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화유산 제주잠녀] 6부 제주해녀 문화 목록 18.문학작품속 잠녀 1

▲ 잠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섬의 기원과 잠녀들의 비원, 제한된 공간에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찬탄, 그럼에도 끈질기게 섬에서 살아가기 위한 의지 등으로 표출된다. 사진은 문헌에서 발췌한 옛 잠녀모습(위)과 현기영 작가(왼쪽 아래).
문학, 처음으로 '잠녀문화' 세상밖 이동시킨 장치
현기영「바람 타는 섬」등 '특유공동체 문화' 인정
단순 묘사 넘어 ' 구술사 이상의 기록 의미 간직
 
최근 제주도문화정보점자도서관이 '제주 잠녀'를 다룬 수필집을 점자도서로 발간, 전국 점자 도서관과 맹학교에 배포했다. 사실 현황 등을 담은 정보서가 먼저일 수도 있지만 문화 전파력에 있어서는 문학 작품이 주효하다는 판단에 내릴 선택이다. 파급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누구도 가늠하기 어렵지만 과거 제주 잠녀와 그들의 삶을 세상 밖에 끄집어냈던 것은 문학작품들이었다.
 
문화 해석에 유용
 
제주잠녀와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역사 문헌 기록은 삼국사기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잠녀'라는 언급이 있었다기보다 '진주를 캐는 사람'(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문자왕 13년(503)조)이 등장하는 것으로 잠녀의 존재를 유추했다.
 
「고려사」에도 '탐라(耽羅)에서 나는 진주(眞珠)'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조선조부터는 '잠수하는 여인'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표현이 나온다. 물론 잘 알려진 대로 사찬 읍지류에서 포작과 연결해 잠녀를 묘사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당시 잠녀들의 삶과 문화를 비교적 온전히 전하는 장치는 개인 문집류다. 물론 가감은 있다. 앞서 '해녀노래'에서도 살펴봤지만 이건의 「제주풍토기」(1629)나 김춘택의 「북헌거사집」(1710), 신광수의 「석북집」(1765), 정조의 「홍재전서」권 168(1799), 이학규의 「낙하생집」(1819), 이예연의 「탐라팔영」(1832) 등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잠녀들의 모습을 옮겼다.
 
사실 대부분 문집에서 잠녀라는 장치를 통해 에둘러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을 전하기는 했지만 잠녀들의 작업 행태라던가 물질에 대한 태도 등을 엿볼 수 있는 문구들이 많다. 그것들은 오늘로 옮겨져 잠녀 문화를 해석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4·3이 그러했던 것처럼 처음 '잠녀문화'라는 것을 세상에 옮긴 장치는 문학이었던 셈이다. 타 지역에는 없는 문화콘텐츠로 춤이나 미술 작품의 소재로 많이 활용됐지만 그들을 이해하는 데는 문학 작품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낯선 소재'에서 시대상 상징으로
 
흔히들 잠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섬의 기원과 잠녀들의 비원, 제한된 공간에 살아야 하는 운명적 삶에 대한 찬탄, 그럼에도 끈질기게 섬에서 살아가기 위한 의지 등으로 표출된다.
 
"…하루가 멀댄 일년 열두달 물에 들엉/저승문턱 저승길 왕래하는/설운 탐라잠수 굽어 살펴주십서/바람불고 큰절 지치걸랑/하늘같은 요왕님아/쏠쏠 달래엉 편안케 허여줍서/명주바당 맨들아줍서/배운것도 어신 것덜이우다/아는 것도 어신 것들이우다"(김수열 '숨비소리' 중)
 
바다를 자연과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통로로, 그리고 잠녀를 삶에 대한 강한 의지의 상징으로 그려낸 것으로는 현기영 소설가의 '바람 타는 섬'을 빼놓을 수 없다. 1930년대 잠녀항일투쟁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4·3항쟁 이전과 이후의 섬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현상을 이해하게 한다. 소설은 당시만 하더라도 '낯선 소재'였던 잠녀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근·현대사의 흐름을 어떤 사명감이 아닌 비교적 담담하게 읽을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지금껏 문학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 하나 이 소설이 잠녀문화에 있어 주목받는 것은 '잠녀라는 공동체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담았다는데 있다.
 
"숨이 짧은 두팽이 각시가 미처 미역 밑둥에 손을 못대고 중동만 얼른 잘라가지고 올라가는 게 보인다. 평소에 다섯 길 이상 깊은 물은 엄두도 못내던 아주망이 여기까지 조짝조짝 따라온 걸 보면 좋은 미역이 어지간히 탐났던 모양이다. 그러나 목이 길어야 숨이 길다고, 저 아주망은 양바틈 작은 키에 잘쑥 자라목이다" 
 
단 세 문장에 보통 5m 내외 깊으면 10m 내외는 되는 잠수의 물질 능력부터 시작해 '좋은 물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집중력, 상·중·하군 등 경험·능력치에 따른 냉정한 기준이 정리됐다.
 
뿐만 아니다. "정심은 다시 자맥질 하여 근처 바닥을 기면서 이리저리 눈 밝혀 두리번 거렸다. 숨이 몹시 가빴다. 올라갈까 생각하는데, 그때 바로 옆에서 조류에 해초가 흐느적 뒤를 쓸면서 전복 하나가 눈에 번쩍 띄었다. 더 큰 놈이었다. 그녀는 이미 숨이 몹시 가빠 있는 상태였지만, 홀린 듯이 그쪽으로 끌려갔다. 하기는 물밑에서 발견하는 물건을 즉시 따야지, 일단 물 위에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가 보면 조류에 몸이 쓸려 목표에서 어림없이 빗나가 물건 찾기가 쉽지 않은 법이었다. 그녀가 한 손으로 모자반 줄기를 움켜잡아 몸이 떠오르지 않게 지탱하고 비창을 전복 뚜껑 밑으로 쑤셔넣었는데, 그만 바닥을 디딘 발이 헛돌아 몸이 휘청했다. 그 순간 전복은 비창을 문 채 뚜껑을 꽉 닫아버렸다"
 
이 정도면 일반적인 구술사 이상이다. 정녕 당장 현장에서 잠녀 여러 명의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이런 생생한 기억을 끄집어내기 어려울 정도다. 고 미 기자
 

객관적 사실 바탕에서 1인칭
각색·창작물 등 활용 잇따라

조금은 묵직한 소설 대신 말랑말랑한 동화나 그림책에서 '잠녀'가 등장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무엇이 먼저다 하기는 그렇지만 아동문학가 박재형의 '이여도로 간 해녀'(2007)는 출간 이후 우수문학도서 선정, 영문판 출간 등 지금까지 각급 학교 도서관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푸른 눈'의 아이들에게까지 제주의 잠녀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 잠녀들의 삶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한 만들어진 책은 1910년에 출생한 정아가 전염병으로 형제를 모두 잃은 뒤 무남독녀로 자라 잠녀가 되고 이후 1919년 세화리 잠녀항쟁사건과 일본 상인의 착취와 고통스런 육지 물질 등을 겪으며 홀로 자식들을 키우고 물질을 하다가 죽음의 나라 이여도로 떠나간, 인생사를 담고 있다.

이후 시선들은 보다 유연하게 '문화'라는 이름의 대형 직소퍼즐을 채우고 있다.

2011년만 해도 '만행이 할머니'설화를 테마로 한 원어민 교사 신시아 하인리츠의 「인어들」이 서점가에 얼굴을 내밀었고 물질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소녀의 마음을 담은 「어멍 강옵서」(박지훈 글) 등이 눈길을 끌었다. 전설과 버무러진 글들 역시 보다 다양해진 독자층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객관적 관찰자에 '1인칭'으로 다시 잠녀 콘텐츠를 활용한 창작 동화까지. 서점 찾는 재미가 쏠쏠해지는 것만큼 잠녀 문화 역시 튼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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