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생명숲 곶자왈 연대기] 19. 곶자왈 숯굽기

숯·옹기 구워 생활…조천·힌경 등 곶자왈 분포
재선충 방제 벌채 자행…"소멸 위기 생각해야"
인류 역사·문화 지탱한 나무
오늘 하루도 온갖 금속과 화학물질 없이는 살 수 없을 듯한 시대지만 인류 역사와 문화 대부분을 지탱해온 것은 나무다.
불과 우리에게 수십년전만해도 나무는 집을 짓는 건축자재이자 땔감이었으며 농기구, 그릇을 만드는 자재이고 아이들 놀잇감이었다.
그러기에 숲을 잘 보전하는 것이 중요한 국가 사무였으며 숲과 나무를 소유하는 것은 커다란 권력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비변사등록 등에는 제주도내 가시목(加時木?가시나무)공급이나 벌채와 관련한 기록을 심심찮게 엿볼 수 있다.
종가시나무를 비롯한 참가시나무, 개가시나무, 붉가시나무는 곶자왈을 대표하는 참나무과 나무들로 단단하면서도 곧고 높게 자라 배를 만들거나 건축자재로 많이 쓰였으며 국가에서도 특별히 관리해온 것이다.
도민들에게도 나무는 생활 곳곳에 쓰이는 필수재료였다.
배를 만들거나 집을 짓는데 종가시나무를 비롯해 구상나무, 비자나무, 녹나무, 구실잣밤나무, 솔비나무 등이 주로 쓰였고 알곡을 도정하는 남방애를 만드는 데는 몇 아름드리 굵기가 되는 느티나무나 구실잣밤나무, 벚나무, 종가시나무가 많이 이용됐다.
제주처럼 돌이 많은 받을 갈고 돌을 캐내려면 단단하고 질긴 재질이어야 한다. 무겁고 질긴 참나무과 나무들과 때죽나무, 자귀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이 주로 쓰였다. 구상나무를 제외하고는 곶자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들로 곶자왈이 주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생활에 필수적인 숯·옹기 굽기
건축자재나 농기구말고도 생활에 필수적인 활동이 숯을 굽거나 옹기를 굽는 일이다.
특히 곶자왈은 숯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곳이다. 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꾸지뽕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보리수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숯을 굽는데 쓰였으나 가장 많이 이용된 것은 종가시나무와 참가시나무 등 참나무과 나무들이다.
선흘곶이나 한경면 저지, 청수곶자왈에 주로 분포하는 종가시나무는 넓을 곶자왈을 가득 메울만큼 풍부한데다 숯을 구웠을 때 쇠소리가 날 정도록 단단하고 화력이 좋은 숯을 만들 수 있다. 지금도 제주시 조천읍과 한경면, 서귀포시 대정읍과 안덕면 일대에 분포한 곶자왈에크고 작은 숯가마가 많이 남아있어 숯굽는 일이 곶자왈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활발히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숯이 아니라 옹기를 굽던 가마터도 곶자왈지역에서 만날 수 있다. 만들어진지 1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한경면 산양리 노랑굴은 폭이 2m 가까이 된데다 길이도 12m가 넘는 옹기가마로 옹기를 굽는 데는 많은 나무가 필요했다. 가마터는 곶자왈과 바로 맞닿아 있었으니 옹기를 구울 나무를 구하는 데는 최적지인 셈이다.
현대 곶자왈에 찾아온 위기
이제는 숯을 구울 일도 옹기를 구울 일도 없어져 숲은 다시 푸르게 나무들이 들어차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한 위기가 곶자왈에 찾아온 것이다. 아름아름 곶자왈에 들어서는 건축물로 곶자왈은 세월이 지나도 다시 푸른 숲을 찾을 수 없게됐다.
또 소나무를 말려죽이는 재선충 피해가 곶자왈까지 황폐화시키고 있다. 한경면 저지리 곶자왈을 찾았는데 곶자왈 사이 사이 서있는 죽은 소나무를 잘라내느라 곶자왈은 개발사업을 앞둔 것처럼 황폐화하고 수십m가 넓는 길이 나고 곶자왈속 숱한 나무들이 단지 작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수없이 잘려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재선충 방제작업으로 곶자왈 훼손이 문제로 떠오르자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제주특별자치도정의 약속도 있었으나 마구잡이식 작업은 여전하다.
인류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구상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류 생활을 위한 존재였으나 이제는 나무도 숲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나무와 숲이 사라진 이 땅에 과연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을까 물음표를 던진다.

곶자왈이 가치를 더하는 것은 생태계보고이자 제주도민들이 삶과 역사를 창출해낸 생활공간이라는데 있다. 지금도 곶자왈에 가면 울창한 나무에 가려있지만 선조들이 돌과 나무를 이용해 오랜 세월 삶을 이어온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숯굽궤는 곶자왈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생활유적으로 제주도민들이 소중한 산림자원인 곶자왈에 얼마나 의존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조천읍 선흘곶을 비롯해 교래와 대흘곶자왈, 한경면 저지와 청수곶자왈, 안덕면 상창, 동광, 서광리 등 여러 곳에서 숯가마와 돌로 만든 임시 주거지를 볼 수 있다.
농한기가 되면 제주사람들은 간단한 취사도구를 들고 곶자왈속으로 들어가 며칠씩 생활하며 숯을 구웠다. 숯은 대부분 장에 내다 팔거나 물물교환으로 보리쌀 등 생필품을 얻어 생활해왔다.
숯 굽는 일이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일이지만 산림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컸다. 1960년대까지 숯 만들기가 이어지면서 곶자왈은 민둥산처럼 황폐화했던 기억을 안고 있다.
숯굽궤가 숯을 얻기위한 숯가마라면 검은굴 노랑굴은 옹기를 굽던 가마다.
옹기가마는 물허벅과 항아리 된장독과 같이 붉은 빛을 내는 옹기를 굽던 노랑굴과 떡시루, 사발, 대접 등 검은빛인 제사용 그릇들을 만들던 검은굴로 구분한다. 옹기가마 역시 대정읍 신평리와 구억리, 한경면 산양리와 청수리 등 곶자왈 인근에 분포한다. 옹기를 굽는데 들어가는 많은 나무들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은 것이다.
한경면 산양리에 있는 노랑굴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대표적 옹기가마다. 조선시대에 축조돼 이용돼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100년이 넘는 소중한 문화자원이다.


