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15. 습지 형성 이유와 의미

▲ 동백동산은 곶자왈중에서도 파호이호이용암으로 이뤄져서 곳곳에 습지가 발달해 동식물 서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은 동백동산 습지.
동백동산…따뜻한 기후로 사계절 생육활동 가능
수능 공급처 역할 '톡톡' 동·식물 서식 긍정 영향
기능·중요성 평가 미흡…"물의 소중함 알아야"

온난화니 기후변화 영향을 따로 얘기 하지 않더라도 선흘곶 동백동산에 들어서면 겨울이란 계절은 사라진다. 11월도 중순이라 이미 계절은 겨울 문턱에 들어설 만 한 때지만 고운 빛 꽃도 파란 싹도 볼 수 있는 곳이다.

겨울에 열매를 맺는다해서 이름 붙여진 겨울딸기가 빨갛게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여름에 꽃을 피우는 인동초와 병꽃도 동백동산 언저리에서 계절을 무색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식물들은 추운 날씨로 세포활동이 약해지면 물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해 생육에 지장을 받는다. 더욱이 겨울까지 잎을 달고 있으면 증산작용으로 수분마저 빼앗기게 되니 나무들이 잎자루 끝에 떨켜를 만들어 스스로 낙엽이 되는 것도 겨울을 나기위한 생존법이다.

하지만 곶자왈중에서도 저지대에 속하는 동백동산은 식물들이 겨울에도 생육작용을 할 만큼 따뜻한 기후를 보인다.

동백동산이 겨울에도 푸른 숲을 이루는 또다른 이유는 사시사철 풍부한 수분을 공급하는 습지라는데 있다.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울퉁불퉁 크고 작은 용암더미 곶자왈에서 습지를 만나는 것은 언듯 자갈밭에서 물 웅덩이를 보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수많은 공극을 갖고있는 곶자왈 암괴지대지만 돌투성이 표면과 달리 보이지 않는 바위 밑에는 엄청난 물을 품을 수 있는 지질구조를 갖는다. 대체로 수m에서 수십m에 이르는곶자왈 용암 아래에는 고토양층이나 파호이호이용암 같은 투수성이 낮는 용암류가 형성돼있다. 비가 오면 바위틈사이로 흘러내린 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 모여 곶자왈에 늘 높은 습도를 유지시켜주고 일부는 낮은 지대를 따라 흘러 용천수를 만들기도 한다.

▲ '우연히 주웠다'는 의미를 갖는 봉근물.
곶자왈은 대부분 수많은 공극으로 빗물이 지하침투와 함께 보이지 않는 습지를 만들어낸다면 동백동산을 비롯한 선흘곶은 지표위에 습지 또는 건습지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지질구조를 갖는다. 곶자왈을 이루는 용암류 가운데 전형적인 파호이호이 용암류로 이뤄진 동백동산은 곳곳에 튜물러스나 함몰지가 만들어지면서 크고 작은 바위가 곶자왈을 뒤덮고 있다. 하지만 암괴형태가 아닌 하부가 치밀하고 매끈한 구조로 굳은 용암류는 먼물깍(동백동산내 연못)처럼 암반으로 이뤄진 연못을 군데 군데 만들고 있다. 온통 나무들로 둘러싸인듯한 숲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곳에 연못이 만들어진 것이다.

먼물깍이야 넓고 평평한 파호이호이용암으로 이뤄진 연못이라 어쩌면 용암지대에서는 평범할런지 모르나 숲속 나무아래 바위틈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물웅덩이들은 마치 산정상 바위틈에서 샘물을 만나듯 신비롭다. 곶자왈 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는 여러차례 용암이 흐르며 만들어진 치밀한 지질구조로 빗물 고여 있거나 쉼없이 바위틈 사이를 흐르며 나무와 풀 또는 크고 작은 동물들에게도 생명을 주고 있는 것이다.

곶자왈 가운데 습지가 잘 발달한 선흘곶에는 환경부 멸종위기식물만해도 5종이 자라고 있으며 팔색조와 긴꼬리딱새와 같은 멸종위기동물들도 서식하고 있어 습지가 생태계에 주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곶자왈 개발을 두고 논란을 빚을 때마다 곶자왈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만 보고 생태계등급을 매겨 개발가능성을 재단하지만 곶자왈이 사라짐은 온갖 동식물을 키우는 습지가 사라지고 있음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나마 동백동산은 지난 2011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나 아직까지 대부분 곶자왈이 갖는 습지 기능과 중요성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있다.

곶자왈 숲에서 만나는 물은 옛 사람들에게는 더욱 소중했을 것이다.

숲에서 주웠다는 뜻을 가진 봉근물은 이곳 동백동산에서도 볼 수 있고 무릉곶자왈과 신평곶자왈에서도 볼 수 있다. 더운 여름날 소나 말을 쫒아 다니다 돌투성이 숲에서 물을 만나 목을 축이던 반갑고 행복한 느낌이 봉근물 그 이름에서 살아난다. 저지리 곶자왈에서 만나는 보난물(보니까 물이 있었다)이나 항아리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항물처럼 용암이 감싸안아 만든 습지들이 곶자왈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다.

▲특별취재팀=김영헌 편집부차장, 고경호 사회부 기자 ▲외부전문가=김효철 (사)곶자왈사람들 상임대표.

▲ 동백동산 제주고사리삼 자생지.
선흘곶 건습지서 자생 유일
참느릅나무 도채 증가 위기

세상 모든 생명이 물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주듯 습지는 온통 생명체로 가득 차 있다.

곶자왈 습지가 낳은 희귀식물중에 당연 손꼽히는 것은 제주고사리삼이다.

2001년 택손(Taxon)지에 신속 신종으로 기록된 제주고사리삼은 기구상에서는 제주도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그것도 선흘곶이 유일한 자생지다. 수많은 땅을 두고 유독 선흘곶을 자생지로 삼은 데는 바로 제주고사리삼이 건습지라는 환경특성을 선택해 살아가는 종이라는데 이유가 있다.

제주고사리삼 자생지는 비교적 주변보다 지형이 낮은데다 토양과 암반이 적절히 섞여 있어 비가 오면 며칠에 걸쳐 서서히 마르는 곳이다.

이러한 습지는 관목림이나 상록활엽수림이 자라는 데는 좋지않은 여건으로 자생지 주변에는 참느릅나무나 꾸지뽕나무와 같이 일부 수목만이 제한적으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식물로서는 그리 편안치 않은 환경을 선택함으로써 종가시나무나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햇빛을 가리는 상록활엽수와 경쟁을 피하며 살아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에 비해 제주고사리삼 자생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참느릅나무는 낙엽활엽수로 햇빛을 적절히 공급해주는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곶자왈을 다니다 보면 조경수로 인기있는 참느릅나무를 도채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참느릅나무가 사라지는 것은 제주고사리삼에게도 치명적 환경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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