’문구도 새겨넣는다. 그런 다음 완성한 그릇은 가마에 넣고 초벌구이에 들어간다. 그 사이 가져온 도시락도 까먹고, 장작불에 고구마도 구워 먹자. 

“아이들이 흙을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요. 게다가 완성되면 오래도록 두고 보면서 추억이 되니까 흐뭇하죠”

표선면 성읍2리 성지도예에 체험학습을 나온 제주 북초등병설유치원 현상호 어린이의 어머니 강미숙씨(33·제주시 삼도2동)는 아이만큼이나 시종 즐거운 표정이었다.

벌써 6년째 두 도예가 부부가 운영해온 성지도예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도자기 빚기 외에 아이들이 가장 신나하는 프로그램은 ‘흙밟기’다. 덩어리진 흙을 풀어주고 부드럽게 해주는 과정이다. 운동장처럼 원형으로 깔린 흙위에 맨발의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제 엄마를 바라보며 싸이춤을 추는 아이, 두세명씩 껴안고 덤블링을 뛰는 아이 등 길길이 날뛰고 구르며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아파트에서 조심조심 걷는 법만 배웠던 아이들에게 해방의 감격이 따로 있으랴.

그밖에 5∼7월엔 감자, 9∼11월엔 고구마를 직접 캐서 바비큐 가마에 구워먹는 시간도 인기 만점. 식후에는 나무다리를 건너 토끼장에 ‘마실’을 갈 수도 있다.

1인당 흙 한덩어리 사용기준으로 어린이는 6000∼8000원, 어른은 10000원. 35인승, 15인승 차량 운행. 문의(064)787-2773.

남제주군 대정읍 신도리의 신도초등학교. 폐교의 낡은 건물이 새로 황토옷을 입고, 아이들 없이 냉기만 감돌던 교실엔 도자기 가마의 불빛이 붉게 드리워져 있다.

최근 도예 체험학습장 ‘산경도예’로 재단장한 (구)신도초등학교.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선 나도 일일 도공이 돼볼 수 있다.

계룡산 도예마을에서 작업하던 도예가 김경우씨(43) 부부와 그들의 제자 등이 지난5월부터 폐교를 임대, 아름다운 작업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전통 불가마를 교정 한켠에 앉히는 공사가 진행중이며, 교실 2개를 도예학습장 및 물레실로 단장했다.

복도를 따라 다실(茶室)과 김씨 부부의 작품 및 생활 도자기 전시·판매장이 이어져 있다.

처음 온 아이들과 가족들이 주로 만드는 것은 머그잔, 화병, 풍경에 다는 물고기, 손도장 찍기, 토우 등이다. 여기에 재미를 붙여 상습적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은 각자 집안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서 만든다. 촛대가 필요하면 촛대를, 라면그릇을 갖고싶다면 원하는 모양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용기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날 빚은 자신의 작품은 가마에 들어간 후 건조과정을 거쳐 20∼30일 후에 받아볼 수 있다. 

김씨는 “노인 부부들도 즐겨 찾습니다. 손으로 흙만지면서 오늘은 뭘 만들까, 아이템과 할 일을 생각하다 보면 하루가 즐겁고, 치매 예방에도 좋아요”라고 말한다.

새벽에도 작업실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24시간 학교를 개방하며, 방학에는 1일 도예캠프도 열 계획이다. 수강생 외에 작업을 도와줄 제자도 받는다. 1인당 하루 수업료는 어린이 10000원, 어른 15000원. 단체 수강자들을 위한 셔틀버스 운영. 일반인 월수강료는 초급반의 경우 월10만원(주3회). 남제주군 대정읍 신도리 위치. 문의(064)792-5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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