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14. 곶자왈 식물생활사

기상이변·지구온난화…생물 다양성 위협요소
적응력 좋은 외래종 성장·토종식물 서식지 감소
곶자왈 남방·북방계 공존 원인 및 중요성 시사
가을비가 며칠째 내리더니 차가운 바람마저 불어댄다. 평온한 여름과 가을을 보낸 곶자왈 식물들에게 다가올 겨울 준비를 다그친다.
지난해 겪은 여름 가뭄과 무더위가 힘겨웠던 때문일까 폭염이나 가뭄 걱정할 일 없이 보낸 올 여름과 가을은 특별한 기억조차 남기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기상 이변이니 기후 온난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오히려 산업활동이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적다며 기존 온난화 이론에 반대하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떠나 우리가 사는 지구가 1만년전부터 온난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실은 분명하다. 빙하기가 끝나고 빠른 속도로 따뜻해진 지구는 지금처럼 남북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됐다.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변화
온난화가 지구상에 인류 생활권을 크게 늘리고 유래없는 문명시대를 불러온 반면, 생태학자들은 21세기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 기후변화, 구체적으로는 지구온난화와 이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꼽는다.
우리가 사는 곳이 지금보다 따뜻해진다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기온이 올라갈수록 생물들은 현재 서식지보다 좀 더 북쪽까지 올라가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서식지를 옮겨온 생물들은 당초 그들이 살던 곳에서 늘 맞닥뜨렸던 병원균이나 기생충 그리고 천적의 위험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생존에 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반면 토종식물들은 달라진 생육 환경에 적응해야하고 외래 침입종과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곶자왈은 1만년동안 이뤄진 온난화가 낳은 흔적들을 다양하게 안고 있다.
2만년전쯤 마지막 빙기시대 지구상 온도는 적게는 5℃ 부터 많게는 10℃ 넘게 낮았으니 제주도는 지금 서울처럼 추운 곳이었다. 해수면도 지금보다 100m이상 낮아 제주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일본과도 연결된 대륙이었다.
빙기가 끝나고 1만년전부터 현재에 이르도록 온난화 시기로 간혹 기온이 오르내리기는 했으나 지금과 같은 따뜻한 기후가 됐으며 해수면도 상승해 제주는 섬이란 생태계를 이룬다.
빙기때 제주를 뒤덮었을 북방계식물들이 온난화로 밀려나갈 무렵 따뜻한 지방에 살던 식물들은 제주를 비롯한 한반도로 영역을 넓혔을 것이다.
곶자왈은 그렇게 1만년동안 온난화를 거치며 예전부터 있던 잔존종과 새롭게 분포영역을 넓히는 유입 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우리는 북방계와 남방계 공존이라 부르지만 치열한 영역싸움과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기위한 생존노력이 벌어지는 곳이 곶자왈이다.
소나무는 기후변화와 병해충, 천이과정 등으로 가장 심각한 위협을 받는 나무다. 온대식물인 소나무는 겨울철 가뭄이나 고온과 같은 온난화 영향으로 수분이 부족해 고사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등 생육이 나쁜 상태에 이른다. 여기에다 재선충까지 겹치며 소나무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
벌써 곶자왈에 있는 소나무는 재선충으로 죽거나 생육이 부실하고 후계목을 키워내지 못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온난화와 자연적 천이과정이 겹치며 소나무 분포범위는 크게 줄어들어 앞으로 50년이 지나면 중부지방 이북으로 적정 생육지가 제한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곶자왈 식물의 마지막 피난처
곶자왈은 이미 그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오래전 곶자왈을 지키던 주인이었음을 알아주라는 듯 높이 솟은 소나무 턱밑 아래까지 자라난 종가시나무 군락은 변화를 말해준다. 과거 어린 소나무가 자랐을 나무 아래에서는 소나무를 찾아보기는 힘들고 무성하게 자라는 종가시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류와 조록나무, 참식나무 등 활엽수림이 자리를 대신해가고 있다.
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곶자왈에서 소나무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고 지금보다 더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이 될 것이다.
다른 북방계식물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1만년전 지구 온난화가 그러했듯이 기후가 따뜻해지면 곶자왈에 생물다양성을 더하던 북방계식물들은 서식지를 넓히며 세력을 키우는 남방계 식물들에게 서서히 자리를 내준 채 극소수 서식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숨골과 풍혈지, 궤, 동굴, 함몰지 등은 북방계 식물들이 살아가는 마지막 피난처가 될 것이다. 서늘하고 습도가 높은 기후는 좀고사리나 골고사리, 한들고사리, 큰톱지네고사리처럼 북방계 식물이나 마지막 빙하기때 제주에 살던 잔존종들이 마지막까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온난화에 대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년동안 우리가 만들어낸 환경변화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기후 온난화처럼 서서히 나타나기도 하고 곶자왈이 한 순간 도시나 골프장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오랜 세월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살아온 곶자왈속 생명들에게는 급격한 기후변화도 갈수록 줄어드는 서식지도 피하고 싶은 미래다. ▲특별취재팀=김영헌 편집부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

빌레나무과 식물이 네팔, 뉴기니아, 타이완, 라오스 등 열대와 아열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음을 볼 때 빌레나무는 제주도가 따뜻해진 후 특히 곶자왈에 유입된 북방한계 식물로 식물지리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멸종위기식물이자 곶자왈을 대표하는 개가시나무 역시 중국 남부지방이나 일본 혼슈 이남, 타이완 등에 분포하는 남방계식물이다.
이밖에 큰섬잔고사리나 개톱날고사리 등 주로 아열대나 열대 지역에서 살던 생물들이 제주지역까지 올라오며 터전을 넓힌다. 온난화 혜택을 받은 식물이라 하겠다.

특히 기후변화에 민감하고 적응력이 좋은 외래종들은 급격히 성장하면서 번식하게 되는 기회종이 된 반면, 정착해 안정적 생육을 하던 토종 식물들은 기후변화에 생육환경이 달라져 서식지가 줄어들거나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