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만나다] 14. 방앗돌 굴리는 노래

▲ '방앗돌 굴리는 노래'는 1986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됐다. 사진은 덕수리민속보존회 회원들이 마을내 민속공연장 부근 공터에서 '방앗돌 굴리는 소리'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자 역군님네 몇날 며칠 걸려 만든 방앗돌을 우리 마을로 굴려갑시다"
척박한 땅에서 일군 곡식은 제주도민들에게 소중한 양식으로 사용됐다. 이를 오랫동안 보관하려면 곡식을 빻는 방앗돌이 필요했다.
도민들은 중산간에 올라 큰 바윗돌을 다듬어 방앗돌을 만들었다. 마을로 갖고 오기 위해 100여명의 장정들이 달려들었다. 엄청난 힘이 필요한 집단 노동이었다. 힘을 모으기 위해 구호와 노래, 신명이 필요했다. "어허 방앗돌 굴려가는 소리/ 꼬불꼬불 깊은 골짝 길을 닦아 나가보세" 집단노동요 '방앗돌 굴리는 노래'는 제주의 공동체 의식을 잘 표현한 대표 곡이라 할 수 있다.

사라졌지만 집단의식으로 전승

'방앗돌 굴리는 노래'는 1986년 4월10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됐다.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음악적 특이성이 높게 평가됐다.

방앗돌 굴리는 작업은 '계'로 운영됐다. 보통 100여명의 청년들이 동원됐기 때문에 공동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계원들의 의논을 모아 경비를 마련하고 노력부담을 했다. 상부상조하는 조직으로써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됐다.

현재 노래는 거의 사라졌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방앗돌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의 주민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보유자를 비롯해 전수교육조교, 전수장학생 모두가 덕수리 주민들이다.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허승옥씨가 보유자를 맡아 전승을 시작했으며 1994년 9월 고 강원호씨가 이어받은 후 현재는 김영남씨(59)가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덕수리의 공동체 집단의식은 과거부터 매우 유명했다. 방앗돌 굴리는 노래를 비롯해 제주도 무형문화제 제7호인 덕수리불미공예는 주민들의 의기투합으로 이뤄져왔다.
수백년이 흐른 현재까지 덕수리 주민들은 무형문화재 전수에 힘쓰고 있다.

실례로 덕수리마을회와 덕수리민속보존회는 매년 '덕수리전통민속재현축제'를 열고 문화유산 전승에 앞장서고 있다. 23회를 맞은 올해 축제는 오는 10월11~12일 이틀간 덕수리민속공연장(제주조각공원 옆)에서 성대히 개최한다.

▲ 덕수리 전통민속 재현축제
창조적 마을만들기·인프라 구축

덕수리는 지난 4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시하는 '2015년 창조적 마을만들기 권역단위 종합개발사업'에 선정돼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서귀포시에 따르면 덕수리는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방앗돌 굴리는 노래와 불미공예 등의 무형문화재 보존을 위한 전통민속축제장 정비와 친환경 생태휴양공간 조성 등의 계획이 추진된다. 국비(70%)와 지방비(30%) 등 37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세부적인 계획으로 문화와 관련해 민속마을 문화갤러리, 마을잔치체험장 조성, 덕수권역 민속문화 테마경관 조성 등이 추진된다.

연습공간 부족, 생업으로 인한 정기공연 마련의 어려움 등이 해갈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방앗돌 굴리는 노래 보유자인 김영남 씨는 "전수자들이 모두 지역 주민들이다. 생업인 농사일을 제쳐놓고 문화공연 봉사 등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연장 마련, 방앗돌 복원 등의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보전·전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공동체 의식 담은 마을로 보존

노래의 활용 방안으로 '공동체 정신을 담은 민속마을'로 보존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주에서 흔하지 않은 집단 노동요이기 때문에 예술성이 비교적 낮지만 민속적 가치는 매우 크기 때문이다.

방앗돌 굴리는 노래를 비롯해 불미공예 등 무형문화재를 다수 보유한 덕수리는 제주의 민속적인 공동체 의식이 잘 남아 있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남아있다.

좌혜경 제주발전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제주만의 민속적인 공동체 모습을 잘 보존하며 공동체 의식을 복원하는 것을 전제로 한 민속마을로써의 보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읍민속마을, 표선민속촌처럼 '공동체 정신'의 특성을 잘 살린 민속마을로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좌 전문연구원은 "과거 공동체 정신을 부활한 민속마을로의 성장은 관광 자원화를 뛰어넘어 제주 대표성을 가진 마을이 되는 길"이라며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 등을 통해 구축한 인프라를 활용한다면 멀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소진 기자
 

반복·규칙적 음률로 노동 수행

노래 어떻게 불려왔나

즉흥적이면서 느린 박자
무거운 돌 끄는 선조 지혜

'방앗돌 굴리는 노래'는 즉흥적이지만 느리다. 무거운 돌을 끌고 가는 힘겨운 노동의 동작에 박자를 맞췄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선창을 하면 일꾼들 모두가 '어기영차' 후렴을 받는 선후창 방식의 노래가 대부분이다.
"호오오 호오오 어허어/ 굴러가는 소리/ 어기영차/ 길을 딱아근 어허 길매땡겨 구밀로구나/ 어기영차/ 꼬불꼬불 오호오 깊은 골짝/ 어기영차/ 활등같은 오호-어 고븐길로/ 어기영차/ 쌀대같이 오호 날아든다/ 어기영차"
이처럼 방앗돌 굴리는 노래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이다. 동시에 힘을 모아 무거운 돌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앞에 보난 오- 험한 동산이 있고나/ 어기영차/ 이 동산을 오-어떻게 넘을꼬/ 어기영차/호오-어허어 오호오 역군님네 힘을 내여봅서/ 어기영차"
중간 후렴을 보면 노동이 얼마나 고됐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중산간 마을에서 바닷가 마을로 내려오는 수백리를 오로지 사람의 힘에 의지해 지름 2m 이상 되는 거대 바위를 끌어왔다. 어디 평탄한 곳이 있었을까. 굽은 길, 높은 오름, 돌길, 숲길 등 험한 지형이 이들을 가로막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기영차' 한마디로 힘을 내었다. 이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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